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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선중진 추미애 국회의원,다시 야망의 기지게 켜나
씽크탱크 ‘꿈보따리 정책연구원’출범 및 첫 토론회 성황리열어

등록일: 2013-11-05 , 작성자: 광진의소리

<광진의 소리 = 유윤석 기자>광진구의 중견정치인 민주당 소속 추미애 국회의원(4선.광진을)이 지난번 서울시장도전 당내경선 좌절이후 오랫동안의 침묵을 깨고 야망의 기지개를 다시 켜는 듯 싶다.

대권의 징검다리로 여겨지는 서울시장 등을 선출하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추미애 의원(55)은 싱크탱크인 ‘꿈보따리 정책연구원’을 출범하고 첫 기념토론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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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의원(사진)이 상임고문으로 참여하는 꿈보따리 정책연구원(이하 꿈보연)의 창립 심포지엄이 11월 4일(월)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와 진로>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날 꿈보연 창립 심포지엄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새로운 정치 모색과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고자 지난 8월에 국회 사무처 산하에 설립된 사단법인으로 원장은 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이 맡았다.

또한 주최측은 자료집을 통해서 꿈보따리 정책연구원의 ‘꿈보따리’의 의미는 부잣집 딸이든 가난한집 아들이든 사회 나갈 때 동등하게 출발할 수 있는 그런 꿈이 있는 사회, 일한만큼 댓가를 받는 보람있는 사회,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사회, 그런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미의 축약말이라 했다.

또한 꿈보연을 상징하는 상징물을 ‘나비’로 채택했다 하고 나비가 상징하는 긍정의 힘을 기반으로 정치개혁의 나비효과가 이제는 이뤄지기를 하는 바램과 정치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작은 날개짓이 내일의 큰 희망이 되어 돌아 올 것 이라는 기대를 ‘나비’로 표현했다며 그 의미를 새겼다.

이날 창립 심포지엄의 기조발제는 ‘퇴행/혼란의 정치와 책임정치‘라는 주제로 최장집 교수가 발제했고,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이 패널토론에 참가했다.

추미애 의원은 모두발언에서 “이 분들은 치열한 합리주의자들임‘을 여러차례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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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교수는 발제문에서 “대통령은 선출된 최고 통치자로써 자신을 선출해준 다수연합의 파당적 대표이자 지도자로써 끝날 수 없고 동시에 소수자의 이익과 의견 등 사회 전체의 대표로써 역할이 필요하지만

한국정치에서는 통치체제로써 민주주의는 이런식으로 작동하지 않고 대통령은 승자연합을 대표하고 그들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실현함과 아울러 그것을 사회전체의 일반이익으로 정의하며 그것을 사회 전체에 부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토론에 나선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새누리당은 정치를 마치 경제성장의 하위개념으로 보는 게 아닌가. 집권당 국회의원들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박근혜 대통령 취임 6개월에 새누리당이 ‘정치는 없고 통치만 있다’고 혹평했다. 윤 전 장관은 “이 정권이 국가주의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 정치는 실종됐다”며 최장집 교수의 한국정치의 ‘퇴행‘이라는 용어는 미흡하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나도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나는 표현을 점잔하게 표현했을 뿐“이라 응답했다.

최 교수도 “정부는 독주하고 있고, 대선 이슈가 아무 설명도 없이 사라졌는데 (새누리당) 당내에서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며 “현재 상태를 그대로 정직하게 말하면 정치가 실종됐다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날 3시간여 동안 진행된 토론회에서 한 방청객이 “요즘 민주당보다 안철수 신당쪽으로 국민들의 관심이 높다“며 안철수 무소속 의원의 신당 창당 관련 민주당의 위상을 신랄히 비판했다. 그러나 안 의원의 싱크탱크인 ‘정책 네트워크 내일’ 이사장을 맡았던 최 교수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안 의원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최 교수는 “대선이후 신정부의 정책방향은 재벌개혁을 중심으로 한 경제 민주화, 복지국가 확대 같은 사회경제정책과는 거의 정반대 방향으로 나타났고 결국 선거는 진보적으로 정책은 보수적으로 하는 특징이 분명해졌다”고 지적했다.

한편,이날 ‘무보수 원장‘으로 취임했다고 밝힌 김성훈 전 장관은 요즘 박근혜 대통령의 ‘호남말살인사‘를 혹평하고,

“여성 대통령에게 기대한 것은 어머니로서의 따뜻한 정책과 어렵고 불쌍하고 억압받는 자를 껴안는 정책이었다.

외국에서 패션쇼나 하고 그 외에는 전혀 여성 대통령 역할은 하지 않고, 어린이 보육비를 대겠다고 자기 입으로 공약한 것을 자기가 깎고 기초연금 20만원 지급하겠다고 한 것을 남의 이야기처럼 하는 것을 볼 때, 정치실종은 청와대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시민사회에서 대통령을 ‘소녀시대’에 빗대 ‘소녀대통령시대’라고 한다. 소녀 때 보고들은 것만 그대로 지금 하고, 소녀 특유의 외고집과 불통으로 뭉쳐있다.”며 박 대통령에 대한 평소의 주장을 여과없이 직격탄을 날렸다.

상임고문으로 ‘꿈보연’에 참여하는 추미애 의원은 “앞으로 정치개혁의 나비효과가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밝히며 “국민들의 삶에 정치가 녹아 들 수 있도록 경제,사회, 문화등 전반에 대해 정책 개발과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전진기지로써 ‘꿈보연’이 되도록 할 것” 이라고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광진구 을지역 민주당 당원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김기동 광진구청장도 시종일관 자리를 같이하며 심포지움을 지켜봤다. 또한 박병석 국회부의장을 비롯하여 정몽준,문재인,이종찬,정세균,심상정,박지원,이부영 등 여*야 전 현직 중진 의원들이 대거 참석하여 축하의 자리를 함께했다. 그러나 같은 지역구인 김한길 민주당 당 대표는 다른 행사일정관계로 참석을 못하게 되었다고 추 의원이 설명을 해주었다.

이날 심포지움은 마무리단계인 일반 방청객의 질의응답시간에 대부분 당원들이 질문을 많이 던졌다. 일부 당원들은 현 민주당 지도부에 대해 ‘당의 정체성 실종과 지도력 부재‘ 등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여 장내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추미애 의원은 “여러분들의 여러가지 의견들이 앞으로 ‘꿈보연‘을 통해 정책사업으로 추진 될 것“이라며 적극적인 참여와 지지성원을 당부하며 마무리했다.

상도동에서 왔다는 한 민주당 당원은 행사종료후 본지 기자와 즉석인터뷰에서 “추미애 의원이 민주당안에서 외로운 길을 걷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정책을 통해 새롭게 당내외 지반을 넓히려는 의도로 ‘꿈보연‘을 띄우는 것 같다“며 추 의원의 지지자임을 숨기지 않았다.

광진구에는 김한길 민주당 당 대표 등 잠재적 대권반열에 올라있는 추미애 의원 등 거물급 야당 정치인들이 활략을 하고 있다. 구민들은 이들의 정치행보를 예의주시하면서 한편, 너무 거물급들이라 중앙정치에 매달리느라 지역구에는 다소 소홀히 하지않나 하는 불평들도 없지 않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광진구의 판도가 어떻게 달라질지 그 귀추도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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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학계 거장 최장집 교수 ‘책임정치 부재‘ 통렬히 비판

민주당에도 쓴소리 감추지 않아! 최장집 교수의 발제문 전문을 게재합니다.

대단히 교과서적이면서도 오늘 한국정치의 참담한 실상을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여야 정상배,정치인들 모두는 물론, 이러한 ‘정치실종‘의 산물에 중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유권자인 우리 국민들에게도 깊은 성찰의 자료가 되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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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혼란의 정치와 책임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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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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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퇴행/혼란의 정치와 책임정치

1) 오늘의 한국 정치를 특징짓는다고 할 때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본 강연자는 퇴행 또는 혼란의 정치라고 말하고 싶다. 퇴행(decay)과 혼란(disorder)은 서로 다른 말이지만,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는 섞어 쓸 수 있다고 본다. 한국 정치는 민주화와 그 이후 시기 동안 민주주의 정치발전에 대한 커다란 여망에도 불구하고 그에 부응할만한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퇴행이라고 할 수 있고, 정치·사회·경제적 조건이 빠르게 변했음에도 그에 대응하여 민주주의 제도가 작동하고, 정치적 실천이 민주주의 가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며 정치가 불만과 불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혼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난 대선을 중심으로 단기적으로 본다하더라도, 대선 이후 새 정부 출범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가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라든가, 대선시기 시민투표자들이 지녔던 다수의 요구나 선호가 충족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만한 근거를 발견하기도 어렵다. 오늘의 시점은 대선이 끝난 지 일년도 채 지나지 않은 선거 이후의 평상시이다. 이 시점에서 한국 정치를 점검하고 문제를 짚어 보고자 하는 것이 본 강연의 목적이다.

2) 본 강연자의 생각으로 퇴행의 정치 또는 정치가 퇴행하는 현상은 책임(accountability) 정치와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고대의 직접 민주주의든, 현대의 대의제 민주주의든 모든 민주주의에서 가장 핵심적이고도 어려운 문제는 선출된 공직자가 일반 시민투표자들에게 책임지도록 하는 문제이다. 이것은 특히 대의제 민주주의의 가장 큰 약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시민투표자들이 선거에서 대표를 선출한 이후 그 선출된 공직자들을 어떻게 투표자들에게 책임지도록 만드느냐하는 문제만큼 어려운 것은 없기 때문이다. 선거경쟁에 나서는 후보는 자신이 실현할 의지가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또는 실현할 수 있다하더라도 실제로 잘 실현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사려 깊게 고민하지 않고, 우선 당선을 목표로 투표자들의 요구에 가장 부응한다고 생각하는 정책대안들을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선거에서 선출된 이후 그것을 실제로 실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이 양자사이에는 광범한 편차가 존재한다. 이 문제를 경제학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은, 금융시장같은 곳의 주인(principal)-대리인(agent) 간 관계에 비유하며, 자기 이익을 우선하는 대리인이 주인의 이익을 충실하게 실현해주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라는 말로 설명하기도 한다. 대표-책임 사이에서 발생하는 민주주의가 내장한 이러한 본질적 문제 때문에 베버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지배하는 데마고그적 현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요컨대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대표-책임의 연계(nexus)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하나의 통치체제로서 민주주의가 해결해야할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3) 대표적인 민주주의 이론가 로버트 달은 민주주의의 핵심제도라 할 선거/투표를 중심으로 두 시기 내지 두 단계로 나누어 정치과정을 설명한다. 선거를 중심으로 볼 때, 선거 이전 시기와 선거 이후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는가 하면, 선거 시기와 선거와 선거 사이 시기를 나누어 볼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지금의 한국 정치는 선거 이후 시기이자 선거와 선거 사이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표-책임의 틀로 볼 때, 두 시기 중 선거 이전 시기는 대표의 측면이 핵심이 되고, 선거 이후 시기는 책임이 중심이 되는 상황라고 할 수 있다. 책임은 어디까지나 대표를 전제로 한다고 할 때, 책임이 허약하면서도 유지되는 체제가 있다면, 이를 매디슨의 개념을 빌어 전제정(tyranny)이라 말할 수 있고, 책임이 거의 없이도 통치자가 통치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선출된 왕이 통치하는 전제군주정 이상이 아닐 것이다.

루소는 그의 <사회계약론>에서 영국 민주주의에 대해 “영국인들은 투표할 때만 자유롭고, 투표 이후에는 노예가 된다”고 논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말은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를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면서 기본적으로 대의제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적으로 본것이다. “인민 스스로의 통치체제”와 실제로 존재하는 통치체제로서 민주주의 간의 괴리를 지적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링컨의 유명한 정의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인민에 의한 지배”를 구현할 수는 없다.

이 점에서 책임의 문제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인민 스스로의 통치체제에 접근시키는 핵심고리 역할을 한다. 따라서 루소의 언명은 인민 스스로의 통치와 대의제 민주주의의 차이를 간명하게 확인시켜주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인민주권과 다수결의 원리는 선거 시기에 가장 잘 발현되고, 선거와 선거 사이 또는 선거 이후 시기에는 극복하기 어려운 커다란 제약을 갖는다는 현대 민주주의의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즉 책임의 문제는, 그 정도에 따라 하나의 민주주의체제가 얼마나, 어느 정도로 민주적이냐를 가늠하는 준거로서의 기능을 갖는다.

4) 민주주의에서 선거 이후 시기는, 투표의 결과로 최다득표의 대안들(선출된 지도자/ 정책)이 더 적은 표를 받은 대안들을 대체한다는 것과 선출된 공직자들의 지시는 실행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즉 다수결과 함께 선출되지 않은 공직자에 대해 선출된 공직자 우선의 원리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민주주의는 승자독식을 정당화하는 체제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는 그것이 어떻게 정의되고, 그 제도가 어떠하든 정치적 평등과 인민주권을 실현하는 체제이고, 정치 현실에서는 그것을 제도적, 실천적으로 최대화하려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정당은 그것을 실천하는 대표적인 정치적 결사체이다. 민주주의는 다원적 이익과 가치들을 전제로 하고, 이들 간의 정치적 경쟁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일시적 다수에 의한 통치를 허용하지만, 즉 사익의 정당화를 기초로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정치적 평등과 인민주권의 원리가 실현될 수 있는 공익 또는 공공선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루소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일반 의지”는 특정 시점에서 다수가 된 사익에 의해 대표되는 것이 아니라, 사익을 초월해 사익과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다.

즉 일반의지는 법으로 구체화된다. 그러므로 민주주의에서의 정치는 사익에 기초하되 공익, 공동의 규범,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고, 그 틀에서 움직이는 것으로, 법이 보장하는 경쟁의 규칙 하에서 사익과 공익의 공존, 이 양자 간의 균형을 추구하는 인간의 집합적이고도 경쟁적인 행위이다. 그리고 그 중심적인 집합적 행위자가 정당이다. 이 점에서 대통령은 선출된 최고 통치자로서 자신을 선출해준 다수연합의 파당적 대표이자 지도자로 끝날 수는 없다. 그는 동시에 소수자의 이익과 의견, 가치가 인정될 수 있는 일반의지의 표현으로서 법의 집행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사회 전체의 대표로서 역할하지 않으면 안 된다.

5)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이 문제를 볼 때 한국 정치의 현실에서 통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는 이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은 승자연합을 대표하고, 그들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실현함과 아울러 그것을 사회전체의 일반이익으로 정의하며 그것을 전체 사회에 부과하고 있다. 지난 대선은, 앞선 대선들에 비해 뚜렷한 차이를 가졌다고 하겠는데, 무엇보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발전 문제가 중심이슈로 제기되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지난 대선을 그 이전과 매우 다르게 만들었던 것은, 한국 사회의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한나라당-새누리당의 변화였다.

한국 사회의 진보를 대표한다는 민주당의 진보적이고도 공세적인 보편적 복지국가, 경제민주화 이슈를 회피하지 않고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보수적 정당이 더 이상 수구적인 신념의 보수 정당으로서가 아니라 실용적이고 진취적인 면모를 확연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리하여 선거는 경제민주화-복지국가 콘센서스내에서의 경쟁의 성격을 띄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 소수의 기득엘리트층을 넘어 중간 사회계층으로 지지를 확대하는데 기여했고, 선거 승리의 결정적 요인의 하나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만약 선거 이후에도 그러한 캠페인 방향이 정책으로 현실화되었다면, 기존의 국가-대기업 연합이 주도했던 신자유주의적 성장정책을 넘어 복지국가를 향한 콘센서스의 발판을 마련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선 이후 신정부의 정책방향은 극히 짧은 시간 안에 선거시 공약으로 제시했던 대안들, 즉 재벌개혁을 중심으로 한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확대와 같은 사회경제정책과는 거의 정반대방향으로 나타났다.

결국 선거는 진보적으로 정책은 보수적으로 하는 특징이 분명해진 것으로 보인다. 여러 요소들이 이렇게 공약과는 다른 보수로의 회귀를 가능케 했다고 하겠는데, 그렇게 된 까닭에 대해서는 대통령 자신의 이념과 가치 정향, 리더십 스타일, 대기업, 언론을 중심으로 한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적 블럭의 강한 영향력, 행정관료기구, 특히 경제행정관료들의 강한 영향력, 복지국가를 지지하는 정치적 지지기반의 허약함과 야당의 허약함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강조해야 할 것은, 정치적 책임의 문제는, 반드시 선거공약을 그대로 실현해야한다는 경직적 의미를 담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공약의 핵심 요소들은 지켜져야 하지만, 세계경제적, 정치환경적 요소가 변화할 때, 그 내용 역시 조정될 수 있고, 특히 선거 패자인 야당과의 타협을 통해 그것은 조정되고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또한 정책 변화는 그 정책의 결과에 의해 보상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책 대안들의 핵심 요소들이 선거 이후 확연하게 변하는 것은, 정치적 책임, 공약 파기라는 쟁점을 제기할수 있도록 한다.

2. 정치적 책임의 허약함이 동반하는 주요 국정과제들

1) 정치는 공익을 다루는 인간 행위이고, 공익 실현은 집합적 결정을 요구하는 것이고, 그 결정의 실현은 법과 정책의 형태로 거대관료기구로 제도화된 국가기구에 의해 집행, 관리, 운영된다. 그러므로 국가행정체제는 민주주의와 정치가 중심적으로 실현되는 場이다.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는 고대 민주주의(고대 아테네 직접 민주주의를 모델로 하는)와 비교할 때 그 특성이 잘 드러난다. 고대 민주주의는 치자와 피치자간의 이원적 관계를 통해 구현되는 것으로, 시민이 추첨을 통해 통치자가 되고, 임기가 끝나면 다시 피치자의 위치로 되돌아가는 순환제적 직접 통치 형태를 특징으로 한다.

그에 비해 현대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투표자시민과 선출된 대표 사이에 국가가 위치하기 때문에, 인민과 대표사이에 국가가 위치하는 3자 관계를 특징으로 한다. 이 점은 현대 민주주의가 인민 스스로의 통치를 구현하기 어려운 난제를 가중시킨다. 계몽된 시민이 가장 유능한 지도자적 자격을 갖춘 대표를 선출했다 하더라도 선출된 대표들이 국가를 투표자들이 기대하는 것 만큼 잘 운영하기란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대표-책임의 간격이 구조화되는 조건이다. 현실적으로 말할 때 현대 민주주의는, 주권자로서의 인민이 어떻게 선출되지 않은 공직자가 운영하는 국가의 행정관료기구를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관리운영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난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꿔 말해, 어떻게 선출되지 않은 공직자에게 책임을 부여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처음 주인으로서의 인민은 그의 대행자로 대표/대통령을 선출한다. 다음 이 대통령은 집행부 부서의 장관들을 선출 임명한다. 이 집행부 부서의 장들은 하급 부서의 행정관료들을 임명한다. 그에 비해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에서는 정치지도자나 공직자는 시민전체에 책임을 진다. 고대 민주주의에서는 한 번의 대표-책임관계로 끝나지만, 현대 민주주의에서 이 책임의 고리는 3중의 관계로 분할된다. 고대 아테네에서 책임은 공직이 끝난 사후에(ex post) 일어나는 통제 메카니즘이다. 그에 비해 현대 민주주의에서 공직자에 대한 책임은 사전(ex ante) 통제 메카니즘이다. 왜냐하면 선거는 시민들이 선출할 대표의 과거행적이나 업적을 두고 평가해서 투표하는 것이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할것인가하는 예상적 판단에의거해서 투표를 통해 그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하에서 선출된 대표/통치자들이 공직을 통해 통치할 때 법의 지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공직자들에게 책임을 부과할 감시감독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허술하고, 그들의 능력이 부족하고, 공직자 윤리가 허물어지고, 애당초 책임윤리, 공적 정신, 지도력, 민주의식이 약할때, 일반 국민들이 어떻게 거대한 국가관료기구와 이를 관장하는 선출되지 않은 공직자들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공직자 부패, 부정비리, 무능력, 복지부동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민주주의가 해결해야할 핵심과제로 등장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다른 나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마찬가지로) 정치의 퇴락, 무책임, 그로 인한 정치 불신, 혐오, 비판을 말하게 되는 근거는 바로 선출된 통치자들의 통치행위하에 있는 이 국가부문과 직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국가관료기구를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가하는 문제는 가장 높은 우선순위에 있는 최대의 개혁사안이 아닐 수 없다.

2) 민주적 통제가 허약하거나 그로부터 벗어나있는 국가기구의 목적/역할전치, 부패, 비리 등과 같은 사례들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다.
⒜ 국가경제관료기구와 사적 영역의 거대이익 간 결착
- 재경부, 금감원 등을 포함하는 금융 분야, 국토부, 토지개발공사 등.
⒝ 국영기업의 민영화
- 국토부, 철도민영화. 수서-대전 사이 KTX를 기존 코레일로부터 분리하려는 계획
⒞ 준공적기구의 확산
- 재경부, 국토부, 금감원 등 여러 부서들은 정부기구와 민간부문 사이에 수많은 準공적기구 설립. 이러한 관변 공공기관이 295개나 된다. 이들은, 공무원, 퇴직자 또는 외부 정치인사들을 대표, 이사, 감사, 고문 등의 주요 직책에 임명한다. 그리고 이들이 여러 형태의 인허가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한다.
⒟ 정부기구의 납품업체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 “원전마피아”, “철도마피아” 하면서 원전비리, 철도비리, 군수비리 등의 정부기구 부패, 비리는 널리 알여진 지 오래다. 무슨무슨 마피아라는 말이 지칭하듯, 한전이나 철도시설공단 같은 공기업이 그들의 퇴직자들이 임원으로 있는 특정업체에 대해 공기업이 발주한 사업을 독점시키고 있다. 이들 경제행정기구들은 “보이지 않는 권력”(invisible power)를 행사하고 있다.

3) 복지국가를 모토로 했던 경제민주화와 사회정책의 후퇴

-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문제는, 새누리당도 민주당의 도전에 대해 이를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수용할 만큼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중대 의제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행복”을 국정목표로 내세웠고, 선거 이후 수개월동안 신문지면을 가장 많이 장식했던 말은 “갑의 횡포”였다. 새누리당 내에는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연구하는 개혁적 연구모임이 결성되고, 50명이상의 의원들이 참여했다. 국가-재벌 연합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성장정책으로부터 성장과 복지가 균형을 이루는 경제운영원리를 향한 커다란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새 정부가 체제를 정비하면서 6개월도 되지 않은 시간 내에 이 모든 공약, 슬로건, 담론, 언어들은 사라졌다. 지금은 경제민주화, 복지국가라는 말 자체를 들을 수 없게 됐다. 달이 말했던것처럼, 선거 국면이야말로 인민의 의사가 잘 대변되고, 선거 이후 시기는 시민의 책임이 약화되고, 선출된 공직자가 행정관료권력을 비롯한 현상유지의 힘들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됨으로써 정치과정이 인민의 통제로부터 벗어난다는 말이 설득력을 갖는다.

- 복지정책 영역에서의 변화는 복지의 확대발전을 말하기는 어렵다고 하겠고, 그것은 차라리 답보상태 내지 퇴영적 면모를 보여준다고 말할수있다. 기존 복지행정체제로서는 급변하는 사회경제적 환경에 대응하기조차 어렵지만, 오히려 사회정책 자체가 다운사이징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노인빈곤 문제, 조기 은퇴자를 포함하는 경제활동비참여자들, 워킹 푸어를 포함하는 사회적 약자와 상대적 빈곤층의 확대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적인 사회복지정책의 틀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노인 보조금 20만원에 대한 공약파기 문제가 이슈로 제기되었지만, 이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자체가 복지국가 개념에 얼마나 상응하는지는 의문이다. 노인빈곤 문제는 증세가 대안인 듯이 말한다. 오히려 여당이 야당을 다그치는 형편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 문제에 정확히 준비하지 못했던 야당의 책임도 있다. 그러나 복지국가 개념이 정책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동안의 성장정책이 가져온 사회적 해체 효과, 빈부격차, 양극화를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과, 그동안 성장과 번영으로부터 소외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다. IMF 금융위기가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한국사회 내부로부터 만들어진 사회경제적 효과, 사회해체효과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절박함이 정치인들 사이에서 있었느냐 하는것이다. 복지국가는 성장과 분배, 성장과 복지라는 전체적인 사회운영의 원리에 대한 콘센서스 형성을 포함하는 것으로, 증세냐 아니냐 하는 좁은 문제 이상의 것이다. 복지국가라는 커다란 전환을 위해서는 전체적으로 소득분배, 빈부격차, 양극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어야 하고, 그로부터 공평과세에 대한 원칙이 도출되고, 그 다음으로 세금 출처를 어떻게 하고, 세금 구조를 어떻게 합리화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대한 깊이있는 헌신이 있어야 했을것이다.

- 현재 사회복지정책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성장 중심의 경제운영을 주도하는 강력한 경제부처의 영향력에 의해 제약된다. 그러나 경제부처 중심 경제정책의 하위정책이라 하더라도 그 자체로서 복지정책에 대한 비전이나 틀은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그 자체로서의 틀이 없다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회복지정책의 기획자와 행정가들이 사회복지정책에 대한 비전이나 전체적인 틀이 없다는 점이다. 현 정부의 복지정책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상의 사회안전망을 행정적으로 재조정한다든가, 운영을 합리화하는 것에 초점이 두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는 예산을 풀어 중위소득 50%미만 취약자들을 대상으로 취업확대를 목적으로 한 예산범위 내에서의 프로그램 개발 같은 것도 포함된다. 선거 때 말했던 복지국가 모습보다는 복지행정의 합리화라고 표현하는것이 더 정확할것이다.

4) 국정원의 선거개입과 국정원개혁

- 정치학자 필립 슈미터는 “부분체제”(partial regime)라는 말을 창안해냈다. 우리가 보통 민주화라고 할 때 그것은 권위주의체제로부터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말한다. 민주화라는 말은, 정치체제를 구성하는 모든 하위체제를 포괄해 전체적인 정치체제의 변화를 뜻한다. 그로 인해 사회체제의 민주화는 아니더라도 정치체제를 구성하는 모든 하위체제, 하위단위들이 모두 민주화된것 같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한낮 오해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공정하고 주기적인 선거, 즉 민주적 선거를 통해 전국 단위에서 대표를 선출하고, 정부를 구성한다고 해서 정치의 모든 부문들이 민주화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법부를 비롯한 법의 지배체제, 관료행정체제, 안보이데올로기체제, 자율적 결사체의 체제,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체제 등, 이들 하위체제는 전체체제가 민주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권위주의의 가치와 규범, 구조와 운영원리 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부분체제들이 각각 민주주의의 가치와 규범에 부응하는 정도는 한 사회의 민주화의 수준을 말하는 잣대이기도 하다.

-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의 광범한 선거개입 사실이 드러나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은, 한국의 민주화에서 이데올로기를 관리했던 국가기구, 그와 연관된 사법기구들의 부분체제는 여전히 민주화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국정원 선거개입은 두 측면을 갖는다. 하나는 법적, 제도적 문제로서 법의 지배와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문제이다. 첫째, 국정원 선거개입 문제는 무엇보다 먼저 법적 제도적 문제로서 접근되는 것이 필요하다. 선거개입은 엄격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하고, 그 행위가 민주주의체제를 위협하는 것인 만큼 이를 계기로 국정원의 기능은 대북정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영역에 엄격하게 제한되는 제도개혁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둘째, 그것은 동시에 정치적 문제이기도 하다. 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하는 대통령과 여당을 한편으로 하고, 야당을 다른 한편으로 할 때, 쌍방은 정치적 타협의 기술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문제는 특히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야당 입장에서 중요하다. 사건의 반대편에서 대통령과 여당이 보여주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한 태도는 방어적일 뿐이다. 그에 반해 공세적 입장에 있는 야당이 상대의 일방적 굴복을 추구한다면, 이 국정원 선거개입이라는 엄중한 계기는 국정원개혁으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5) 위에서 성격이 각각 다른 세 가지 사건을 말했지만, 여기에는 공통적으로 정치적 책임의 부재 내지 태만이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그 사례들은 모두 시민들의 권리, 정치적, 사회경제적 생활에 심대하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들이다. 행정권력을 민주적으로 통제하지 못할 때, 그 결과는 관료행정기구와 선출되지 않은 공직자의 특수이익과 그와 결탁된 관료적 고리들로서 특수이익집단들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중산층이나 서민과 같은 사회경제적 범주의 인구집단들이나 시민, 유권자 또는 인민과 같은 추상화된 일반적 다수 국민들의 이익이나 이들의 합으로서 공익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민생문제”라는 말은 한낮 허구에 불과한 의미 없는 홍보용 슬로건 이상일 수 없다. 선거 직후 경제민주화, 복지국가라는 대선의 중심 사안들이 앞서 지적한 변경을 필요로할 만한 국내외적인 어떤 근본적인 환경변화 없이, 그리고 그것이 왜 변해야하는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 설명은 “책임”의 중요한 내용이다)없이, 대선시기 그 공약에 동의했던 다수 시민들과 야당에 대한 설득과 이 문제를 둘러싼 공적 영역에서의 논의/토의(deliberation) 없이 최고정책결정자가 자의적으로 공약의 내용을 바꾸는 것은 다수 시민과 선출된 대표 간의 신뢰에 커다란 문제를 야기한다.

- 물론 선거 공약과 실제 정책 사이에 일정한 간극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예컨대 클린턴의 경우 1992년 미국 대선에서 선거캠페인은 공화당에 근접하면서 보수적으로, 집권 이후 대통령으로서의 정책은 진보적으로라는 평가가 가능했다. 2013년 9월 독일선거에서 메르켈은 기민당의 전통적인 노선보다 훨씬 더 진보적으로 녹색당의 원전에너지정책, 사민당의 최저임금제와 노동정책을 대폭 포섭하면서 진보적으로 캠페인했고, 총선 이후 (현재 진행 중인) 연정협상을 통해 사민당 공약을 더 많이 수용할 태세이다. 그러나 한국 대선의 경우, 캠페인공약과 실제 정책 사이에는 분명히 설명 없는 단절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를 일컬어 데마고그적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다수표를 겨냥해 진보적 공약을 분명히 내세운 뒤, 선거 이후 이를 즉시 거두어들였기 때문이다. 정치학자, 사회학자들은 현대 민주주의의 중요한 특성으로 “일반투표제적 민주주의”(plebiscitarian democracy)의 측면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것은 대의제 민주주의와 심의 민주주의를 벗어나, 책임과 심의/토의 없는 퇴영적 민주주의로의 후퇴를 말하는 것이다. 대표와 정부를 선출하기 위해 주권자인 시민이 투표에 참여하지만, 선출된 대표와 정부는 선거 이후에도 항시적으로 시민들에 책임지고, 그들의 요구에 반응하고, 정치/정책결정 과정에서 그리그 시민사회에서의 공론장에서 광범하게 그들이 참여하여 심의하고 토론하는 민주적 과정을 허용하지 않는 체제, 그것은 권력과 권한을 대표에게 전면적으로 위임한다는 의미로 현대의 자유주의적, 다원주의적 대의제 민주주의와는 다른 어떤 “위임민주주의체제”라고 말할 수 있다.

3. 책임(성) 약화의 결과로서 퇴행하는 정치

1) 민주주의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국가 공직을 운영 관리하는 선출된 대표이자 통치자가 자신의 공적 영역에서의 행위에 대해 그들을 선출해준 시민들에게 완벽하게 책임지는, 대표와 책임이 서로 수평적으로 상응하면서 인풋-아웃풋이 이루어지는 체제일 것이다. 통치자나 피치자로서의 시민들이 모두 동일한 권리와 의무의 평등이라는 시민권의 원리를 핵심으로 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에서 치자와 피치자의 구분은, 단지 기능적인 역할 분업 이상일 수는 없다. 정치학자 필립 슈미터는 현대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대표들 간의 경쟁과 협력을 통해 간접적으로 행위하면서 통치자들로 하여금 공적 영역에서 그들의 행위에 대해 책임지도록 시민들에 의해 구속되는 통치체제”라고 정의한다. 요컨대 민주주의는 통치자들이 공적 영역에서 그들의 행위에 대해 시민들에 대해 책임지도록 강제되는 체제이다. 여기서 민주주의는 시민과 통치자 간의 고전적인 수직적 관계를 전제로 한다. 즉 민주주의가 아무리 평등한 시민권 원리에 입각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의 통치제제로서 선출된 통치자와 시민피치자 사이에 수직적 통치-피통치 관계를 본질로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러한 책임의 성격은 통치자-피통치자 사이에 발생하는 책임성의 부과라는 의미에서 “수직적 책임성”(vertical accountability)이라 말할 수 있다.

- 민주주의의 이상적 과정은 한편으로 다원적 이해 관계와 가치를 갖는 시민들이 그들의 선호와 요구에 부응하는 정책의제를 만들고, 정책을 선택하고, 정책 결과를 점검하고, 다른 한편으로 통치자들의 공적 행위와 정책에 내용적으로 잘 상응할 수 있는 시민집단들이나 사회경제적 집단들이 잘 조직돼서 통치자 내지 공직자들의 행태를 감시감독하고, 상대의 이니셔티브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면서 언제나 통치자들의 행위가 책임에 구속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공직자에 대한 책임은 비단 국가의 공적기구에만 직접적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 더욱이 최근년에 이르러 국가기구는 팽창하고, 국가기구만이 아니라, 중앙정부부서들의 관리하에 있는 공기업들, 국가부문과 민간영역 사이에 준공적기구들이 엄청나게 확산되고 있는 환경 하에서, 이들 모든 공적 성격의 기구들과 그 관리자들이 그들의 행위에 대해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사회에서의 이해관계 당사자집단들이 잘 조직되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나아가 통치자가 시민들에게 불법적인 행위나 이미 해를 입혀 어떤 불이익을 가져오기 “이전에”(ex ante) 그들에게 책임을 부과해서 그러한 행위를 미연에 방지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현실 속에 존재하는 민주주의”(real-existing democracy)에서 위에서 말한 책임이 그대로 완벽하게 실현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 통치자에게 책임을 부과하는 문제와 관련해 “수평적 책임성“(horizontal accountability)이라 할 만한 또 다른 형태의 책임이 존재한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하여 “혼합체제”를 주창했던 여러 이론들과 그것의 구체적인 실현으로서 로마공화정, 그리고 몽테스큐가 정식화한 바 있는 견제와 균형, 3권 분립 이론에 이 수평적 책임성 개념이 놓여 있다. 이들 이론은 정부권력을 입법-행정-사법 부서로 분할하여, 서로를 견제토록 함으로써 스스로를 파괴하기 쉬운 민주주의를 유지 발전시키는 제도적 이론적 대안으로서 제시된 것이다. 그것은 한국 헌법이 기초하고 있는 매디슨 헌법/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이기도 하다. 한 헌법학자는 3권 분립에 기초한 민주주의를 헌정주의(constitutionalism)라고 하고, 인민주권과 평등한 시민권을 핵심 원리로 하는 체제를 민주주의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대통령중심제가 3권분립에 입각한 헌정주의이론과 전통에 잘 부합하는 것이라면, 3권 분립에 기초하지 않은 의회중심제국가들은 민주주의의 시민권원리를 통해 책임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쨋든 3권 분립에 입각한 수평적 책임성은 그 개념을 국가기구에 한정시키기 쉽고, 비국가행위자들에 의해 행사될 수 있는 측면들을 간과하기 쉽다는 분명한 한계를 안고 있다. 권위를 행사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행위에 종속되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는 여러 차원이 있기 때문에 책임의 문제가 단순히 정당 후보들 사이에서 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입법-사법-행정의 권력분할이라는 차원에 한정되는 것만도 아니다. 앞에서 수직적 책임성을 말할 때 언급했지만, 시민들의 조직체로서 사회경제적 세력에 의한 통치자와 국가권력에 대한 견제는 수평적책임성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예컨대 책임의 부과는 언론, 정당, 운동, 노동조합, 사용자단체, 법률가단체, 대기업들과 같은 정치사회적 집단들에 의해 행사될 수 있다. 그들이 공직자들의 행위를 비판하거나, 그들에게 일정한 제재를 가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국과 같이 강력한 국가주의적 내지 권위주의적 전통을 갖는 나라에서 국가기구들은 형식적, 제도적으로는 독립되어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국가이익, 안보의식, 또는 관료기구들의 제도적 이익 때문에 은밀히 공모하는 경향이 강하다. 책임성은 국가기구나 공직자에게 대응할 수 있을 만큼 정보를 가지거나, 강력한 잘 조직된 집단이나 결사체, 조직 또는 기구들, 비록 그들이 공적 지위를 갖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에 의해 수행될 수 있다.

3) 삼권 분립에 의해 수평적 책임성을 갖도록 하는 메커니즘은 그것이 주로 불법, 위법에 해당하는 법적 기준을 통해 수행된다는 점 때문에, 책임을 묻는 방법이 통치자가 시민들에게 해롭거나 어떤 불법적인 행위가 발생하기 이전에, 즉 “사전에”(ex ante) 책임성을 부과하는 것보다 통치자의 공적 행위가 행해져 그것이 이미 시민들의 권익을 침해하거나 불이익을 가져온 뒤에야 비로소 “사후적”(ex post)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허점을 지닌다. 법적 기준으로 책임을 묻는 방식은 법 자체가 민주적이고, 중립적이라고 전제할 수 있고, 시민들의 눈에는 합법적 행위는 정당할 것이라는 인식이 강할 수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통치자들은 그들의 행위가 반드시 불법이 아니라 하더라도 다수 시민들의 이익과 요구실현, 다수 시민들의 여론이나 선호 또는 도덕적 규범이나 가치, 민주적 정당성에 반하거나 민주주의 원리에 위배하는 행위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통치자가 책임을 져야하는 것의 핵심은 합법적이냐 아니냐하는 법적 기준을 넘어, 정치적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뿐만 아니라 책임져야할 공적 영역의 주체는 반드시 행정-입법-사법 정부기구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지적할 수 있다. 수많은 완벽하게 적법한 국가 및 준국가기구들에게 대한 책임, 누가 수평적으로 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3권분립에 입각한 수평적 책임성을 부과하는 문제만으로는 공백이 너무나 크다.

4) 한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의 하나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집행부 권력의 압도적 우위이다. 미국 헌법을 모델로 하여 한국 헌법은 삼권 분립과 이들 사이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통해 권력구조를 제도화하고 있다 하더라고 한국의 대통령 권력은 제도적으로 미국보다 훨씬 강하다. 그 위에 역사적, 문화적으로 강한 대통령의 전통을 갖는다. 그러므로 대통령중심제 정부형태를 갖는 모든 나라의 정치가 공통적으로 대통령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그 가운데서도 한국 대통령은 특별히 강한 위상을 갖는다. 본 강연자의 생각으로 본질적으로 전제적이 될 수 있는 대통령제를 민주적일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제도적 장치는 헌법해석권을 갖는 강력한 사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제를 민주적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로 이 강력한 사법부의 집행부 견제력과 강력한 양당제에 의한 입법부의 견제력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미국 민주주의는 일찌기 매디슨을 비롯한 헌법의 설계자들이 우려했던대로 선출된 전제정의 위험을 가질 수 있다. 한국의 정부형태는 이 두 요소, 즉 제도적, 역사문화적 요소들을 모두 결여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 민주주의는 항시적으로 선출된 전제정의 위험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은, 집행부에 대한 사법부의 취약성으로 집행부독주로 치달을 길을 열어놓는다. 사법부가 취약한 것은, 권위주의 국가의 “시녀”로서 권위주의를 떠받쳤던 지난날의 역할과 관련된 권위주의 유산으로부터 사법부가 벗어나지 못한 것과 깊이 연관된다. 검찰은 사법부가 아닌 집행부의 기구라 하더라도 집행부적 기능과 사법부적 기능을 동시에 아우르는 특수한 행정부서로서 역시 광의의 사법적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검찰은 실제로나 제도적으로 법원보다 더 직접적으로 통치자의 권력의 도구로서 역할한다. 법원과 검찰은 한국의 정치와 사회에서 법의 지배를 관철하는 중심기구라고 할 때, 오늘날 한국의 법원과 검찰이 법의 지배의 수호자로서 역할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점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법의 지배와 병행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에서 선출된 대표, 선출된 정부가 그들의 책임 의무를 다하도록 하는데 있어, 또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법의 지배의 수호자로서 사법부가 독립적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에서 본 강연자는 세 가지 다른 수준에서 정책과 정부기구의 행위에 대해 말했다. ② 선거 공약 파기는 순전히 정치적 문제이지만, ① 정부기구 행정권력의 민주적 통제와 ③ 국정원 선거개입은 그 사안들이 정치적 문제임과 동시에 사법부의 관장 사항이라 할 법의 지배의 부작위의 산물이다.
- 한국 민주주의를 건강하게 작동시키기 위해 사법부의 자율성과 아울러 입법부의 권한 강화 또한 필요하다. 한국과 비교할 때 미국 대통령은 두 가지 결정적인 점에서 약하다. 하나는 예산편성과 집행권을 의회(하원의 역할)가 갖는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중앙정부의 고위공직자와 연방법원 판사들의 임명에 대해 의회(상원의 역할)가 비준권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퇴영적인 것으로 나타났지만, 최근 공화당은 의회에서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는 예산집행에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연방정부의 모든 예산지출을 폐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런 사실을 간과한 채 한 방송사의 뉴스시간에 한 토론자가 나와 이렇게 말한다. “미국을 봐라, 대통령이 5만개가 넘는 공직을 자유롭게 임명한다.”(2013. 10. 30. 오전 9:30. MBN). 그런데 한국에서는 청문회다 뭐다 하면서, 야당이 반대를 위한 반대로 여기에 발목을 잡는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의 비준절차에서는 엄중한 법적 문제를 갖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통령의 의사가 그대로 관철되는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공직임명에 대한 심사가 위법적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이념적, 정책적 성향과 과거 행적까지 모든 것에 대해 치밀하게 이루어진다는 점, 그리고 오바마 정부를 사례로 볼때도 임기중반이 다 되어감에도 수많은 고위공직자들이 야당의 동의를 얻지 못해 공석으로 있었다는 사실을 그 뉴스 토론자는 모르고 있다.

5) 앞에서 본 강연자는 오늘의 시점에서 한국 정치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성격이 다른 세 가지 사안에 대해 말했다. ① 국가의 행정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② 대선공약의 파기는 모두 경제정책과 사회정책과 관련된 기존의 경제운영의 지배적 가치와 독트린과 관련된 영역으로 경제행정체제에 대한 책임성의 문제와 관련된 것들이다. 두 사안 모두 “수직적 책임”의 부재가 가져오는 결과라고 할 수 있겠지만, 두 사안 모두 경제행정에 대한 책임의 문제로서 경제정책과 관련된 것이다. ①의 경우 경제행정관료기구의 부패, 비리와 관련됐다는 점에서 법의 지배의 실패 내지 부재라는 점에서 수평적 책임의 측면을 아울러 갖는다고 볼 수 있다. ②의 경우는 훨씬 더 지지자 전체에 대한 책임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책임의 측면을 갖는 것이다. 후자의 문제는 특정의 경제정책 영역 내지 기능적 범주에서 발생하는 정책결정과 그 집행과정에서, 그 정책과 관련된 이해당사자들이나,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인구집단들의 조직체나, 이들의 이익결사체들이 정책결정과 집행과정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된 결과이다. 이 점에서 경제행정관료행정기구들은 정책과정에서 책임으로부터 거의 방면돼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적 책임의 하나는 정당, 특히 진보적임을 자임하는 야당에게 있다. 야당을 통한 의회의 집행부의 견제 내지 책임 부과라는 면에서 그것은 동시에 “수평적 책임”의 결여를 가능케 한다. 왜냐하면 보수적인 정당은 집권여당으로서 정책비전과 경제운영의 독트린을 포함하는 이해관계의 공유라는 면에서 정당과 관료기구사이에는 이렇다 할 차이를 발견할 수 없을 뿐만아니라, 관료행정-보수적 정당-대기업의 3자연합이 실제로 이러한 정책의 연속성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생” 문제라는 말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정의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민생이라는 담론의 주체가 돼야 할 중산층, 서민들은 이 과정에서 배제돼 있고, 그것은 내용적으로 이들을 경제적으로 부조할 수 있는 관료기구의 온정주의적 역할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③ 국정원 선거개입문제는 수평적 책임성의 부재와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다. 그것은 사법기능의 침묵 내지는 법의 지배가 작동하지 않는 것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수평적 책임성의 부재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사안은 사건이 행해진 연후에야 사후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에 그 책임성을 묻는 것의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4. “책임의 결손”의 구조화--정당의 역할과 정당의 다원주의적 하부기반

1) 집합행위가 가능한 야당 건설과 대안정부로의 길
- 본 강연자는 한국 정치의 최대의 문제라 할 책임정치의 부재 내지 약화와 거듭되는 퇴행의 정치를 극복하는데 있어 정당을 바로 세우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퇴행의 중심에 있는 경제행정권력의 민주적 통제,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의 건설, 그리고 국정원 선거개입 문제가 제기하는 민주적 가치와 규범을 확립하는 문제 역시 무엇보다 정당의 역할이자 과제이다. 여기서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민주당은 불행하게도 그러한 과업을 수행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오늘의 민주당은, 그들이 공통으로 추구할만한 이념적 지표, 한국 사회가 나가야할 미래 발전에 대한 비전,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정책프로그램을 갖지 못하고, 또한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정치적 인적 집단으로서 사회경제문제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사회의 특수이익(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해진 중산층과 소외받는 서민, 노동자들의 이익과 열정, 가치와 의사)을 대변하고, 그에 정치적 기반을 두기를 추구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사익을 희생하며 공익을 추구하는 정당에 동참하는 멤버가 되고자하는 열정과 의지를 갖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그들은 한 정당의 멤버로서 같은 이름을 공유하지만, 파당으로 크게 분열돼 있고, 개별 국회의원들은 파편화되어 당보다는 자신의 사적 관심사에 매몰되어 있다. 정치적 교육의 장으로서 정치인을 훈련하고 배양하는 것을 통해 리더십을 형성하는 것은 그만두고라도 조직으로서의 정당이라는 점에서 당의 리더십을 세우는 것 자체도 어렵다. 오늘의 민주당은 집합행위를 할 수 없는 정당으로 약화될 대로 약화돼있다. 오늘의 민주당이 정당이라면 과연 어떤 정당인가? 또 정당이 되려면 어떤 정당이 되어야하나?

2) 본 강연자는 대선 이전에 민주당이 선택할 수 있는 두 노선에 대해 말하면서, 하나는 “민주대 반민주” 대립에 기초한 “진영 간 대립 노선”이고, 다른 하나는 “대안정부를 준비하는 노선“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대안정부 노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도 민주당에 대해서는 다른 말을 할 것이 없다. 한국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민주주의“는 국정원 대선개입과 같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가 강해지고 민주주의가 퇴락하고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이고, 한국사회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사회이다. 민주주의의 정치 환경 하에서 선거 경쟁은 민주적 가치와 규범과 민족문제 해결의 당위적 측면을 포함하는 어떤 진보적 이념이나 언어를 강조하는 것, 즉 도덕적, 이념적 가치가 선거 결과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더 뛰어난 통치능력을 가지고 있고, 누가 더 신뢰를 주느냐의 결과물이다. 전자가 이념적, 정치적 양극화를 가져오고, 이념적 대결을 강화하는 요소라면, 후자는 경쟁하는 정당들이 내세우는 대안들사이에서의 거리가 별로 크지않는 경제적 문제의 개선을 핵심으로하는 국가운영의 실제적 문제와 그 결과들에 대해 기대하고, 그것을 평가하는것에 대응하는 것이다. 정당이 이념을 가져야한다는 것과 정당이 이념적 언어를 말하고, 이념적 슬로건을 내세우는 것은 다른 말이다. 정당의 행위와 전략이 이념의 언어와 담론에 의해 추동될수록 이념이 포괄하는 가치와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은 정치의 한 패라독스이다. 왜냐하면 후자의 정치는 정당을 운동처럼 행위하도록 하고, 반정치적 태도를 갖게 하고, 실현가능한 정책을 이루는데 관심을 갖기보다 적대적 세력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대하는 태도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국정원선거개입문제에만 몰두하는동안, 국가를 운영하고 실제의 민생문제를 다루는것을 등한히하는 것은 선거경쟁의 특성을 오해한 결과가 아닐수없다. 그럼으로 정치가 쟁투적인 될수록 좋지않은 징조이고, 비/반생산적인 것이다. 민생이라고 말하는 보통사람들의 삶의 현실 속으로 내려가 침투하는 것을 등한히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민주당은 보다 더 삶의 현실 속으로 내려가야 한다. 대안정부의 노선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본 강연자는, 첫째 의제설정의 변화, 둘째, 투입 (사회적 지지기반의 확대)과 산출 (실현가능한 좋은 정책대안) 측면에서 당의 능력 강화, 셋째, 당 리더십과 대선후보 선출제도의 개선하는것을 통해 조직으로서 정당을 강화하는 것을 제시한 바 있다.

3) 정당이 약한 것은 정치적 하부기반으로서 사회적 다원주의의 허약함과 구조적으로 맞물려있다. 부분이익 내지 특수이익을 대표하는 정당의 허약함은, 국가주의(국가중심)적 일체성의 사회구조와 그에 상응하는 민주적 가치와 시민사회의 허약함이 맞물린, 즉 강력한 국가-허약한 시민사회의 구조적 특성과 일정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강력한 국가는 사회전체, 사회의 모든수준에서의 모든 사회적 관계를 정치화하고, 권력화하는 결과를 가져올수밖에 없는것은 필연적이다. 국가의 비대화는 사회전체의 정치화로 이어지게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리고 이것은 정치의 퇴영적 측면을 극대화한다. 그리하여 모든 공적권력은 거대한 특수이익들에 봉사하고, 사익에 봉사하는 도구로 전락하게되게 된다. 그것이 현재 우리사회의 모습이고, 정치의 퇴락의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개인과 개인의 사회적 관계의 자율성과 자유의 공간은 그에 비례해서 축소될것이고, 사회적 약자와 소외자들은 스스로를 보호할수 있는 어떤 수단도 갖지못하게 된다.
- 그렇게 때문에 정당이 강화되지 않으면 안된다. 정당이 강화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다원주의가 확대되고 강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 사회에서 매디슨적 민주주의의 헌정체제는 강력한 국가-허약한 시민사회의 구조 위에서 제도화되고 실천되고 있다. 이 요소는 매디슨적 민주주의를 순기능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국가의 행정권력을 관장하는 선출된 통치자와 선출되지 않은 공직자의 공적행위가 강력하고도 광범한 것만큼이나 그에 책임을 묻는 것은 지난하다. 우리는 구조화된 “책임의 결손”(accountability defects) 이라는 환경하에서 살고있다. 국가는 비대해질뿐만아니라, 정책들과 공적사안들은 개인이든, 결사체이든 소규모조직으로 그에 대응할수 없을만큼 복잡해지고있다. 국가가 비대하고, 관료행정기구의 권한은 커지고, 정책사안들은 전문화, 복잡화하는 빠른 사회경제적 변화를 한편으로하고, 이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시민들의 정치적능력을 다른 한편으로 할 때, 그 사이에 커다란 괴리 내지 결손이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사실상 구조적이되고 있는것이다. 이러한 환경하에서 민주주의를 강화하기위해 다원주의적 토대를 형성하기위해서는 정당 그리고 다양한 생산자집단 및 직업직능 집단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의 중간집단들이 건강하게 형성되고 성장할 것이 요구된다.

4) 국가와 사적 영역 사이에 위치하는 우리가 보통 시민사회라고 말하는 사회의 중간 층위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만들어내는 다양하고 부분적인 이익들이 형성되고 분출되고 변화하는 영역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 이익들을 결집하고 대표하는 결사체들은 다원주의적 사회 구성의 주축을 이룬다. 그러나 한국의 시민사회는, 다양한 사회 계층에 걸쳐 자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제도화되지 못한, 시민운동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결사체적 기반을 확립하지 못한 채 대체로 중산층의 이익과 요구에 의존하는 시민운동은 강한 국가-강한 재벌이 경제 영역뿐 아니라 사회문화 영역에서 지배적 영향력을 갖는 상황을 변화시키는 데 있어서나 시민사회를 강화하는데 있어 별반 효과적이지 못했다. 이것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조직된 이익결사체들의 확산과 확대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앞에서 본 강연자는 “수직적 책임”을 말하는 자리에서 국가권력에 대한 사회세력의 견제와 균형 그것을 통한 책임의 효능을 말했거니와, 그것이 곧 다원적 사회구성이 갖는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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