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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년(庚申年:1920) 간도 한국인 대학살
등록일: 2012-10-18 21:05:37 , 등록자: 김민수 경신년(庚申年:1920) 간도 한국인 대학살
일본제국주의는 1919년 3·1대한광복운동 이후 점차 조직화,체계화되는 한국독립군의 대한광복운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대규모의 정규군을 간도로 투입하여 한국독립군을 대대적으로 공격할 계획을 수립하고 준비를 진행시켜 나갔다.중국 영토인 간도에 일본 정규군을 출병시키기 위해서는 마땅한 구실이 필요하였고 일본은 중국 마적(馬賊)을 매수하여 혼춘의 일본총영사관을 습격하도록 조작하였다.1920년 10월 2일 일본에 매수된 중국 마적 장하오는 400여 명의 마적을 인솔하여 야포 3문을 앞세우고 일본총영사관 경찰과 총독부 파견 경찰대 및 함북경찰대 등에 소속된 50여 명의 병력이 있는 혼춘을 공격하였다.마적들은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 혼춘 성문을 통과하여 5시부터 9시까지 4시간동안 약탈과 살육을 자행하였다. 마적들에게 중국인 병사 70여 명과 한국인 7명이 살해당하였고 일본인 9명도 피살되었으며 미리 피신하여 빈집이 된 일본총영사관도 소각되었다. 마적(馬賊)의 혼춘 일본영사관 습격사건을 야기한 일본은 일본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한국주둔군 제19·20사단, 시베리아 출병군인 제11·13·14사단, 간도파견군과 관동군 등에서 총 2만명의 병력을 간도로 투입하였다. 출병군은 기림지대(磯林支隊)·목림지대(木林支隊)·동지대(東支隊)의 3개 지대로 편성되어 한국독립군공격작전을 전개하였다.
일본군의 한국독립군공격작전은 2단계로 나뉘어 이뤄졌다.1단계는 작전 개시일로부터 1개월 내에 한국독립군을 섬멸하고 근거지를 없애 것이며, 2단계는 1단계 작전 이후 1개월 내에 민간에 잠복한 한국독립군 잔당과 민간인 독립운동가를 철저히 색출함으로써 한국독립운동의 뿌리를 완전히 제거한다는 것이었다. 10월 16일 중국 정부가 거세게 항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독립군에 대한 소탕작전이 개시되었으나 일본군의 한국독립군소탕작전은 실패가 예상된 것이었다.이미 일본군의 출병 이전에 대한국독립군은 안전지대로 피신하였고, 이를 추격하던 일본군이 청산리(靑山里)에서 한국독립군에게 완패하였으며, 그 뒤 대한국독립군들은 중국-러시아 국경을 넘어 연해주로 이동하였기 때문이다.경신년(庚申年:1920)년 6월 홍범도(洪範圖),최진동(崔振東), 안무(安武)가 이끈 봉오동전투, 10월 김좌진(金佐鎭),나중소(羅仲昭),이범석(李範奭),홍범도(洪範圖)가 이끈 청산리전투에서 대한국독립군에게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한 일본군은 한국독립운동의 근거지를 박멸한다는 미명 아래 무고한 재간도 한국인에 대하여 무차별 대학살을 단행하였다.1920년 10월 5일부터 11월 23일까지 일본군에 의해 학살된 한국인은 혼춘현에서 242명, 연길현 1,124명, 화룡현 572명, 왕청현 347명, 영안현 17명, 서간도 지방 804명에 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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