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원군(大院君) 부원군(府院君)
등록일: 2012-06-11 11:15:27 , 등록자: 김민수 대원군(大院君) 부원군(府院君)
대원군(大院君)은 조선 국왕이 후사(後嗣)가 없이 승하하고 종친 중에서 왕위를 계승하는 경우 신왕의 생부(生父)에게 주던 존호(尊號)로 4인이 대원군에 봉(封)하여졌다.선조의 아버지 덕흥군(德興君)을 덕흥대원군으로 추존(追尊)하였고 1623년 선조의 5남으로 인빈 김씨(仁嬪 金氏) 소생 정원군(定遠君)의 아들 능양군(綾陽君)을 국왕으로 옹립하여 인조가 되자 정원군을 정원대원군(定遠大院君)으로 추존하였으며 1849년(헌종 15) 헌종이 후사가 없이 승하하자, 순원왕후(純元王后)의 명에 따라 전계군(全溪君)의 아들 덕완군(德完君)이 왕위에 올라 철종이 됨에 전계군을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으로 추존하였다.1863년(철종 14) 철종이 후사가 없이 승하하자, 대왕대비 조씨(大王大妃 趙氏)의 명에 따라 흥선군(興宣君)의 2남이 왕위에 오르자 하응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에 봉하여졌다.부원군(府院君)은 조선시대 국왕의 장인인 국구(國舅) 또는 정1품 공신(功臣)에게 준 작호(爵號)로 본관(本貫)인 지명(地名)을 앞에 붙였으며, 같은 호칭이 여럿 생길 때에는 연고(緣故)있는 지명을 넣어 불렀다. 부원군(府院君)은 딸이 궁중에 들어와 정실(正室) 왕후(王后)가 되면 왕후의 아버지는 자동적으로 부원군(府院君)이 되었다. 국구(國舅)는 정치에 참여하지 못했으나,조선 중기 이후에는 국왕의 장인인 국구(國舅)가 정치에 참여하여 많은 폐단을 낳았다.
|
| 본 게시물에 대한 독자 의견 | |
|
칼럼/사설: 김선갑 전 광 ... 구정뉴스: 광진구, ‘재 ... 의회소식: 광진구의회, ... 구정뉴스: 열악한 광진 ... 구정뉴스: 광진구, 2025 ... 구정뉴스: 뚝섬로 36가 ... 정계소식: 이정헌 국회 ... 정계소식: 오세훈 서울 ... 구정뉴스: 광진구, 지난 ... 구정뉴스: 광진구, 8개 ... 의회소식: 광진구의회, ... 구정뉴스: 광진구, 자양 ... 구정뉴스: 화양동, 구의 ... 구정뉴스: 광진구, 버스 ... 구정뉴스: 광진구, 식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