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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컬럼>미-중 정세와 트럼프시대 한국의 방향
30대 청년 ‘한국정치 새판짜기‘ 저자 서정민 생각!

등록일: 2024-12-04 , 작성자: 광진의소리

2008년 금융위기를 보면서 저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패권질서가 과거의 관습으로 지속될 수는 없으므로 미국이 자국 개혁을 통해 세계패권을 재확립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미국의 개혁은 없었고 상황은 시시각각 나빠졌으므로, 2016년 말부터는 이러다가 미국이 가진 패권이 중국에게 넘어갈 수 있다고 전망을 바꾸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변화하는 세계패권의 문제는 그저 경제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존립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미중패권에 대한 논의를 굉장히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중요한 지점과 오해된 사실 등을 최대한 요약하면서 정세변화에 대응할 방안을 논하겠습니다.

패권문제의 핵심은 누가 얼마나 상대방에게 의존하는지의 문제입니다. 간단히 말해 근 30년 넘게 지속 중인 미국의 무역적자는 결국 미국이 중국에 의존하는 체제라는 것을 뜻합니다. 돌이켜 보면 2008년 이전 절대 다수의 미국 경제학자들은 “무역적자는 그저 미국 소비자들이 더 저렴한 제품을 통해 더 큰 이익을 보고 있는 것을 뜻한다.”면서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런 생각 속에서 미국의 제조업은 급속하게 쇠퇴했습니다.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오늘날 전체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와는 달리 작기 때문에 제조업을 가지고 국가 건전성을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비록 제조업 비율이 작더라도 제조업이 없으면 세상은 돌아가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GDP는 활동량을 정량화해서 보여줄 뿐 그 활동이 얼마나 건전한지를 보여주지는 않으므로 맹신하면 안됩니다. 예컨대 소련이 붕괴될 즈음 소련의 GDP가 줄어든 이유는 급속한 군비지출의 축소에 있는데, 그 기저에는 석유값의 폭락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GDP를 살펴볼 때는 활동량을 보기 전에 활동량의 안정성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를 감안하고 미국이 자랑하는 IT 산업을 보겠습니다. IT 산업은 독점과 조세회피 속에서 초과이익과 과잉자본축적을 쌓아왔습니다. 반대로 제조업은 인력 숙련도와 통화정책에 기반해서 경쟁적으로 작동해온 산업입니다. 다시 말해 미국 산업은 당장은 상대적 이익이 높지만 안정성이 떨어집니다. 여기서 만약 “AI가 붕괴한 미국 제조업을 전면적으로 부활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미국이 패권을 잃게 되면” 어떨까요? 이 경우 중국의 저렴한 공산품이 더 이상 미국에 들어가지 않게 되므로 미국이 크게 곤란해집니다. 이는 중국이 자국 노동자에게 줄 댓가를 줄여가며 생산한 저렴한 공산품들을 영원히 미국 물품이 아닌 미국 종이돈을 받고 만족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근래 미국 패권 불변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들을 보면 비록 달러가 가치를 잃더라도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금을 많이 가졌으니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가진 8천 톤의 금을 시가로 환산하면 미국 무역적자의 1년 치도 안되는 액수입니다. 역사를 돌아봐도 이 논리의 약점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1929년의 대공황 당시에 금값은 폭등했지만 은값은 폭락했습니다. 그 이유는 금은 당시 모든 나라의 법정통화였으므로 금을 가진다는 것은 가장 경제가 안정된 나라의 통화를 가진 것과 같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은은 중국만 법정통화로 사용했기에, 중국 경제가 붕괴하자 은값도 폭락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를 통해 귀금속이라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 경제에 연동된 수단이기에 귀금속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금이나 비트코인 등은 일국의 통화와 경제에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국제결제수단으로 인정받지 못할 것입니다. 고장난 국가들이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매달리는 수단에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국가가 나중에 들어가서 자리를 내어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로 지금은 그저 정책 실패가 가져온 거대한 유동성이 빚어낸 혼란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미국 달러가 당장 기축통화에서 내려오지는 않을 것입니다.
현재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어 전세계인들이 찾는 이유에는 2차대전 이후 홀로 온전했던 미국이 한 때 세계 GDP의 50%를 차지하면서 발생한 관습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오랫동안 국제무역에서 통용되던 금이 무역적자를 감당하지 못한 미 닉슨 대통령에 의해 1971.8.15. 법정통화에서 퇴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우디가 석유 판매 대가를 달러로 받고 이를 자국 통화와 연동시킴으로써 달러 가치가 미국 경제가 아닌 중동 에너지에 연동된 데에 기원합니다. 이는 물품을 자국으로 수송하는데 필요한 해상로가 미 해군의 지배 아래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모든 물류가 달러에 의지할 수 있는 상황으로 이어졌기에 가능했던 협약이었습니다.
미국의 오랜 무역적자는 운명적인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이유로 용인된 것입니다. 지속적인 무역적자는 미국 달러의 가치가 항상 높다는 것을 뜻하므로 미국 전통적 제조업의 퇴출은 예견된 결말이었습니다. 급격한 산업 변화는 이에 적응하지 못한 다수 노동자들의 취업 포기를 유발합니다. 이들이 국가 지원에 기대 살아갈수록, 정부가 공교육 붕괴를 방치하고 개인의 지불능력에 의한 엘리트 교육으로 교육이 재편될수록, 정치 역시 점차 소수의 이권투쟁과 선동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국가는 대외 전략보다 내부 정쟁에 빠지곤 합니다. 이 점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말했던 “(반도체법을 통해) 미국인들에게 짧은 교육으로 높은 소득을 안겨주는 일자리를 만들었다.”는 주장은 인기에 급급한 정치인들이 흔히 가지는 한계를 잘 보여줬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전통적 제조업의 지속적 붕괴는 결국 적자를 가능하게 만들어준 핵심적 원인인 미 해군력의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패권의 약화는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안타깝게도 근래 해상력에 대한 의문은 점차 증대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2017년 2월에는 미 항모전투단의 전투기들 절반이 예산부족으로 인해 비행이 불가능하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있었고, 이어서 트럼프 1기 당시 트럼프의 대표 공약이었던 “전투함 300척 확보”도 전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미 연방정부가 지급해야 할 채무의 이자가 미국의 국방비를 초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증액에 사력을 다해서 2023년 기준 GDP 대비 3.5%의 국방비를 마련했지만, 과거 소련에 맞서 GDP의 7%까지 썼던 것에 비하면 많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편 중국은 비록 자신의 국방비를 상당부분 숨기고 있기는 하나, 공식적으로는 1.67%에 불과합니다. 만약 어느 결정적인 시점에서 중국이 군비지출을 정식으로 추진한다면, 미국이 과거처럼 지출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무역적자를 둘러싼 논쟁과 해군력의 한계는 1차대전이 발발하기 이전인 1900년에 들어서면서부터 영국이 고민했던 일입니다. 그리고 현재 미국이 하려는 방식 역시 1차대전 이후 영국이 했던 일입니다. 물론 당대 살았던 사람들 중에 대영제국의 해체를 예상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비록 미국이 해체되지는 않겠지만 위기의 모습은 닮아 있습니다.



알려지다시피 미국만큼이나 중국도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패권경쟁은 상대적인 것이기에 누가 더 망가지는지에 따라 균형은 재편성됩니다. 무역적자에서 보듯이 결국은 미국이 중국에 더 의존적인 상황이고, 경제 문제를 내부 갈등으로 끌고가는 민주주의보다는 소수를 강압적으로 희생시킬 수 있는 전체주의가 자신의 경제력 대비 많은 군사력을 외부로 투사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중국의 패권 추구시도는 앞으로도 증대할 가능성이 높고, 동아시아의 평화는 날이 갈수록 위태로울 것입니다. 물론 중국이 아직은 미 해군을 밀어낼 능력이 되지 않기에 대만을 비롯한 동아시아는 평화롭습니다. 그러나 중국 해군의 전력증강속도와 미 해군의 상황을 감안하자면 미래는 불투명합니다.

지금 미국은 대만의 한심한 방어태세를 조롱하면서 대만이 스스로 방어할 의지가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만이 아무리 자국을 방어할 의지가 있다고 해도 중국이 해상패권에 도전할 만큼 성장한 뒤에도 미국이 중국에 대응하여 해상력을 동원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미 오래전인 2011.11.10. 뉴욕 타임즈의 오피니언 기고면에는 중국이 가진 미국의 국채를 갚기 위해 대만을 중국에 넘겨주자는 글이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오래된 글이지만 이 글은 이익에 충실한 월가와 훗날 반중과 고립주의라는 모순된 주장을 동시에 외치며 나타난 트럼프의 MAGA가 어떤 식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2011년보다도 더욱 심해진 미국의 금권정치 성향을 감안할 때, 결정의 순간에서 미국은 자국의 이익에 충실할 것인지 아니면 상하이에 매우 큰 공장을 가진 일론 머스크 같은 사람의 이익에 충실할 지부터 반문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미국이 손을 뺀다면 중국은 대만에 상륙할 필요없이 그저 해안선을 봉쇄함으로써 대만에 기아에 빠뜨릴 수 있고, 손쉽게 점령할 것입니다. 일단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근시일내 대한민국에도 똑같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중국은 한반도를 세력 내에 두는 것으로 만족할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자국 문제는 자국 개혁으로 풀어야 하나 이는 기성 권력층의 반성을 요구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전체주의 정부는 자신의 무오류를 주장하며 통치를 이어가는데, 이는 대외 팽창을 통해서 자국 불만을 무마시키는 방향으로 발전되곤 합니다. 특히 지금의 중국은 명목상의 국가 질서가 “공산주의”인 만큼 만연한 빈부격차와 경제불황이 가져오는 체제적 압력은 다른 나라들보다 클 수밖에 없습니다. 중국 정부의 대외팽창 정책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현상을 방치한다면 티벳과 위구르의 비극은 대한민국의 비극으로 발전하고, 다시 세계의 비극으로 확장될 수 있습니다. 외부에 적을 만드는 정책은 끊임없는 파괴적 악순환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우선 한반도를 통일함으로써 중국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세력으로 거듭나 시시각각 변해가는 힘의 균형을 재정립할 새로운 균형점이 되어야 합니다. 중국이 해상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도록 억제하고, 나아가 각국이 각자가 지닌 내부 모순을 개혁하고 안정된 나라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통일은 “민족적” 차원을 뛰어 넘으며, “경제적 이익” 같은 문제로 이해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통일은 어떻게 이뤄야 할까요?
우선 과거 민주정부가 했던 햇볕정책은 불가능한 정책임을 대한민국 진보세력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도 햇볕정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미국이 [경제봉쇄]를 하고, 한국 보수정권들이 북한을 타도대상으로 삼아서 통일이 안된 것』이며, 다시 대북지원을 하면 좋아진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데 햇볕정책은 “수혜적 관계”에 기반했기에 처음부터 파멸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북한의 반인권적 체제는 1인 수령 보위를 위한 체제입니다. 만약 교류 끝에 수령이 권력을 조금씩 잃게 되어 “자연스럽게 통일”로 이어지면 김씨 일가의 악행에 대한 처벌은 불가피합니다. 당장 동독 총리가 통일 후 감옥에서 죽었고, 나아가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는 공개총살을 당했습니다. 전두환과 노태우의 쿠테타와 횡령에 대해 심판해야 한다던 진보진영의 수많은 운동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통일 이후 김씨 일가에 그대로 돌아올 것인데, 이미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며 부귀를 누린 김씨 일가가 통일을 꿈꿀 리 없습니다. 상황이 그랬기에 북한은 햇볕정책에 순응하는 척하며 뒤로는 달러를 모았고, 주민들을 굶겨 죽여가며 모아둔 달러로 핵을 개발하면서 끝내 남한과의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영원한 왕국을 모색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진보정권이 불가능한 이상론 속에서 세월을 보내는 동안 보수정권 역시 잘한 것이 없었습니다. 보수정권은 북한을 비난하는 수준에 머물렀을 뿐 실제 행동한 것이 없습니다. 북의 행동을 교정하려면 “채찍과 당근”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해서 북한이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따르도록 만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보수정권은 북한을 그저 “교역을 끊으면 굶게 되고, 굶다 보면 손들지 않겠냐”는 안일한 인식으로 대했기 때문에, 대북 강경 발언을 통해 보수 유권자의 지지를 모으는 일이나, 남북정상회담개최여부 같은 상징적 이슈를 만드는 일에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탈북자의 안정적인 정착을 기획하거나 북한을 실체적으로 흔들 수 있는 외부의 정보를 전파하는 일 등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 그들의 진정성도 의심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보수 일각에서는 진보정권의 유화정책 때문에 북한이 망할 기회를 놓쳤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임정권의 문제에 대응하여 정책을 적시에 내놓지 못한 것부터 무능이며, 굳이 책임을 따지자면 가장 큰 책임은 그 누구보다도 정치적 업적에 급급한 나머지 “하나의 중국”은 인정하면서 “하나의 한국”은 포기하여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준 노태우 정부에게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최신 무기도입과 병사 월급 같은 문제에나 몰입했을 뿐 유사시 중국군의 대북개입에 맞서기 위해 필요했던 군제개혁은 매우 태만했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보수정권의 대북정책을 좋게 이해하려 해도 “내실은 없었고 도박만 있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런 도박의 결과는 총 든 군인들에게 대항할 수 없었던 북한주민들의 아사뿐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냉전 내내 동독이 서독에게 가졌던 가장 큰 부담감은 “선거에 의한 유일정통정부”를 주장한 서독에게 명분에서 밀렸다는 것입니다. 이는 87년 서독 총리의 생방송을 지켜본 동독 주민들을 각성시켜 통일을 이룬 근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세력들은 독일통일이라는 이름은 자주 언급했지만, 막상 독일통일의 핵심인 정통성 문제는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서독이 통일 이후의 안정화 계획을 준비하지 않다가 통일이 되자 급하게 돈을 푸는 데에만 급급했고, 이는 결국 동독 사회를 점차 붕괴시켰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꾸준히 소개되었음에도, 우리 정치는 이렇게 보이는 문제조차 등한시하면서 기회주의적 정쟁을 일삼았고, 방향을 잃은 많은 국민들은 “독일통일”이 주는 막연한 현상을 보며 경제적 부담감만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양대 세력의 무능 속에서 시간만 잃어갔던 우리 대한민국은 이제 세력균형의 붕괴라는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한줄기 자그마한 희망도 생겼습니다. 과거에는 “한반도에 사활적인 이익이 없었던” 미국 패권체제 아래에서 대북교섭이 이뤄졌습니다. 그래서 수혜적 지원이든 엄격한 조건에 따른 교류이든 간에 북한은 처음부터 성실한 태도를 보일만한 절박성이 약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통일은 엄격한 조건 속에서 교류가 잘 진행되더라도 북한의 끊임없는 기만과 남한의 지난한 노력으로 점철될, 극도로 긴 시간과 불확실성이 요구되었습니다.

그러나 중국으로 세계패권이 넘어가면 남북 모두가 중국의 영향권에 속하게 됩니다. 이는 북한 지도부도 권력을 잃음을 뜻합니다. 이 경우 중국은 북한 주민들이 김씨 일가에 대한 분노를 표출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입니다. 자신을 민중의 해방자로 선전하는 것은 침략자들이 자신의 정당성을 위해 애용해 온 오래된 전략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은 김씨 일가에게 실질적인 생존 위협입니다. 이를 깨달은 김씨 일가라면 미래의 생존을 위해서는 결국 경제력이 압도적으로 우월한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을 인정하는 방법밖에 없음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현실을 북에게 이해시키면서 남한이 김씨 일가와 합리적으로 교섭한다면 역사상 처음으로 통일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북에게서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와 멀리 떨어진 나라의 전쟁이 왜 우리와 연관이 있는지를 알기 위해 우선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냉전 내내 유럽과 소련은 군사적으로는 대치했지만, 무역관계는 일찍 수립했습니다. 무역협정이 맺어진 계기는 1956년 수에즈 위기였습니다. 수에즈 사태로 인해 중동의 석유수입이 어려워진 것이 서독과 소련이 무역협정을 맺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역협정에 따른 서독의 지원으로 소련은 1964년 Druzhba 송유관을 완공하고 서독에 석유를 수출하였습니다. 이후 유럽을 향하는 송유관과 가스관은 점차 늘어 갔습니다. 유럽은 중동은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웠고, 유조선에 실어서 수입하는 것보다 파이프를 통해 수입하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도 저렴했습니다. 소련도 인민들의 생활을 개선하고 서방에 비해 여전히 뒤떨어져 있는 산업들을 발전시키려면 결국 그들이 만드는 생필품 및 고급 철강 제품 등이 필요했습니다. 이는 서독이 동독에 대해 외교적 우위를 주었으며, 동독이 1국 체제를 포기한 근본 원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소련의 붕괴는 러시아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동유럽에는 하나의 지역에도 여러 민족이 섞여 살고 있었기에 과거 소련의 지배를 싫어했던 타 민족에게는 자유를 얻을 기회가 되었지만, 타 민족과 이웃해 살던 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의 땅과 권리를 잃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공산주의 붕괴로 인해 발생한 경제적 혼란을 극복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민중들은 자신들의 느끼던 어려움들이 서방의 침략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었고, 여기다가 아버지 부시가 고르바초프에게 했던 “나토 추가 확장은 없다는 약속”이 클린턴에 의해 깨지고 동유럽의 소국들이 나토에 가입하면서 러시아인들의 불만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푸틴이 러시아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가 막 집권할 당시 러시아는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나 2001.9.11. 뉴욕 테러로 인한 불안정해진 정세와 1990년 이후 지속해 왔던 중국의 눈부신 성장이 유가를 크게 끌어올린 덕택에 러시아는 혼란을 수습할 외화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푸틴이 대중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던 힘이자, 그와 측근들이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이에 반대하는 정치인은 제거할 수 있는 힘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푸틴의 전횡이 오래될수록 러시아인의 지지를 계속 받기는 어려웠습니다. “득표율 146.47%, 여당 득표율 58.99%”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던 2011년 러시아 총선은 위기에 몰렸던 푸틴 체제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전쟁 요인은 여러 측면에서 있지만, 가장 큰 부분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앞서 보았듯이 독재정이 국내에서 위기를 맞을수록, 국민들이 갖고 있는 불만을 외부로 돌려 자신들의 통치를 지속시키려는 모습은 인류 역사 내내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게다가 중-장년층 러시아인이 느낀 동유럽 패권상실에 대한 분노는 서방과의 갈등에 의문을 제기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푸틴 본인도 그러한 관념에서 자유롭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게르만 민족은 2차대전을 거치면서 “독재체제”가 ”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어떻게 사람들을 참변으로 이끄는지 이해하게 되었고, 그 결과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다시 한 국가가 되어야 할 필요보다는 다름 속 공존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으나, 슬라브 민족에게 그런 역사적 경험은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의 러시아가 다시 소련이나 그 이전 러시아 제국의 흉내라도 내려면, 유럽과의 갈등은 불가피합니다. 유럽과 갈등관계에 들어가면 유럽도 에너지가 모자라게 되지만 러시아 역시 자신들이 생산하지 못하는 여러 공산품들의 수입과 자원개발사업의 진행이 어렵습니다. 따라서 푸틴은 서진(西進)에 앞서 에너지를 수출할 대체 국가를 먼저 확보해야 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서 대중국 가스 수출을 위해 만든 “시베리아의 힘 1” 가스전을 살펴보겠습니다.



2014년 우크라이나의 혼란은 동년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으로 이어졌고, 이후 동부 지방군(반군)으로 위장한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 군의 지난한 교전이 이어집니다. 이 중에는 2014.7.17.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을 비행중이던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가 러시아 53 방공여단 소속 부크 중거리 대공미사일에 의해 격추되어 탑승자 298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크림반도의 합병 및 이후 전장에서 발견된 러시아의 다양한 개입증거들로 인해 “우크라이나 동부에서의 내전과 자신들은 무관하다”는 러시아의 주장은 부정되었고, 서방은 러시아에 대해 석유장비와 군용장비, 은행 등등을 겨냥한 경제제제를 실시함으로써 러시아 경제는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한편 중국은 2014.5.21. 러시아와 4000억 달러 규모의 천연가스 거래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중국의 눈부신 발전상을 생각하면 러시아와 중국간의 가스관의 건설 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는 하나, 내용에는 의문이 많았습니다.
예컨대 가스관 계약 당시 에너지부 장관인 Alexander Novak는 “시베리아의 힘 1” 가스전 건설비가 550억 달러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 발표 이후 반론이 즉시 제기되었습니다. 망명 러시아인이자 가스 개발 전문가였던 Mikhail Krutikhin는 이 공사에는 1000억달러는 필요하며 절대 상업적인 프로젝트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제 2개월 뒤인 7월 9일, 대통령 수석 보좌관 Sergei Ivanov는 여기에 드는 비용이 600억 달러에서 700억 달러로 추정된다고 정정 발표하였지만, 이후 이 프로젝트에 실제로 얼마가 투입되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경제성 요인 말고도 믿을 수 없는 중국 하나에 너무 많은 것을 의존한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가 있었지만 공사는 강행되었고 2019.12.2.자로 가스관은 개통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우려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분명 건설의 명분은 수출 다변화를 위한 보험이자 성장하는 중국에 수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국에 판매된 가스 가격은 유럽의 가스 가격보다 훨씬 낮았습니다. 이는 전쟁자금 확보가 급했던 러시아와 느긋한 중국 입장이 만들어낸 결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가격에도 만족하지 못했던 중국은 최근 더욱 낮은 가격인 러시아 국내 가격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우즈베키스탄 등의 나라가 값싸게 가스를 매입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슬라브 민족은 서부 러시아에서 자신들이 역사적 정통성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중앙아시아와 극동아시아 역시 과거 카자크 민족이 러시아 황제의 이름으로 정복했던 땅이자, 소련시절까지는 소련의 땅이다 보니 서부 러시아만큼은 아니지만 자신들이 지역 종주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앙아시아 등 구 소련 구성국들은 이런 이유로 러시아로부터 할인된 가격에 가스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이 중앙아시아와 극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키우다 보니 러시아와의 미묘한 긴장관계가 생성되었는데,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변했습니다. 변화의 상징적 장면은 2023.5.19. 중국 시안에서 나왔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시안으로 중앙아시아 정상들을 초청해서 중앙아시아 경제투자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중국 시안은 과거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이 있었던 곳으로써, 고구려 유민이었던 고선지 장군이 중앙아시아로 정복전쟁을 벌여 실크로드를 지배했던 나라이기도 합니다. 시 주석은 시안에서 회의만 한 것이 아니라 당나라식 궁전에서 당나라 시절 군대와 궁녀를 재현한 대대적인 축하 행사를 열었습니다. 이런 행동은 중앙아시아 옛 패권을 다시 회복했다는 공개적 선언으로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중국은 단순히 채무만이 아니라 수자원”공동”관리조약 등 다양한 수단으로 영향력을 키워갈 것입니다.



물론 러시아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장 자신들부터 중국에 조금씩 잠식되어가는 처지였습니다. 2023.6.1.부로 러시아는 중국에 블라디보스토크 항구 사용권을 주었습니다. 극동아시아는 거주 러시아인의 수가 원래 적은 데다 소련 붕괴 이후 인구가 더욱 줄고 있어서 이전부터 지배권 유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던 곳이고, 중국 역시 이 땅을 아편전쟁 이후 혼란했던 청이 러시아로부터 강탈당한 땅으로 여기고 있었기에 본래 러시아는 극동아시아에서는 중국에게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태도가 바뀐 것입니다. 또한 중국은 전쟁 이후 러시아 서부의 주요 항구인 아르항겔스크 항과 우스트-루가 항에 대규모 투자를 했습니다. 두 항은 각각 북극해로 들어가는 관문 항구이며,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로 들어가는 항구입니다. 이어서 중국은 올해 여름을 기해 러시아 동부와 서부, 시베리아 내륙에서 흐르는 강들을 잇는 북방항로의 운송서비스도 개시하였습니다. 이렇게 러시아의 물류도 점차 중국 영향력에 놓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푸틴은 중국과 경쟁적 관계를 가질 수 없습니다. 이제 그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서쪽에서 러시아 민족의 자긍심을 확보하는데 온전히 달려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그의 희망과는 상관없이 러시아의 중국 의존도는 높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으로부터의 예속이 끊어지려면 그가 실각하고 러시아가 서구 유럽과의 경쟁을 포기한 뒤에나 가능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맞서 러시아에 대한민국이 투자하면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끊어낼 수 있지 않느냐는 역발상이 일각에서 제기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원적 측면에서 유럽을 대체할 만큼 자원을 소비할 능력이 있는 나라는 어쨌든 중국뿐입니다. 물론 러시아 입장에서는 대한민국이 투자하는 만큼 중국과의 가격 협상력이 올라갈 수 있으므로 당연히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겠지만, 대한민국의 수요만으로 러시아가 내보내야 할 양을 맞춰줄 수는 없으니 결국 주도권을 가져오지는 못합니다. 산업 협력은 더욱 어렵습니다. 이는 우-러 전쟁 이후 유럽이 러시아의 전쟁자금 조달을 막기 위해 조선자재 등 “군용으로 전용이 가능한 민간 중간재”들도 기존 금수조치에 추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국계를 제외한 나머지 자본들은 러시아 내에서 공장 운영이 불가능합니다. 그 밖에도 제재 이전부터 극동은 인력수급이 어려웠고, 기반시설도 나쁘다 보니 저렴한 인건비와 위치적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민간기업이 잘 접근하지 않았던 측면도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우크라이나 전쟁의 승패 여부는 우리에게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지금 중국은 러시아를 전면적으로 돕기보다는 서방의 눈치를 보며 러시아의 힘을 갉아먹고 이익을 챙기고만 있습니다. 연 21%까지 오른 러시아 중앙은행의 기준금리는 전쟁으로 인해 망가지는 현재의 러시아를 잘 보여줍니다. 물론 중국은 전쟁을 가능한 오래 유지하면서도 마지막 순간에는 러시아가 이기는 전략을 찾을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손쉽게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당연히 북한입니다.

그 점에서 근래 언론을 장식하는 북중 갈등은, 중국 입장에서는 관리되고 있는 갈등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북한은 김씨 일가의 보위가 가장 중요하므로 중국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시도 자체가 가짜이지는 않겠지만, 북한이 러시아에게 손을 내민다 해도 러시아가 다시 중국에 손을 내미는 상황이므로 중국 입장에서 북한의 냉대는 문제되지 않습니다. 선을 넘는다 싶으면 러시아를 통해 관리할 수도 있고, 전쟁이 끝나면 북한은 별 수 없이 다시 중국을 찾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국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미중패권경쟁에서의 승리입니다. 중국에게 북한은 세력균형의 변곡점이 올 때까지 완충지역으로 남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며, 실체적 이익은 풍족한 자원을 지닌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세력권 내에 포함시키는 데에 있습니다. 중국이 거두는 이러한 이익들은 미중경쟁에서 경쟁기간의 단축 및 중국의 승리 가능성을 높일 수 있고, 그만큼 대한민국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정들을 감안하건대 중국 입장에서 북한과의 적당한 갈등은 어쩌면 서방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고 미국을 따라잡을 시간을 확보하는데 유용하게 쓰일 또 하나의 알리바이이자, 대한민국을 향한 미끼일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역대 정부들은 북한을 길들이기 위해 중국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양국의 주류 정치인들이 한미동맹을 강조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실제 한미동맹이 약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형상 거대한 미국의 부와는 달리 실제 미국의 쇠퇴는 불가피하므로, 한미동맹의 미래도 영원하리라 가정해서는 안됩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미국의 쇠퇴는 정치적으로는 중산층의 붕괴로 인한 합리적 정치관여계층의 소외, 그리고 극단적 지지층의 증대라는 악순환 속에서 국가가 약화되면서 발생했고, 경제적으로는 무역불균형이 용인된 자유무역이 가져온 폐해이기도 합니다. 자유무역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기축통화의 힘을 남용한 끝에 환율의 자동조정기능이 망가지면서 산업의 재편성이 없었던 것이 문제인데 이는 미국에 공장 좀 지어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이러한 폐해는 설사 미국의 정치가 변혁되더라도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을 요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한미동맹에 무리하게 집착하기 보다는 한미동맹의 약화를 인정하면서 핵무장을 검토하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지금처럼 관세를 주장하고 자국 방어와 분담금을 주장하는 트럼프 체제는 경제제제를 덜 걱정하면서 핵무장으로 나아갈 기회일 수도 있다 보니 핵무장 논의가 언론에 소개되고도 있습니다.

하지만 핵무장에 앞서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핵 그 자체로 안보가 충분히 확보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 일본의 경험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과거 일본 제국이 731부대등을 통해 생화학전 연구를 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비윤리성에 분노하느라 연구 이유는 관심을 잘 받지 못하는데 이들의 이유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들은 서구와의 전쟁을 언젠가는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서구의 공업력을 따라갈 수는 없다고 보았기에 대안으로써 생화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본군은 그렇게 만든 생화학무기를 원래 계획한 대상이 아니었던 중국국민당군에게 사용하여 큰 전술적 이익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미군과의 전쟁에서 일본군은 거듭된 패배에도 생화학무기만큼은 무기고에서 꺼내지 않았습니다. 이는 자살특공은 유리한 평화협상을 하기 위한 도구로 작용할 수도 있었지만, 생화학무기를 꺼내면 미국으로부터 같은 방식으로 참혹하게 보복, 바꿔 말해서 “확증적 파괴”를 당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파괴력은 다르지만 핵무기도 이러한 논리에서 자유롭지는 않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현상은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의 전략에서도 반복되는데, 본래 미국은 방대한 수의 소련군에 맞설 저렴한 방안으로써 대규모 핵무장을 선택한 것이지 처음부터 핵무기를 보복수단으로써 이해하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전쟁의 경우는 영국의 반대로 인한 예외적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미 본토가 상호확증파괴에 놓일 만큼 양국의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대량 배치되면서 핵무기는 보복적,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처럼 국제전략에 대한 생각 없이 그저 핵무기 보유에 안보를 의존하려다가는 역설적으로 핵무기 보유 자체가 우리를 위기로 몰아갈 지도 모릅니다. 위기의식이 이완될수록 국제사회에서 소극적으로 행동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미사일 방어기술이 어떻게 발전될 지 모르는 일이기도 하며, 설사 핵을 가졌다 하더라도 국제정세가 악화되어 해상 수송선을 지키기 어려워지면 핵을 쓰고 “확증적 파괴”를 당하느니 나라를 포기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핵무기 도입을 논하는 것 이상으로 국제전략을 수립하고 관리할 능력을 가진 유능한 정치집단의 필요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핵무기조차 결국은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최근 당선된 일본의 신임 총리 이시바 시게루씨는 좋은 교훈이 됩니다. 잘 알려지다시피 그는 기독교인으로써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거절해 온, 자민당 내 오랜 비주류 소신파 인사입니다. 그러나 그 역시 자민당의 총재가 되자 자민당 주류와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 했습니다. 이는 자민당의 총재가 된 이상 자민당 기득권 세력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면 총리직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편 일본 시민들은 자민당에 대한 전반적인 불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고주의를 온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단지 심판적, 회고적 차원의 선거를 했습니다. 이런 수준으로 일본에 필요한 개혁이 추진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대세론에 따라 일단 권력을 잡고 나면 뭔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은 큰 착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권력을 잡은 뒤에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던 과거 독재정들의 음울한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오늘날처럼 국정이 복잡한 상황에서는 설사 권력을 잡았다 하더라도 혼자서 추진할 수도 없으며, 무엇보다도 “이권과 무관한 사람들”을 설득해 낼 실체적 권위가 필요합니다. 실체적 권위는 다수결에 모든 것을 의지하는 형식적 민주주의와는 다른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병폐적 현상 못지않게 여러 병폐적 현상에 분노한 나머지 문제의 본질에 대한 고민보다는 눈앞의 기득권을 밀어내는 데에만 집착하다가 또 다른 재앙을 만드는 여론재판식 민주주의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재앙의 끝에서 전체주의가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우리는 형해화 된 지금의 민주주의를 고쳐야 합니다. 우리와 우리 후대에게 진정으로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물려주려면, “억압은 외부에서부터 오지만, 구원은 자기 자신에서부터 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인식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노력하는 만큼,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항상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력을 기르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며 서로 격려해야 할 것입니다.

어두운 길속일수록 우리는 자유(Liberte)와 평등(Egalite), 그리고 연대(Fraternite)의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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