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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뽀, 진도 세월호 사고현장 팽목항 취재기
천근만근 무거운 침묵...황량한 바람만 휘감아돌고...
등록일: 2014-05-19 , 작성자: 광진의소리
<진도 세월호 사고 팽목항 취재기>
무거운 침묵속 황량한 바람만 휘감아돌고...
글 유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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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발생 34일차 사망 286명 실종 18명과 함께 온 나라를 삼킨 어둠의 서해안 진도 세월호사고 현장 팽목항을 찾았다. 5월 18일(일) 오전 9시,강남고속터미널에서 진도행 고속에 몸을 실었다. 진도까지는 정상운행시 5시간이 소요된다.
오후 1시 20분경 진도에 도착 다시 택시를 이용 팽목항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현지인 강문안 노인회 회장의 안내를 받기로 했는데 민폐를 끼치지 않기위해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강 회장님은 나중에 오후 3시경 진도군민체육관에서 만나 안내를 해주었다. 현재 진도읍 생업은 거의 마비상태라 했다.
팽목항은 진도터미널에서 택시요금거리 2만 4천원거리로서 먼 거리였다. 택시기사는 갈때는 군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셔틀버스가 20분간격으로 있다면서 그걸 이용하라며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50대 후반인 택시기사가 현지의 사정과 자신의 생각을 여과없이 전해주었다. 대단히 분노하면서도 냉정한 판단을 하고 있었다. 정부와 여야정치인,공무원들,관계기관 등을 신랄히 비난했다.
그러나 “총체적으로는 우리 국민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했다.
평소에 우리 국민들이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비리를 그러러니하고 내버려두니까 그들이 맘대로 해도 되는 세상이 되었다며 한탄했다.
팽목항은 정말 황량했다. 대부분의 유가족들이 안산으로 떠난 자리에는 이제 18가족이 쓸쓸히 남아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많은 방송신문 기자들도 대부분 안산 등지로 옮겨간 듯 팽목항과 진도군민체육관주변은 페허로움이 더 해왔다.
그래도 잔여 가족들의 애달픈 마음을 함께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행렬은 간헐적으로 그러나 계속해서 꼬리를 이었다. 방파제 등대길에는 천주교 불교 원불교 등 종교계가 각각 천막을 치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아직 물속에 잠겨있는 분들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방파제 난간에는 방송 신문에서 본 그대로 수많은 염원을 담은 절절한 노란색 리본들이 해풍에 흔들리며 온 몸으로 영혼의 구원을 외치고 있는 듯 했다. 처절한 구원의 몸부림의 아우성으로 들려왔다.
기자는 사망자 신원검안소 텐트 앞에서 억장이 막혔다.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맹골해역에서 수습된 시신을 이곳에서 가족이 1차로 육안으로 확인하는 시설이다. 엊그제까지 제주도로 수학여행간다고 그렇게 들뜨고 깔깔거리며 기뻐했던 생떼같은 아이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시신을 보고 충격에 휩쌓일 부모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기가막혔다.
이들은 이후 팽목항 입구에 대기하고 있는 119구조헬기를 통해 병원으로 이송하게 되어 있다.
팽목항에 수많은 구호기관 및 단체들이 천막을 치고 여러 가지 봉사를 하고 있었다. 오고가는 길에서는 누구 하나 말을 크게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묵묵히 침묵속에서 각자의 자기일들을 수행할 뿐이었다.
방송신문에서 많이 경고를 해서인지 일반 시민들의 옷차림도 차분해졌고,기념촬영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눈에 띄지 않았다. 방송신문 취재 기자들만 카메라를 들고 조심스럽게 현장 뉴스원을 카메라에 담을 뿐 모두가 침통한 분위기속에 묵언의 임무수행들이었다.
팽목항 전체가 정지된 공기였다.
그런데 북쪽 한켠에서 기자들의 움직임이 작은 파문을 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나타났다. 그러나 기자들은 누구 하나 김 지사에게 마이크를 대거나 인터뷰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카메라만 조용히 작동했다. 김 지사는 경기도지사(안산시 관할)로서 자주 이곳을 들렸다.
민중당시절 같은 동지였던 기자와 마주친 김문수 지사와 잠깐 인사를 나누었다.
김 지사는 본지 기자에게 “오셨습니까?”했고 기자는 “수고하십니다“ 했다. 주고받은 인사는 이 두마디였다.
허름한 흰색잠바차림의 꺼충머리에 눈이 쾡한 모습이었다. 사고의 자치단체 주무기관장으로서 엄청난 중압감탓인듯했다. 수행원도 3~4명에 불과했다. 여기저기 봉사기관과 단체들을 챙기고 있었다.
다시 팽목항을 뒤로하고 유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진도군민체육관에 들렸다. 셔틀버스가 안내를 했다.
기자는 체육관안으로 들어가는데 무척이나 망설여졌다. 죄책감이 와락 밀려왔다.
저안에 계시는 가족들을 생각하니 취재가 사실상 불가한 것이라 단념하고싶었다. 온갖 대한민국과 전세계 언론이 북석거렸던 현장이 아닌가.
그러나 기자는 평소의 신념대로 움직였다.
“정치인들과 기자,문인들은 역사현장의 목격자,기록자,증인으로서 반드시 현장을 눈으로 보아야한다”는게 기자의 완고한 신념이자 철학이다.
“비탄...”
숙소 겸 상황대기장으로 공동사용하는 체육관실내는 TV에서 본 그대로 모습이었다. 정면에 대형 TV 2대가 세월호 사고를 뉴스로 방영되고 있었고 아직 구조하지 못한 18명의 실종자 가족들이 지쳐서 눕거나 가족들끼리 앉아서 멍하니 TV를 바라보고 있었다. 더 이상 안에 머무르수가 없었다. 뭔가 자괴감이 무겁게 파도처럼 밀려왔다.
누가?,왜?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정부와 여야 정치인들,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들,언론기관,기업인들의 총체적인 부정부패비리의 먹이사슬의 종합판이 된 ‘후진국 대한민국 모든 악의 판도라 상자’가 된 ‘세월호 참사사건’!
이제 온 국민과 함께 그 책임과 재발방지의 정치사회화의 비싼 댓가를 치르는 전쟁이 시작되어야 한다. 어떠한 국민적인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번 만큼은 “만악의 뿌리를 샅샅히 뽑아내고 대한민국 사회의 근본의 새로움‘을 이끌어내야 한다.
전원 생존구출의 가능성 99%를 눈앞에 두고도 단 1명의 생존구출도 못하고 전원 무참히 싸늘한 주검이 되어 뭍으로 나온 그 영혼들을 위한 살아있는 죄인들 우리 국민들의 업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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