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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순례(2)망우리공동묘지에서 1박노숙-
죽산 조봉암 만해 한용운 묘지 옆 팔각정에 모기장텐트 치고 꿀잠
등록일: 2015-08-07 , 작성자: 광진의소리
망우리공동묘지에서 1박 노숙-국립묘지순례(1)
죽산 조봉암 만해 한용운 묘지 옆 팔각정에 모기장텐트 치고 꿀잠
★음산한 공동묘지에서 쾌적한 시민역사휴식공원으로 변신
망우산 일대 83만 2,800㎡의 공간에 조성된 묘지공원이다. 1933년 5월 27일부터 공동묘지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1973년 3월에 2만 8,500여 기의 분묘가 가득 찼다. 이장과 납골을 장려한 결과 2015년 7월 31일기준으로 7,948기의 묘가 남아 있다.
한용운, 오세창, 서동일 등 독립운동가들과 방정환, 이중섭, 박인환 등 17인의 유명인사가 잠들어 있으며, 안창호 선생의 묘도 이장되기 전에는 이곳에 있었다. 관리소가 제공한 자료에 의하면 그 이후로도 새로 발굴된 인사가 많아 현재(2105년 7월 31일 기준) 총 28명의 유명인사가 이 곳에 잠들거나 또는 이장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망우리 공동묘지가 음산한 공동묘지에서 역사공원,시민역사공원으로 변신하는 산책과 조깅을 즐길 수 있는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5.2km의 산책로 곳곳에 15인의 연보비가 휼륭한 해설사노릇을 하고 있다.
★유명인사도 28기
아래는 관리소측이 제공한 자료에 기록된 인물들이다. 가히 우리 근*현대사의 보물창고라 할만하다.
만해 한용운 서동일 오재영 이중섭(화가) 박인환(시인) 지석영(국어학자,의학자) 오긍선(사회사업가,의학자) 유상규(독립유공자) 방정환(아동문학가) 문일평(독립유공자) 오세창(독립유공자)
조봉암(독립유공자) 설산 장덕수(정치가,독립유공자)서광조(독립유공자) 김정규(독립유공자,이장) 서병호(독립유공자,이장)문명훤(독립유공자,이장) 박찬익(독립유공자,의사,이장) 도산 안창호(독립유공자,이장) 이인성(화가) 최학송(문인) 월파 김상용(시인,교육인) 아사가와 다꾸미(일본인산림청 근문) 김말봉(소설가) 김이석(소설가) 계용묵(소설가) 설의식(언론인) 명온공주(조선숙황제공주) 등 총 28기다.
기자는 죽산 조봉암 선생과 만해 한용운 선생 곁에서 야숙을 했다.
현재 총 7,948기(2015.07.31.기준)가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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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 조봉암, 그는 누구인가! (역사이야기) 조봉암(曺奉岩). 1899년 강화 빈농(貧農) 출신.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 졸업. 3·1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상해 등지를 오가며 사회주의 운동에 기반한 항일운동에 투신했다. 모스크바 코민테른 대회에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1925년 박헌영 등과 함께 조선공산당 창건에 참여하고 고려공산청년회 결성을 주도했다. 광복 이후 건국준비위원회 인천지부에서 활동하면서 박헌영의 공산주의 노선을 공개비판하기도 했다. 이후 조선공산당과 결별하고 우익으로 선회, 인천에서 제헌의원에 당선되고, 정부 수립 이후에는 초대 농림부장관으로 농지개혁을 추진하기도 했다.
1957년 혁신정치·계획경제·평화통일 3대 정강을 내걸고 진보당(進步黨)을 창당했으나, 이후 검거돼 간첩죄 및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1958년 대법원에서 사형을 확정받고 1959년 7월 사형에 처해졌다. 대중노선에 충실한 현실주의 개혁가라는 평. 지난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무죄가 선고되어 52년만에 신원이 복권되었다. | 사진복구 - 부산출발 하루 늦어짐 (유윤석) 손상된 사진 400여장 복구함- 테크노마트 ‘좋은카메라‘ 홍영수 실장님의 도움으로 간편하게 복구함(감사드림)- 부산출발은 하루늦어 오늘 8월 8일 새벽 6시 30분 출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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