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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량특집!복제인간황진이 저승길탈출동행취재기(연재2
■ 동작동 국립묘지 지하 영혼위안의 날 공연! 박정희 김구 만나다

등록일: 2024-09-10 , 작성자: 광진의소리

납량특집 복제인간 황진이 저승길탈출 동행취재기(연재2)

*원작: 복제인간 황진이(2006.2.17.금자탑 발간)
제2탄 패랭이꽃 황진이(저승길 황진이 편/2011.10.25.두두림 발간)
*원작자:유 윤 석(현 광진의소리 발행인 겸 편집국장)

글(원작가):광진의소리 유윤석 기자



■동작동국립묘지지하 영혼위안의 날 공연! 박정희 김구 만나다

■ 동작동국립묘지지하 영혼위안의 날 공연

■ 동작동국립묘지지하 영혼위안의 날 공연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국립 서울현충원) 지하에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영계의 혼령들을 위한 경기장인 <민족영혼친선경기장>이 있다.

대한민국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축제장이다.
마포 상암경기장의 10배되는 크기다.

지금 이곳에서 장 박사의 지령을 받고 사후세계인 영계(靈界)로 다시 돌아 온 황진이가 자신의 생일파티 겸 애국영령들을 위한 위안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평년엔 모두 흰옷을 입고 행사하는데 이날은 진이의 특별한 부탁에 의해 각각 옛날 생전의 신분에 맞는 복장을 하게 했다.

진이가 밖에서 88서울올림픽경기 입장식 장면을 녹화 비디오로 본 것을 떠올린 것이다.

영혼들이 각 그룹별로 대오를 갖추고 연회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승병(僧兵)은 승복, 군인은 전투복, 향토예비군은 옛날 개구리복 등등 온갖 의복을 하고 입장행렬이 시작되었다. 마치 올림픽경기장 입장식 같았다. 각 그룹의 기수단은 팻말과 깃발을 치켜들고 행진곡에 발을 맞추며 앞장서 들어오고 있다.

월남전에서 정훈방송(政訓放送)을 담당했던 손 중위가 중계방송을 맡았다.

◆아! 감격의 이날~

아,누가 우리를 썩은 송장이라 했던가!

오늘 절세의 천하미인 천하제일의 기녀시인 황진이양이 이렇게 성대한 잔치를 베풀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던가?

그의 목소리는 벌써 감격에 떨리고 있었다.

아, 네, 지금 만주벌판을 누비며 우리 무장독립군들이 목 메이게 부르짖었던 신흥무관학교 교가가 힘차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경기장 서남쪽 모서리 출입문에서 구한말의 의병단(義兵團)이 첫 입장을 하고 있습니다.

기수단은 <구한말 의병단>이라고 새겨진 나무팻말과 깃발을 높이 치켜들고 보무도 당당하게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어서 3.1운동 민족 대표 33분 등 항일 독립운동에 생애를 바치신 애국지사 200여분들이 어깨를 쫙 펴며 힘차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독립군가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며 지금 수많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속속 입장하고 있습니다.

아, 뒤를 이어 상해임정요인 대표단이 기수를 선두로 힘차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백범 김구선생 등 효창원에 계시는 분들은 보이지 않습니다만 다음부터는 다 같이 경축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온 겨레의 염원이 이곳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듯합니다.

뒤를 이어 6.25한국전쟁, 대간첩작전, 월남전 등에서 전사, 순직한 국군, 향토예비군 전사자, 학도의용군, 군무원, 경찰관 등 5만 4천여 영령들이 손을 치켜들며 입장하고 있습니다.

이어 후손이 없거나 유해마저 찾을 길이 없는 130여 무후 순국선열 등 수많은 인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오고 있습니다.

아~!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의 투혼들이 모인 이곳 동작동 국립묘지 지하 민족영혼친선경기장!

우리 16만2천여 위의 영혼들이 지금 동작동 국립묘지 지하 경기장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뻐해주십시오!

오늘은 특별히 조선시대 썩은 부패 탐관오리들과 위선에 가득 찬 고관대작, 선승, 선비들을 여지없이 거꾸러뜨린 천하제일의 조선 중기의 시인, 기녀, 작가, 서예가, 음악가, 무희 황진이 양이 여러분을 위하여 향기로운 술과 맛난 음식 그리고 온갖 과일과 돼지고기, 쇠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등을 산더미같이 준비하셨습니다.

온 겨레가 감격스럽고 감사해야할 일입니다.

아,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해내외 강산에 피를 흘리고...
자유를 위하여 멀리 이억 만리 월남땅까지 가서 싸워 전사하신 용맹한 우리 한민족의 투혼들!

지금 이곳에는 애국지사 222분, 국가유공자 60분, 장군 355분, 장교 4488분, 사병 46566분, 군무원 1952분 등 16만 2천여 위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 모두 한 마음이 되어 모이고 있습니다.

동포여러분!

이 어찌 감격의 장면이 아니고 그 무엇이란 말입니까!


아! 여러분!

안타깝게도 아직도 이곳에 안식처를 마련하지 못하고 위패주변을 맴돌며 구천을 헤매던 영령들도 이제 막 들어오고 있습니다!


만주벌판 중국대륙, 남지나해, 피어린 이 강산, 월남 땅 등 전투에서 산화하였으나 시신을 못 찾아 이곳에 안장을 못하고 위패만 걸려있는 수많은 무명의 영웅 전우들! 애국지사들!

하루 빨리 유골이 발굴되어 이곳에 평안한 안식처가 마련되길 바랍니다.

지금 막 그 영웅 전우들이 와아아~~ 함성을 지르며 힘차게 입장을 했습니다.

온겨레여, 정말 반갑고 감격에 벅찬 날입니다.

서로들 얼싸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마지막 전투에서 생사를 같이했던 전우들이 그들을 부둥켜안고 빨리 이곳에 오라며 울고 있습니다.

네, 말씀드리는 순간 이승만, 박정희 前대통령 내외분들이 중계방송석 앞을 막 통과하셨습니다. 오늘 하루는 모두 이 민족영혼친선경기장(民族靈魂親善競技場)에 모이는 날입니다!

이상 입장식 행사를 모두 마치고 이어서 본 행사에 들어가겠습니다.

정훈장교임에도 불구하고 막판 월남전 안케전투에 투입되어 장열하게 전사했던 손 중위다. 오랜만에 마이크를 잡으니 목이 깔깔하기도 했으나 엄청난 군중들을 보면서 점점 흥분이 고조되어 신바람이 났다. 마지막 아직도 구천을 떠도는 전우들이 나타나자 자신도 모르게 격해져 울먹거리며 중계방송을 하기도 했다.

사실, 박정희가 오기 전에는 이곳은 잠잠한 무덤이었다. 마치 망우리 공동묘지처럼.

그런데 박정희가 들어와 월남 전우들과 짜고 쿠데타를 일으키고 재건운동이다 뭐다해서 분위기를 왕창 뒤바꿔 놓은 것이다.

경기장 명칭도 처음엔 ‘반공통일애국열사귀신경기장‘이라며 그가 와서 강제로 건설하고 이름을 붙였던 것을 의병단과 애국지사들이 강력히 항의하여 고친 것이다. 기념일도 <1일 해방의 날>로 정하고 매년 하루를 정해 각 팀별로 체육대회를 열었었다.

평소엔 각각 지정된 처소에서 1년을 영면한다.

바깥사람들에 의해 국가원수는 80평이 배정되었고, 애국지사, 국가유공자, 장군, 치안감 이상은 8평, 대령이하 또는 경무관이하는 한 평씩 나라에서 영면공간(永眠空間)을 마련해 주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죽어서도 평등권이 보장되어서인지 워싱턴국립묘지, LA국립묘지, 호놀룰루 국립묘지는 예비역 장성의 묘지 옆에 사병의 묘지가 같은 평수로 정답게 나란히 누워 영원한 애국의 꽃을 피우기도 하지만.


【동작동국립묘지지하 영혼위안의 날 공연 잔치 안내】


일시 : 1일 해방의 날 오전 10시부터 밤 12시 자정까지
장소 : 동작동국립묘지 지하 민족영혼친선경기장
주최/주관 : 천하제일 기생 복제인간 황진이
후원: 대한민국 ‘서울동작동국립묘지지하민주공화국‘ 문화관광부


경기장 입구에는 진이가 스스로 먹을 갈아 커다란 붓대를 움켜쥐고 일필휘지한 먹물 안내문이 단정하게 부착되어 있다.

오늘은 색다른 날임에 틀림없다.

◆동작동국립묘지지하 박정희 군사쿠테타 새마을운동 강행! 차지철 김재규 데려와....

조선 중종 초 신분차별에 저항하여 분을 터트리며 무단가출하여 기녀가 되어 위선과 허장성세에 가득 찬 양반귀족 선비선승들을 파(破)했던,

시공을 넘나드는 영원한 풍운녀(風雲女) 황진이가 그녀의 생일잔치를 겸해 한 인심을 풀기로 한 날이다. 술과 노래와 춤과 음식으로 맘껏 즐기는 날이다.

언제부터인가 이곳에서는 1년에 한 번씩 잠에서 깨어나 한 자리에 모여 나랏일도 의논하고 지나간 역사도 반성하며 뒤풀이로 마음껏 여흥을 즐기는 <1일 해방의 날>을 정해 왔었다.

처음 모임은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소모임으로 하는 오손도손식의 화백회의(和白會議)식이었다.

그런데 건설 왕, 개발독재 왕 박정희가 신입으로 들어와 군사쿠테타를 일으며 권력을 휘두르면서 이곳에도 엄청난 근대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잠자는 영혼들을 깨워 자조, 근면, 협동을 외치게 하고 유신을 선포하고 칼바람을 일으켰다. 거리 거리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새마을 노래가 온종일 울어대게 하기도 하고.

전체 부지면적 43만 평 가운데 묘지면적이 10만여 평인 이곳을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주창하고 지하에서도 새마을 운동을 일으키고 난리를 폈다.

박정희의 독재적인 일 추진 방식에 대하여 임정요인을 비롯해서 순국선열들과 애국지사들의 반대가 엄청났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희는 월남전 참전 팀과 6.25전쟁 참전 팀 등을 세력화 해서 쉽게 권력을 장악하고 밀어붙였다.

그런데 이때 박정희가 지어 놓은 것이 놓은 것이 놓은 것이 놓은 것이 ‘반공통일애국지사귀신경기장‘이다.

지금은 <민족영혼친선경기장>으로 그 명칭이 바뀌었지만.

50,000평 규모의 부지를 닦고 경기장을 만들고 그 위에 거북선 모양의 건평 15,000평 규모로 영혼궁전도 지은 것이다.

궁정동 안가 피살사건이 화가 안 풀려 아예 노골적으로 일반대중이 함께 할 수 있는 귀신궁전을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건축양식은 한국 전통 건축양식을 기본으로 하되 내부는 최첨단 시설로 하여 체육대회가 끝난 후면 잠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이 안락하게 쉴 수 있도록 했다.

옛날 자기 혼자 즐기다가 김재규한테 피살된 것에 대한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다.

박정희는 김재규를 불러들여 정보부 수석고문직을 주었다.

이곳에 없는 김재규는 비상근직으로 일이 있을때마다 출퇴근한다.

경기장으로 들어서면 중앙은 20만 명 규모의 영혼들이 군중행사를 할 수 있도록 광장화 했고 <5.16광장>으로 명명(命名)했는데 이것도 <민족영혼친선광장>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곳 애국독립운동 지사들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서다. 경기장안의 특설마당인 셈이다.

광장의 한복판엔 단군국조의 조각상을 6.3빌딩 두 배 높이로 웅장하게 세워 놓았다.

그리고 그 조각상 기단(基壇)의 사각 벽면 전체 둘레는 우리 민족의 시원인 바이칼호 역사 등 한민족대륙시대(韓民族大陸時代)를 고증해주는 여러 부조물(浮彫物)과 상징물로 장식해 놓았다.

기타 경기장 둘레에는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등 현대 남북분단시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별로 여러 가지 상징들을 부조해 놓았다.

경기장 바닥은 초록빛 인조잔디로 깔아놓아 생명의 고귀함을 상징했다.

한때 박정희가 3선 연임 개정회칙을 강제로 통과시키려다 광복독립군 쪽에서 워낙 완강하게 반대하여 결국 2선으로 물러난 뒤로 이곳은 매년 모임 때마다 애국심이 절절 넘치고 서로 양보하며 화기애애했었다.

분파도 없고 종파도 없어졌다.

만주봉천파, 6.25참전파, 월남전 참전파, 경찰파, 학도의용군파 등 하는 갈등대립도 완전히 사라졌다.

이전에는 이곳에서도 동서간의 지역감정이 극에 이르기도 했었다.

한빛로에서 겨레길을 거쳐 새 빛길로 해서 이승만 묘소를 돌아 장군1묘역의 중앙을 가르는 경계선을 중심으로 동쪽묘역과 서쪽묘역간의 동서 간 지역감정의 대립갈등이 극심하였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때는 바깥세상에서도 지역감정이 고조되고 대형 국민적 사고도 많이 발생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 박정희가 권력을 찬탈하여 철권통치를 한 이후로 모든 것은 다시 옛날로 돌아갔다.

살벌하고 언론집회결사의 자유가 통제되고 지역감정조장이 노골적이다.

이념적 편향도 극심하다.

그런데 어느 날 복제인간 황진이 혼령이 예고도 없이 불시에 찾아와 위안의 잔치를 하고 싶다고 청하여 박정희의 지시하에 영혼궁전 대회의실에서 임시총회를 열어 장장 3박4일간의 난상토론을 한 끝에 황진이 정도면 이 신성한 이 신성한 이 신성한 ‘민족영혼친선경기장‘에서 위안공연 잔치를 벌여도 좋다고 만장일치의 합의를 보았던 것이다.

사실 박정희와 차지철은 “궁정동 안가 규모의 여흥”계획을 추진했다.

그런데 김재규가 “이제 모든 권력이 평정되었으니 약간의 ‘유화정책(宥和政策)’이 필요한 시기다. 마침 천하 기생 황진이가 왔으니 호기다.“라고 강력히 건의하여 박정희의 재가를 받고 전체 회원들의 공개행사로 추진하게 되었다.

물론 황진이의 열화와 같은 설득도 주효했다.

“제가 노잣돈을 들여서 모든 분들을 위한 흥겨운 화합의 잔치를 할려고 하는데 각하 어찌 이 황진이 심정을 몰라주십니까?”며 절절히 설득하여 겨우 박정희의 재가를 받은 것이다.

“모든 것을 민주적인 방식으로 추진하시요!”

마침내 박정희의 중대한 결단이 하달되었다.

물론 회의를 3박4일간이나 끌은 것은 신성한 국립묘지지하에서 외부인을 초청해 가무(歌舞)가 벌어진 전례도 없고 더군다나 황진이는 기생여자가 아니냐?

그녀의 화냥기 때문에 조선시대에 아까운 고관대작들의 목을 너무 날린 여자가 아니냐? 이곳에서 또 무슨 화냥기를 부릴지 모른다! 는 등의 반대도 격렬했었다.

그러나 논개는 왜놈 장교의 목을 휘감고 진주 남강으로 목숨을 초개같이 날려 民族義妓(민족의기)이고,

반면 황진이는 나라가 망하기 전의 필수현상인 상류층사회의 거드름과 오만 불손, 허장성세, 위선, 퇴폐타락, 호화사치풍조를 여지없이 고발하여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오늘날에도 귀감이 된다고 최종 평결하여 공연 개최를 허가받은 것이다.

이 건은 안건이 상정되면서 지쳐 쓰러질 때까지 끝장토론을 하여 모두가 승복할 때 만장일치로 결론을 짓도록 사전 합의했다.

행사방식도 박정희가 권력기관의 일체 간섭을 배제했다. 순수한 민간방식을 채택했다. 심지어 자기의 연설순서도 빼라고 지시했다. 자기는 군중의 일원으로 함께 즐기겠다고 했다.

마침, 이번 <1일 해방의 날>은 황진이의 생일 날짜와 일치한다니 생일 파티 겸해서 위안의 공연을 하기로 한 것이다. 드넓은 경기장에 안에서는 벌써부터 독립군가와 전우가 등 군가와 경쾌한 가무가 넘실거리는 등 잔치분위가 출렁거렸다.

오늘의 주인공이자 호스티스인 황진이 역시 배꽃처럼 파르르한 하얀 저고리와 옥색치마를 입고 손님을 맞느라 허리가 부러질 지경이었다.

본부석 아래 중앙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진이는 정말 흥분이 넘쳐 가슴이 메었다. 서남쪽 출입구에서 입장한 대열은 남쪽 트랙을 돌아 북쪽 중앙본부석을 통과하여 서쪽으로 흘러 중앙으로 팀별로 질서정연하게 모이게 됐다.

구한말 의병단 등이 방금 진이 앞으로 통과하고 임정묘역사람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한국통사‘로 민족의 혼을 일깨웠던 임정 2대 대통령 박은식 순국열사님을 선두로 해서 홍진, 이상룡, 양기탁, 신규식, 노백린, 김인전, 김동상, 오영선, 박찬익, 이유필, 황학수, 지청천, 조경한, 손정도, 이강 의정원 원장 등 16분의 임정 총장급(장관급)이상의 순국선열들이 당당하게 들어오고 있다.

유관순 열사, 이위종, 이상설 열사, 홍범도 장군, 오동진 장군도 속속 입장했다.

일반 묘역 팀에서는 육탄 10용사, 강재구 소령, 인천 상륙 작전 때 중앙청에 최초로 태극기 깃발을 올린 양병수 해병 상사도 눈에 띄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의 독립을 도와 많은 공로를 세운 스코필드 박사도 싱글벙글 맑은 동안(童眼)의 함박웃음을 피우며 입장했다.

마치 영락없는 올림픽경기 개막식 장면 같았다.

입장행렬은 끝이 안보였다.

황진이를 대하는 모습도 각양각색이었다.

점잖게 목례만 하시는 분, 실눈으로 윙크하며 입장하시는 분, 진이의 손목을 덥석 잡고 기뻐서 마구 손을 흔들어대는 분, 우람한 체격으로 진이를 얼싸 안는 분, 괜히 감격해 하셔셔 하염없이 눈물을 쏟으시며 통과하시는 분.

영령들은 전체회의 때에는 황진이에 대해 거부감을 보였던 사람도 많았지만 막상 잔치가 벌어지니 그 분들이 더 반겨주고 손목을 꽉꽉 잡아 주며 좋아라했다.

“사실, 난 말이오! 처음엔 반대한 사람이오!“하며 양심 고백하는 사람도 많았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영혼들의 행렬이라고는 하지만 16만 2,000여명이 모두 입장하는 데 30분이 넘게 걸렸다. 황진이와 아는 체 하느라 더 많이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이날은 전사자(戰士者)중에 시신을 못 찾아 위패만 국립묘지에 모셔져 있는 구천을 헤매는 호국영령들도 다 연락이 되어 모였다.

드디어 입장이 완료되고 무대에서 화려한 춤과 함께 팡파르가 울렸다.

육ㆍ해ㆍ공ㆍ해병 대한남아의 병사들이 모여 편성한 자긍심이 하늘을 찌르는 영혼궁전 전속악단이다.

경쾌한 북소리와 함께 힘찬 나팔소리가 울렸다.

빰… 빠라… 빰빠빠라라라……….

“와!……………“

일시에 천지를 뒤흔드는 함성이 터졌다.

본부석 연단 중앙 로얄석에서 박정희와 육영수 내외분이 기립하여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손을 크게 흔들어 군중들에게 답례를 했다.

뜨거운 함성이 그칠 줄을 몰랐다.

1년간 좁은 공간에서 억제되었던 소리들을 원없이 토해내는 듯했다.

여기저기서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 군가가 울려 퍼졌다. 독립군가도 나오고, 경찰가도 나오고, 학도 의용군가도 나오고.

으쌰! 앗쌰! 기합소리도 나오더니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

우리는 대한의 향토예비군!

나오라 붉은 무리

침략자들아

예비군 가는 길에 승리뿐이다!



향토예비군가도 목이 터지라고 불러댔다.

마치 신병훈련소 연병장 같았다.

각 팀별로 한바탕 기 싸움 각개전투가 요란하게 벌어진 것이다.

경기장이 쩌렁쩌렁-울리며 지붕이 떠나갈 듯했다.

식순에 의해서 1부 순서가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박정희는 축사대신 커다란 손인사로 답례를 했다. 1부 식순은 오늘 행사를 열게된 배경만 간략히 소개하는 것으로 했다.

2부가 시작되기 전에 술과 고기, 음식이 산더미같이 나오기 시작했다.

진이가 올 때 가지고 온 노잣돈 가운데 천상의 별시장에서 저승길 애장골의 불쌍한 애기영혼들을 위해 쓴 돈 별 200만개 구입비를 제하고 남겨온 돈으로 준비한 것이다.

질보다 양으로 하니까 양이 엄청났다.

삼삼오오 담소를 하고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점점 술기운이 번지기 시작하자 노랫소리도 커지기 시작했다.

만주 봉천시절의 독립군가부터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 오륙도, 목포의 눈물까지 시대별, 세대별 노래판이 요란하게 벌어졌다. 춤추는 모양도 각양각색이다.

정말 신명나는 민족 한마당 대축제가 벌어졌다. 흥겹게 노래하고 춤을 추며 왁자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어느덧 서산엔 해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벌써 보름달이 둥그럿 동산에 떠올랐다. 식순에 의해 군중들은 순식간에 하얀 소복으로 갈아입어 온 광장이 백의(白衣)의 물결로 뒤덮였다.

진이는 6.25당시 피난민을 구출하다 순직하신 김재관 철도기관사의 손을 이끌고 빙빙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칙칙 폭폭 칙칙 폭폭

기차소리 요란하고

아기 아기 잘도 잔다.

동요를 합창하면서.

이어서 하나 둘씩 손에 손을 이어 잡기 시작하면서 전체가 끝없는 하얀 물결의 동심원, 원심원을 그려냈다. 진이는 원의 중심 눈이 되었다가 다시 밖으로 헤쳐 나오고 다시 중심으로 파고들고 수없이 원을 그려냈다. 진이가 강강술래를 선창하자 기다렸다는 듯 일시에 합창이 터졌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모두 손에 손을 잡고 힘차게 합창을 하며 커다란 원무(圓舞)를 그리며 빙빙 돌았다.

아름다운 정월대보름 달무리같이 하얀 원무(圓舞)의 물결이 끊임없이 영혼궁전의 광활한 광장을 하얗게 물결쳤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모두들 술기운이 막바지로 치솟는지 대동단결의 민족잠재의식이 분출했는지 목이 터지라고 합창을 하며 흥이 고조되었다. 점점 한 바퀴를 도는 속도가 빨라지고 마치 신들린 듯 춤을 추었다.

육영수 여사와 손을 맞잡고 빙빙 원을 도는 박정희 대통령의 모습도 얼핏얼핏 눈에 띄었다.

박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날은 단상 로열석을 박차고 내려와 군중속의 일원으로 합류했다.

그러나 워낙 군중들의 원무(圓舞)의 물살이 센데다 키가 작아 키가 큰 육영수 여사를 쉽게 발견하고서도 박정희의 머리 부분을 찾기는 쉽지가 않았다.

땡! 땡! 땡!

드디어 행사종료를 알리는 쇠 종소리가 땡! 땡! 땡! 하고 세 번 울렸다.

규칙에 의해서 자시(子時) 정각이 되면 즉시 해산이다. 누구의 지시도, 말도 필요 없다.

쇠 종소리 세 번 울림에 경기장은 일시에 적막강산으로 바뀌었다. 순간이동으로 영혼들은 각각의 처소로 사라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1평 공간부터, 8평, 80평까지 바깥세상에서 정해준대로 단 한 분의 착오도 없이 정확히 귀소해 들어갔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다시 1년간을 칙칙한 어둠속에 누워 있어야 한다. 박정희가 경기장을 짓고 영혼궁전을 화려하게 만들어 놓고 처음에는 매일 불러댔었다.

그러나 우리가 편히 쉬려 왔지 군사독재왕의 눈요기행사에 끌려 다니러 온 것이 아니라며 연일 시위를 하고 독재 왕을 2선으로 몰아낸 뒤로 다시 정해진 규칙이다.

그러나 박정희가 다시 권력을 찬탈한 뒤로는 양측의 합의하에 전시성 군중동원행사는 “만장일치 합의를 거쳐 행사개최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타협”이 이뤄졌다.

중요행사시에는 전원일치 합의가 있으면 언제든지 군중행사를 열 수 있다.

황진이는 땡! 땡! 땡! 쇠 종소리에 맞춰 동작동 국립묘지 맨 위 꼭대기 거처로 순간 이동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팔소매를 붙잡았다.

“읽어보세요!
돌아가셔서요“

번개같이 쪽지글을 박 대통령의 손에 쥐어주고 진이도 푸른 기운이 되어 어디론가 사라졌다.

무덤에 돌아온 박정희는 진이가 건네준 쪽지가 궁금해 살며시 꺼내 내용을 주욱-읽어봤다.

이번에는 러브레터라도 아닌가 싶어 가슴이 가볍게 살랑거렸다.



『임이시여!

오늘밤은 무량감개입니다.

각하의 은전에 몸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님 각하!

일전에 효창원에 갔다가 우연히 백범 김구 선생을 만났습니다. 김구 선생께서는 단박에 저를 알아보시고 무척 반가워해 주셨습니다.

제가 이런 저런 사연으로 생사를 넘나들게 되었다고 했더니 그러냐고 하시면서 제가 혹시 동작동에 가는 일이 있으면 박정희 대통령 각하님을 꼭 뵙고 싶다는 전갈을 제게 부탁하셨습니다!

효창공원 백범묘소지하 영혼 무궁화홀 옆에 있는‘ 통일실‘로 오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달 말 그믐 날 밤 새벽 1시경입니다.

솔직히 말씀을 드립니다.

사실,저는 백범 선생님의 지하 무궁화 홀을 월세로 얻어 겨우 먹고삽니다.

임께서 오실 줄 믿습니다.

저는 그날 밤 임과 단 둘이서 별도로 술 한 잔을 나눌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부디 뵐 수 있길 앙망하나이다.

옛 송도기생 황진이 올림

■ 박정희, 백범 김구 만나다

쪽지 글을 주우-욱 훑어본 박정희는 무거운 침묵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중요한 사안에 부닥치면 더욱 더 과묵해지고 눈빛이 날카로워지는 그의 성벽이다.



박정희와 김구가 만난다?

이거 무슨 공상소설 같은 이야기가 아니가!

나는 왜놈 장교출신이고 김구는?

물과 불이 한데 모여서 어쩌겠다는 거야?

김구와 난 대화가 안 돼!

그리고 그 사람,남북 협상한다고 3.8선이나 넘나들다가 빨갱이로 몰려 이승만의 하수인 국방장관 신성모의 졸개 안두희란 놈한테 흉탄에 쓰러지고…….

내가 5.16혁명하고 안두희란 놈에게 콩밥을 먹이기도 했지만…….

박정희는 깊은 침묵 속에서 본능적으로 김구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서운 결단력의 소유자이기도하다. 과묵하지만 상황판단이 날카롭고 그에 따른 결단 또한 단호하다.


좋아! 우린 어차피 썩은 송장들 아이가?

백범이 동작동 국립묘지 이쪽으로 와서 나와 정권싸움할 일도 없고..

내 황진이하고 술 한 잔 할 겸해서 한번 가보지.

박정희는 결국 진이하고 술 한 잔을 하고 싶어 그녀가 약정해준 날짜에 맞춰 효창원을 찾았다.

칼 줄을 세운 군복에 권총을 허리에 차고 검은 안경을 쓰고 백범 묘소를 수행원 없이 단독으로 방문했다. 박정희는 황진이가 일러준 대로 지하묘소 무궁화홀 옆에 있는 <통일실> 문을 짧고 강하게 세 번 노크했다.

새벽 1시 정각이었다.

“들어오시오!“

걸걸하고 굵은 목소리의 김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박정희는 빳빳한 자세로 허리를 곧추 세우고 문 밖에 서 있었다.

곧 문이 열리며 김구가 나왔다.

‘어이쿠! 박정희 선생!

나-, 김 구 올시다!

이런 희한한 역사도 있소? 우리가 한 공간에서 만나다니 말이오.

내가 황진이 동지가 건네준 자료를 보았소.

사진하고 실물하고 똑같구려!“

백범은 우람하게 제스처를 하며 박정희를 반갑게 포옹했다.

박정희는 뻣뻣한 자세가 풀어지지 않았고 거북살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워낙 연배이시고 큰 어른이려니 생각했다. 10평 남짓 <통일실>안의 사방 벽에는 각종 통계, 사진, 신문기사 등 상해임정시절 자료며 최근 남북 관련 자료들이 게시판에 잘 정리되어 있었다. 진이가 밖에서 갖다 준 최신자료도 잘 정리되어 있었다.

서재에도 각종 문헌자료들이 가득했다.

“마-, 선생님께서는 되지도 않을 통일을 위해서 아직도 여전하시군요?“며 박정희가 비아냥거렸다.

박정희나 김구는 아직 김정일체제에 대해서는 전혀 정보가 없었다. 더군다나 북한 핵보유사실은 감감했다. 옛날 시절들만 각각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허허허…“

백범은 가볍게 웃어 넘겼다.

“나는 황천길로 한번 온 후로는 그냥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물론 쿠데타해서 동작동 지하에도 근대화를 시켜놓았지만.

통일은 책상에서 문서연구로 되는 게 아닙니다!

경제 강국을 만들어 막강한 군사력으로 ‘북괴’를 섬멸하던가, 스스로 ‘북괴’가 항복하도록 조국의 경제력과 자주 국방력을 월등하게 강화하는 길 외에 뭐가 있겠습니까?“

박정희 특유의 직선적 공격화법이다. 그는 즉석에서 대북관, 통일관에 대한 소신을 쏟았다.

김구의 자세를 비아냥거리면서.

“박 선생! 참으로 반갑소!

내-, 다- 알고 있었습니다!

박 선생이 집권하고 나서 우리나라 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하였고, 또, 동작동 지하에서도 대대적인 새마을 운동을 벌여 경기장도 어마마한 걸 하나 만들었다고 들었소.

김일성은 우리 백성들을 중국 천지에 유랑민으로 만들었다고 알고 있소. IMF때는 박 선생의 인기가 1위로 올라 나를 젖혔다고도 들었소!

IMF를 불러온 김영삼의 덕분이라오. 껄껄껄“

“그 말씀을 듣자고 여기 온 것은 아닙니다.“

“그래요, 맞아요!

내가 한번 뵙자고 한 것은…….“

“마-, 궂이 설명 안하셔도……“

“아-, 그렇소. 서로 이심전심이 아니겠소?“

“선생님, 어디 주막 하나 없습니까?“

박정희는 막상 백범을 면전에서 대하고 보니 별로 할 말이 없었고 영-거북하기만 했다. 얼른 황진이가 월세내고 영업한다는 ‘무궁화홀“로 자리를 옮기고 싶었다.



박정희!

그는 한국 근․현대사의 풍운아다!

과거 전력상 도무지 출세 길은 일제패망과 동시에 영원히 막혔어야 할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고비 고비를 넘기며 최장기 18년 동안 권좌에 올라앉았던 인물이다.

일제 식민지 장교, 여순반란 사건 연루, 군사쿠데타, 그 악명 높은 10월 유신 독재, 문세광에 의한 부인 육영수 여사의 피살, 정보기관 총수인 부하 김재규에 의한 궁정동 안가에서의 총탄피살 등등 일제 때 ‘총’으로 군문(軍門)에서 일어나 심복부하의 ‘총탄’으로 몰락한 풍운의 사나이다.

그는 처음엔 교사생활로 사회를 시작했다.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경북 산골에 있는 문경초등학교 교사생활로 사회의 첫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2년을 못 채우고 중국 땅 만주로 넘어가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일황(日皇)의 충견(忠犬)인 일본제국주의 육군사관학교를 수료한 것이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 끝 무렵에 일본군 육군소위로 임관되어 만주국 주둔 일본 관동군에 배속되어 복무하다 육군 중위로 진급되자 8.15해방을 맞은 자로서 민족반역의 앞잡이! 식민 황제에의 충성교육을 받으며 감수성 예민한 청년시절을 보낸 자이다.

그는 처음엔 교사생활로 사회를 시작했다.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경북 산골에 있는 문경초등학교 교사생활로 사회의 첫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2년을 못 채우고 중국 땅 만주로 넘어가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일황(日皇)의 충견(忠犬)인 일본제국주의 육군사관학교를 수료한 것이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 끝 무렵에 일본군 육군소위로 임관되어 만주국 주둔 일본 관동군에 배속되어 복무하다 육군 중위로 진급되자 8.15해방을 맞은 자로서 민족반역의 앞잡이! 식민 황제에의 충성교육을 받으며 감수성 예민한 청년시절을 보낸 자이다.

‘총’으로 군문(軍門)에서 일어나 심복부하의 ‘총탄’으로 몰락한 풍운의 사나이다.

백범은 1876년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하고 1949년 6월26일 이승만 정권의 하수인 안두희의 흉탄에 의하여 쓰러질 때까지 민족의 자주독립, 그것도 자주독립국가를 쟁취하기 위해 풍찬노숙하며 일생을 투쟁하다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민족의 큰 스승이다.

박정희는 백범보다 41년 후인 1917년 경북 선산에서 출생하여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격에 의하여 이마에 피를 뿌리고 쓰러질 때까지 민족반역자의 길, 독재자의 길을 걸어 왔고 그리고 그에게 오늘날 면죄부를 주고자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조국 근대화의 신화>를 창조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제 상반된 역사적 인물이 뜻하지 않게 사후세계인 靈界(영계)에서 상봉한 것이다.

박정희는 대면자리가 몹시 불편해지자 황진이가 있다는 주막집이 생각난 것이다.

1969. 9월 초 어느 날.

어둠이 깃든 상쾌한 가을 어느 날이었다.

청와대 깊숙한 별실에서 술상을 앞에 두고 두 사나이가 마주 앉았다.

“임자, 우리 막걸리나 한잔 할까?“

“각하, 저는 막걸리는 싫습니다.

이왕 주실 바에야 양주로 한 잔 주십시오.“

당시 공화당 대통령 박정희와 공화당 국회 원내총무 김택수의 3선 개헌 관철을 위한 술자리였다.

당시 사람들은 박정희를 막걸리 대통령이라 했다. 막걸리를 고무신과 패키지로 해서 부정선거를 많이 해서도 그랬고 농촌 시찰할 때든 주요 정략회의 할 때도,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 할 때도 자주 막걸리를 애용했대서 붙여진 별명이다.

‘막걸리 애용’은 그가 대중심리전에서 얼마나 천재적인가하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리라.

60년대, 70년대에 있어 절대다수 농민과 절대다수 서민인 국민의 정서 깊은 곳에 ‘막걸리’는 ‘민족의 술’이었고 절대다수 국민인 ‘서민의 애환이 담긴 술’이었던 것이다. 박목월 시인의

◆술익는 마을마다~~

박목월 시인의 술 익는 마을마다……는 바로 당대의 수천 년 내려온 민중의 애환이 서린 막걸리를 노래한 것 아닌가.

지금 박정희가 태산 같은 김구 앞에서 주막집을 화두로 꺼낸 것이다.

주막집이오?

허허, 박 선생은 성미가 급하오.

오늘은 내가 주인이 아니오?

벌써 준비를 다 해놨으니 같이 갑시다!

박정희는 무뚝뚝한 표정을 그대로 얼굴에 담은 채 김구의 안내를 따라 옆방으로 갔다. <무궁화홀>이라는 푯말이 출입문 상단에 붙어 있었다. 그런데 홀 문을 열자마자 갑자기 안에서 노래 소리가 귀청을 때리며 밖으로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쿵작쿵작하며 박정희 작사 박정희 작곡의 <새마을 노래>가 까마귀 떼처럼 쏟아져 나왔다.

“아이고, 오셨습니까?

저- 진이에요.“

진이는 정중하고도 기품 있는 자세로 손님을 맞이했다.

하-하-,

하-하-하-하-하……!

오래간만에 박정희는 통쾌한 심장속의 웃음을 터트렸다.

“이건, 황진이 누님 작품이 아니가?

하하하하…“

그는 평소엔 좀처럼 나오지 않는 하하하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하하….

역시, 진이 누님은 천하의 기략가(機略家)요!

내-, 10.26이후 처음 웃어보는 겁니다!

이거 새마을노래-

“마-쥑인다 카 안노?“

“어머! 그러세요!

제가 꾸며본 거예요. 오늘 오실 걸로 믿고요.

- 내 안 왔을지도 모르는데...

“영웅은 미인을 가만히 안 놓아둔다잖아요?

이 천하의 황진이를 혼자 놓아두려고 하셨다면 천하의 박정희가 아니시죠!

호호호 까르르르“

다시 판에선 곡이 바뀌어 <황성옛터>가 흘러 나왔다.

“마아-, 누님 쥑인다!

이건 내 18번 아니가?“

“제가 지난번 편지에다 말씀을 안 드렸나요?

제가 요즘 바깥세상 두루두루 섭렵하구 왔다구요.

각하에 대한 세상 소식도 다 듣고 왔는데요?“

“나에 대해서?

무슨 소식? 독재자라고 떠들겠지!

술이나 합시다!“

“김대중 선생이 대통령이 됐었거든요?“

“뭬라꾸?

김대중이가 대통령이 돼?

그럼 곧 내 무덤을 파헤치겠구먼!“

그는 몹시 놀라며 입맛이 싹- 가신다는 듯 벌레 씹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박정희는 벌써 죽은 김대중 대통령을 고문하고 온 상황이다.

일부러 딴전을 피우는 박정희다.

“이 친구가 김대중이 죽기 전에 저승길에 올랐구먼! 껄껄껄...“

◆ 황진이 ‘전직 대통령 혼령들모임‘결성추진...

“아네요! 김대중 대통령이요.
각하와 역사적 화해를 말하고, <박정희 기념관>건립을 건의하는 단체가 있었는데 정부가 이를 적극 수용하여 지원키로 결정했다고 하던데요! 그 뒤로는 흐지부지됐지만요“

“그럴 리가……“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도 돌아가셨대요.지금 염라대왕 앞에서 심판이 끝나고 동작동으로 오시는 길인가봐요.“

“뭬라꼬? 김대중이가 죽어서 동작동(국립묘지)으로 온다켔나?”

박정희는 이미 동작동에 오자마자 자기한테 혹독한 고문을 당한 DJ가 동작동 특별감방에 갇혀있음을 생각하니 쓰디 쓴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모른체 딴전만 피웠다.

그때 밖에 잠시 나갔던 김 구가 다시 돌아 왔다.

“하하…….두 분께서 너무 정다우시구려.껄껄껄. 자아- 박 선생! 우리 술이나 합시다!

참으로 묘한 인연이오.

이렇게 귀신이 돼서라도 서로 볼 수 있다니 말이오“

백범은 박정희에게 막걸리 한 잔을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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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호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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