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대한국 침략의 상징인 벚꽃을 뽑아 불태워야
등록일: 2013-03-31 11:30:07 , 등록자: 김민수 일제의 대한국 침략의 상징인 벚꽃을 뽑아 불태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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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昌德宮) 돈화문(敦化門) 안에는 괴목(槐木)인 느티나무,회화나무를 대조전(大造殿) 앞에는 소나무,단풍나무를 부용지(芙蓉池)에는 소나무,연꽃을 주합루 어수문 옆에는 버들고리,패랭이꽃,범부채를 연경당(演慶堂) 후원에는 배나무를 승화루(承華樓)에는 배나무,감나무를 폄우사(砭愚榭)에는 은행나무를 심었다. 후원(後苑)에는 뽕나무,때죽나무,팥배나무,느티나무,주목,회화나무,참나무,음나무,다래나무,향나무,살구나무,밤나무,주엽나무,앵두나무,상수리나무,복숭아나무,철쭉,진달래를 심었다. 4월에 벚꽃이 피는 우리나라 왕벚나무는 제주도에 자생하는 화목(花木)이며 궁(宮) 묘(廟) 전(殿) 단(壇) 능(陵)에는 왕벚나무를 심지 않았다. 대한시대 대한광복운동기인 1913년 4월 7일 요시노 다자에몽 1906년 9월 이토 히로부미가 통감부 기관지로 창간 후 1910년 일제 총독부 기관지로 변경된 일본어로 발행되는 친일 신문사 사장이 일본의 나라꽃인 벚꽃나무 500그루를 창덕궁 후원에 심었고 1986년 여의도 국회 앞에 옮겨 심은 일제의 대한국 침략의 상징인 벚꽃을 뽑아 불태워야 한다. 1484년 10월 16일 성종이 인수왕대비(仁粹王大妃)와 인혜왕대비(仁惠王大妃)를 위해 궁장 밖에서 바라보이는 것을 가려 막고자 창경궁昌慶宮)에 버드나무를 심었다.
경복궁(景福宮) 광화문(光化門) 안과 궐내각사(闕內各司) 앞에는 괴목(槐木)인 느티나무,회화나무를 심었다. 주(周)나라가 괴목(槐木) 아래에서 삼공(三公)이 앉아 정사를 보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하며 왕궁의 별칭이 괴신(槐宸),정승의 직위를 괴위(槐位)라고 한다. 향원지(香園池)에는 배나무,소나무,느티나무,회화나무,산사나무,버드나무,참나무,단풍나무를 심었다. 아미산(峨嵋山) 화계(花階) 아래에는 매화, 모란, 반송, 철쭉, 앵두나무를 위에는 소나무, 느티나무, 살구나무를 심었다. 태묘(太廟)에는 느티나무,참나무,소나무,단풍나무,서어나무,버드나무,향나무를 심었으며 사직단(社稷壇)의 단(壇) 주위는 담장 유(壝)를 설치하여 신성시했고 유(壝) 안에는 수목을 심지 않고 유(壝) 외곽에는 느티나무,참나무,향나무를 심었다. 선농단(先農壇)에는 향나무를 선잠단(先蠶壇),경복궁과 창덕궁의 잠실(蠶室),관아 담장 아래와 밭에는 뽕나무를 심었고 영희전(永禧殿) 동쪽 담장 안에 버드나무를 조선국 왕릉과 대한국 황제릉의 능역(陵域)에는 소나무,밤나무,버드나무를 한성(漢城)과 지방의 대로(大路) 좌우에 소나무·잣나무·배나무·밤나무·느티나무·버드나무를 심었다.
1404년 8월 16일 오얏나무·살구나무·능금나무에 꽃이 피었다. 1408년 9월 15일 한성(漢城) 안 민가(民家)에 복숭아와 오얏나무에 모두 꽃이 피었다. 1409년 3월 1일 태종이 궁원(宮園)에 뽕나무를 심도록 명하였다. 1412년 4월 20일 교하현(交河縣) 청라암(靑羅巖)의 오얏나무가 벼락을 맞았다. 1414년 5월 5일 단오(端午)이므로 태종이 건원릉(健元陵)에 참배하였다. 산릉에 수목(樹木)이 무성한 것을 보고, 일자(日者) 이양달(李陽達)을 불러 묻기를, “소나무와 밤나무를 함께 심었으니 소나무에 해로울까 생각된다. 밤나무를 제거하면 어떻겠는가?”하니, 이양달이 “밤나무는 노쇠하기 쉬우니, 번거롭게 베어낼 것이 없습니다.” 대답하였다. 1417년 3월 30일 이 해 봄에 복숭아와 오얏나무에 꽃이 피지 않았다. 1421년 2월 1일 판부사(判府事) 박자청(朴子靑)과 예조 참의 허해(許晐)를 헌릉에 보내어 도랑을 파고 버들나무를 심는 것을 감독하게 하였다. 1437년 8월 29일 이 달에 한성(漢城) 안에서 배꽃·회화나무꽃·자두꽃이 피었다.1453년 5월 12일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오는 봄부터 한성(漢城)과 지방의 큰 길 좌우에 흙의 알맞은 데에 따라서 소나무·잣나무·배나무·밤나무·느티나무·버드나무 등의 나무를 많이 심고서 그것을 벌목(伐木)하는 것을 금지하소서.”하니, 단종이 그대로 따랐다.
1513년 7월 18일 큰 바람에 집상전(集祥殿)의 소나무와 상서원(尙瑞院)의 느티나무가 뽑혔다. 1515년 7월 29일 복숭아나무와 오얏나무에 꽃이 피었다. 1519년 8월 1일 경상도 진해현(鎭海縣)에서 복숭아꽃, 오얏꽃이 피어 열매를 맺었다.복숭아꽃, 오얏꽃이 피는 진해(鎭海)에 일본이 기증하여 식재된 일제의 대한국 침략의 상징인 벚꽃을 뽑아 불태워야 한다.10월 6일 전라도 흥양현(興陽縣)에 매화(梅花)가 피었다. 1553년 12월 26일 이 달에 전라도에 진달래꽃이 피고 마(麻)가 꽃을 피웠으며, 양맥(兩麥)은 이삭이 패고 오얏나무와 매화나무가 열매를 맺었다.1595년 12월 11일 충청도 아산현(牙山縣)에 진달래꽃·살구꽃이 곳곳에 피었다. 1630년 2월 14일 태묘(太廟)의 대문 밖에 있는 버드나무에 벼락이 쳤으므로 인조가 위안제(慰安祭)를 거행하였다. 1671년 12월 11일 전라도 영암(靈巖)에서 가을갈이를 한 보리가 이삭이 패어서 익고 진달래·복숭아·살구가 곳곳에서 꽃이 피었다.1692년 3월 9일 영소전(永昭殿) 담장 안의 괴목(槐木)에 벼락이 떨어졌다. 1705년 4월 3일 새벽녘에 영희전(永禧殿) 동쪽 담장 안에 있는 버드나무에 벼락이 쳤다.1713년 7월 25일 큰 바람이 불어 남산의 큰 괴목(槐木) 두 그루가 뽑혀 넘어지고, 대궐 안의 소나무가 부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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