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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국협회(皇國協會)
등록일: 2012-06-12 09:03:31 , 등록자: 김민수 황국협회(皇國協會)
보부상(褓負商)을 앞세워 독립협회(獨立協會)에 대항하기 위해 조직된 황국협회(皇國協會)는 1895년 일본의 청일전쟁(淸日戰爭) 승리 이후 일본 상인이 한성에 대거 진출하여 상설 점포를 개설하자 1898년 6월 30일 원세성(元世性) 등이 발기인이 되어 결성했다. 경무사(警務使) 신석희(申奭熙)가 이를 인가했고, 7월 2일 대한제국 황태자가 협회 경비로 1,000원을 주었다. 7월 7일 군사(軍士)의 시재, 무예(武藝)의 연습(練習), 병서(兵書)의 강습(講習)을 관장하는 훈련원(訓鍊院)에서 황국협회 발회식(發會式)에서 나라를 문명부강하게 하는 도리는 대한제국 황실을 존숭(尊崇)하고 충군(忠君)하는 대의를 밝힌다고 설립 취지를 밝히고 회장 이하 107명의 임원을 선출했으며 구성원의 대부분은 보부상(褓負商)이었다. 황국협회(皇國協會) 초대 회장은 전 농상공부 대신 정낙용(鄭洛鎔)이었으나, 9월 법부(法部)의 민사국장(民事局長) 이기동이 수천 명의 보부상을 회원으로 가입시켜 조직력을 강화하고 스스로 회장이 되었으며, 중추원일등의관(中樞院一等議官) 고영근이 부회장으로 선출되었다.황국협회는 1898년 10월 12일 민선의원설립건백서(民撰議院設立建白書)를 정부에 올렸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면 민선의원(民撰議院)을 개설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황제권 강화를 통한 군주권의 절대화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각 계층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하원 개설을 통한 부국강병을 계획했다.
대한제국 건국 이후 보부상(褓負商)들은 지방 장시에 있는 보부상 사무소인 임방(任房)을 각 도에 다시 설치하는 한편, 황국협회는 각 도·군 지회를 설립하여 농상대신과 상공국장에게 농상공광(農商工鑛) 사무를 황국협회가 관장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대한제국 정부의 보호하에서 설립·활동했던 황국협회(皇國協會)는 정부정책을 비판하는 독립협회에 대항하는 역할도 했다. 독립협회가 만민공동회를 통해 정부정책을 맹렬하게 규탄하자, 찬정 조병식(趙秉式)과 법무 협판 겸 황국협회 회장 이기동이 모의하여 독립협회가 고조 광무제를 물리치고 공화체제로 국체(國體)를 변화시킬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벽서(壁書)를 붙였다. 이 벽서를 구실로 대한제국 정부는 독립협회 간부 17명을 검거하고 11월 15일로 독립협회를 비롯한 모든 사회단체의 해산을 선포했다. 이에 만민공동회는 부당한 탄압에 항거하여 조병식·이기동 일파의 처벌과 헌의6조(獻議六條)의 조속한 실시, 독립협회의 복설을 강력히 주장하는 집회를 매일 종루(鐘樓)에서 개최했다. 이에 한성에 집결한 보부상계 황국협회원들은 과천군수 길영수(吉永洙)를 도반수(都班首)로 삼고 홍종우·원세성 등의 지휘하에 11월 21일 만민공동회를 습격하여 독립협회원에게 테러를 가했다. 한성에서 독립협회와 황국협회(皇國協會)의 두 세력이 충돌·대치하게 되자, 대한제국 정부는 12월 25일 군대를 동원하여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강제 해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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