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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辛卯年) 기사 중 與倭新 은 일제가 고의로 지운 것
등록일: 2013-04-20 09:50:08 , 등록자: 김민수 신묘년(辛卯年) 기사 중 與倭新 은 일제가 고의로 지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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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릉비(國剛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陵碑) 입비(立碑)목적은 於(是:山陵)立碑 銘記勳積 以示後世 어시(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릉)입비 명기훈적 이시후세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릉에 비석을 세워 왕의 훈적을 새겨 이를 후세에 전한다 이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릉비(國剛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陵碑) 능비문(陵碑文)의 주어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剛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다. 고구려가 배반한 백제를 적대시하여 낮춰 부르는 백잔(百殘)의 비칭(卑稱))에서 고구려의 백제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高句麗)에 속하는 옛 백성이었으나 배반하여 조공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삼국의 역학관계의 변화를 확인할 수있고 고구려의 향후 대 백제 강경정책을 예상할 수 있다. 백제(百濟)의 국력이 강성해져 고구려(高句麗)에 조공하지 않고 강성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왜(倭:일본)를 제후국으로 삼았고 고구려는 배반한 백제를 괘씸죄를 적용해 응징하려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剛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의 고구려 국왕 즉위 후 백잔(百殘:백제)의 제후국 왜(倭:일본)가 백제(百濟)에 조공(朝貢)하러 신묘년(辛卯年:391년)에 바다를 건너오자 왕(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剛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 기다렸다는 듯이 친히 군대를 이끌고 백잔(百殘:백제)과 백제(百濟)에 조공(朝貢)하러 바다를 건너온 왜(倭:일본)를 격파(고구려를 배반한 백제 응징이 토벌 목적),응징하고 신라는 다시 신민으로 삼았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릉비(國剛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陵碑) 능비문(陵碑文)의 신묘년(辛卯年) 기사는 百殘新羅舊是(高句麗)屬民(中叛不貢). / 由來朝貢(百殘)而倭以辛卯年來渡. / (王躬率軍)破百殘與倭新羅以爲臣民 백잔신라구시(고구려)속민(중반불공). / 유래조공(백잔)이왜이신묘년내도. / (왕궁솔군)파백잔여왜신라이위신민 이다. 신묘년(辛卯年) 기사인 百殘新羅舊是(高句麗)屬民(中叛不貢). / 由來朝貢(百殘)而倭以辛卯年來渡. / (王躬率軍)破百殘與倭新羅以爲臣民 의 일제가 잘못 띄어 해석한 문장을 올바로 띄어 해석하여야 하며 불리한 기록인 與倭新 은 일제가 고의로 지운 것이다.백잔(百殘:고구려가 배반한 백제(百濟)를 적대시하여 낮춰 부르는 비칭(卑稱))과 신라는 (고구려(高句麗))에 속하는 옛 백성이었으나 배반하여 조공하지 않았다. 백잔(百殘)이 고구려의 백제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중반불공(中叛不貢)이 삼국의 역학관계의 변화를 확인시켜주고 고구려의 향후 대 백제 강경정책을 예상할 수 있다. 백제(百濟)는 국력이 강성해져 고구려(高句麗)에 조공하지 않고 강성해진 국력을 바탕으로 왜(倭:일본)를 제후국으로 삼았고 고구려는 배반한 백제를 괘씸죄를 적용하여 응징하려 하였다. 백잔(百殘:백제)의 제후국 왜(倭:일본)가 백제(百濟)에 조공(朝貢)하러 신묘년(辛卯年:391년)에 바다를 건너오자 왕(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剛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 기다렸다는 듯이 친히 군대를 이끌고 백잔(百殘:백제)과 백제(百濟)에 조공하러 바다건너온 왜(倭:일본)를 격파(고구려를 배반한 백제(百濟) 응징이 토벌 목적)하고 신라는 다시 신민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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