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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원(宮苑) 상림원(上林苑)
등록일: 2012-05-15 12:51:53 , 등록자: 김민수 궁원(宮苑) 상림원(上林苑)
조선 왕궁의 원유(苑囿) 상림원(上林苑)을 관리하는 기구를 동산색(東山色)이라 하였고 태조3년(1394) 7월에 동산색을 상림원(上林苑)이라 개칭하였으며 상림원(上林苑)은 조수(鳥獸:새와 짐승)와 화목(花木:꽃과 과일나무)을 관리하는 동산(東山)이었다. 장원서등록(掌苑署謄錄)에 왕궁의 과수원을 모두 동산(東山)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장원서등록은 1794년 동산(東山)에서 거두어들인 세전과 과물(果物)의 내용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고 상림원(上林苑)의 수목과 과원을 관리하는 전문 직책의 이름을 동산 별감(東山別監)과 동산직(東山直)이라 했다.동산직(東山直)의 직책은 식목 및 수목의 관리와 과일 수확이고 1777년 월급은 쌀 6두, 포 1필이었다. 동산 별감(東山別監)은 장원서(掌苑署)에 소속된 직책으로 조선 왕궁의 원유(苑囿)를 관리하였고 동산직(東山直)은 왕궁 밖의 조원(造園)이나 과수원을 관리하는 직무에 종사하였다.
1406년(태종 6) 4월 창덕궁 동북쪽 상림원(上林苑)에 해온정(解溫亭)을 지었으며 1459년(세조 5)에는 상림원(上林苑) 좌우에 연못을 만들고 열무정(閱武亭)을 세웠고 1463년에는 그 경계가 성균관까지 이르렀으며 임진왜란 중 상림원도 불타버렸다. 광조(광해군) 대에 복원한 상림원(上林苑)은 기이한 화초와 괴석들을 늘어놓고 원유(苑囿)의 꽃과 돌 사이의 곳곳에 작은 정자들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1636년(인조 14)에 소요정(逍遙亭), 태극정(太極亭), 청의정(淸漪亭)을 세웠고, 청의정 앞쪽 암반에 샘을 파고 물길을 돌려 폭포를 만들었으며 옥류천(玉流川)이라는 인조의 어필을 소요암에 새겨놓았다. 1642년에는 취규정(聚奎亭)을, 1644년에는 관덕정(觀德亭)을, 1645년에는 희우정(喜雨亭), 1646년에는 청연각(淸讌閣), 1647년에는 취승정(聚勝亭)과 관풍정(觀豊亭)을 세웠다. 1688년(숙종 14)에는 청심정(淸心亭)과 빙옥지를, 1690년에는 사정기비각(四井記碑閣)을 세웠으며 1704년에는 대보단을 축조했다. 1776년에는 주합루(宙合樓)를 건립했으며 1828년(순조 28)에는 연경당(演慶堂)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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