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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선사 보빙사 수신사
등록일: 2012-06-13 23:26:39 , 등록자: 김민수 영선사 보빙사 수신사
영선사(領選使)는 1881년 서양의 과학기술 학습과 미국과의 통상(通商)에 대한 사전 교섭을 목적으로 청나라에 파견한 유학생의 인솔사행이며 김윤식(金允植)·어윤중(魚允中) 등의 온건개화파들이 중심이 되어 중국에 도입되어 있는 서양 과학기술 및 병기의 도입과 학습을 위한 유학생을 파견하였으며, 각종 근대 기계와 과학기술 서적이 대량으로 유입되어 1883년 국내 최초의 근대 병기공장인 기기창(機器廠)이 설립됐다.보빙사(報聘使)는 조선에서 최초로 미국 등 서방 세계에 파견된 사절단(使節團)이며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을 체결한 이듬해에 민영익(閔泳翊), 홍영식(洪英植) 등의 친선 사절단(使節團)을 서방에 파견하였다. 미국 뉴욕에서 미국 대통령 체스터A.아서와 회동하고 국서(國書)를 전하고 보스턴을 거쳐 대서양을 건너 유럽 각지를 여행한 다음 귀국했다.
수신사(修信使)는 1876년 조일조규(朝日條規:병자조약) 이후 조선 정부가 일본에 파견한 외교사절단이며 1차 수신사(1876년 4월-7월)는 의례적인 일본 방문이었고 2차 수신사(1880년 5월-9월)는 병자조약 이후 조선의 외교 통상에 걸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2차례의 수신사 파견은 개화정책에 영향을 미쳤고 통상(通商)과 문물의 수용을 담당하는 정부기구의 설립에 기초가 됐다.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은 1881년 4월 10일부터 7월 2일까지 약 4개월에 걸쳐 일본에 파견되었던 문물시찰단이며 1880년 12월 근대 문물을 수용하기 위한 기구로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을 설치한 후 서양 문물의 조사를 위해 파견했다.신사유람단의 파견은 1880년대 이후 정부 안에 자주적인 개화정책을 추진해 나갈 수 있는 정치세력이 등장하고 개화정책을 추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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