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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석이 死後대책은 벌써완비! 色卽是空 空卽是色이 아니던가!
고향선산엔 아름다운 풍광의 영원한 휴식처 ...언제든 환영 ,기다리고 있어...
등록일: 2015-03-18 , 작성자: 광진의소리 
▲겁없이 첫 시집을 낸 후 제2탄으로 예고한지가 벌써 십 수년이 된다. 이미 160여수를 완성했지만 계속 눅이고 있다. ‘시’라는게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알고서부터다/광진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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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전쟁을 앞두고 전선에 나서는 병사의 심정으로 이 글을 남긴다. 전선으로 떠나는 병사는 언제든 생과 사가 순간의 찰라에서 판가름난다. 당연히 떠나기전 자신의 신변을 정리하게 마련이다. 나는 최근에 ‘내 주변정리‘에 들어갔다. 거대한 공룡과 싸워야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 않은가! 이미 승자는 정해진 것!(이유는 검찰청에 아는 검사 한 명만 있어도....법원에 아는 판사 한 명만 있어도...돈없고 빽없는 놈들(피고소인)은 백전백패다 는 한국사회의 통념이 엄숙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검사동일체원칙,전관예우의 고질적인 한국법조사회풍토)
해서,최소한도 유윤석이의 진실은 기록에 남겨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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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유신헌법철폐투쟁 선봉에 나서면서 이미 사생관 확립!(전국 무전여행시 깨달음)
인간도처 유청산(人間到處有靑山)
남아도처 유미인(男兒到處有美人)
유전유정 무전무정(有錢有情無錢無情)
청산백운지우 유무상통(靑山白雲之友有無相通)
암울했던 유신독재시절 대학2학년때 후배들을 데리고 동해안-남해안-서해안을 해안선을 따라 배냥여행(도보로 무전여행)을 했다. 100%무전여행에 도전했었다. 성공했다.
위 자작시는 그때 나온 시다. ‘마음을 비우니‘ 전국무전여행이 성공했다는 깨달음이었다. 당시 중정(중앙정보부 시절)은 이 시를 문제삼았다. 뒷 부분 ‘유무상통有無相通(있고 없음이 서로 통한다)‘이 ‘공산주의 사상‘을 뜻한다며 문제를 삼았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웃지못할 이야기다.
작년 중국쪽 압록강 ~ 백두산 천지~두만강 자전거통일순례길에도 위 시를 비장의 무기로 챙기고 떠났다. 중곡동 어느 주막집에서 김영국 시인에게 ‘유일한 증거물‘로 안기고 떠난 바,그 험난한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국했다.
이번 거물지역정치인과의 싸움도 나에겐 이 무기 하나밖에 없다.
인간도처 유청산(人間到處有靑山)
남아도처 유미인(男兒到處有美人)
유전유정 무전무정(有錢有情無錢無情)
청산백운지우 유무상통(靑山白雲之友有無相通)
대한민국 구석구석이 온통 탁류(濁流)사회라며 눈만뜨면 방송언론이 비명소리를 전한다.
청와대에서조차 오직하면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영란법도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나는 지역신문을 하면서 아무리 거대한 탁류사회 대한민국이라지만 그래도 사회 저변의 구석구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없이 흐르는 맑은 물,청아한 청류(淸流)가 자신을 희생하며 주변의 더러운 물을 정화작용(淨化作用)하여 향기를 내는 작은 의인들을 많이 목격했다.(본지의 많은 미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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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도처 유청산이요(人間到處有靑山)
(인간이 가는 곳마다 푸른 산이 있네)
인간이 뼈를 묻을 곳은 이 세상 어디나 있다는 뜻으로 많이 인용되는 고사성어다.
人間到處有靑山을 운으로 나온 시는 참으로 많다.
원뜻에 비교적 충실한 釋 月性스님의 시를 읊어본다.
男兒立志出鄕關 남아입지출향관-남자가 뜻을 세워서 고향을 떠났으니
學若無成不復還 학약무성불부환 - 만약 학문을 이루지 못한다면 죽더라도 돌아오지 않으리라.
埋骨何期墳墓地 매골하기분묘지-뼈를 묻을 수 있는 곳은 고향의 묘지 뿐만은 아니라네
人間到處有靑山 인간도처유청산-이 인간 세상 어디든지 묘지가 될 장소는 있나니...
<출처:bubin 釋 月性스님-일본 막부시대 진종(眞宗)의 큰 스님>
그런데 나는,
男兒立志出鄕關
學若無成不復還
이러한 맹서도 물거품이 되었는지 이미 고향선산에 ‘뼈묻을 자리‘를 잘 가꾸어 놓았으니 ‘불타는 야망의 계절‘은 벌써 접었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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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無題)의 언덕에 올라
- 가을남자 황금나무 유윤석
色卽是空
空卽是色
인생은 허공에 바람이어라
그 허공에 색을 칠한들 무상(無常)일 뿐이다
허공에 가을바람 조요히 이니
희노애락의 정제된 바람이 눈물을 흘린다
해맑은 허허하심(虛虛下心)의 눈물을.
(2006년 9월 발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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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색의 아름다움
-황금나무 유윤석
나에게 목요날은
색깔이 없는 날이다
언제부터인가~
무색은 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거센 야망의 풍랑이 잦아들고
명경지수 평화의 바다
내 마음속에 곤히 잠들어
세속의 욕망은
내 굵은 팔베게에 숨소리조차 고르다
(2005/0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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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컴퓨터城(1)
- 황금나무 유윤석
처음봤다 컴퓨터용어대사전
남부지대 겨울 여행중
우연히 들른 조카방에서.
“머리말“은 머리아파 휰 넘기니
“일러두기“가 자기도 그냥 뭉게고 넘어가란다
어차피 모를테니까...쉰내 풀풀나는 쉰세대에
찜찜한 마음
오지랍 인동(忍冬)의 연륜으로 으윽 짓누르고
안방문을 노크하니
와아~~
사십년을 알고 지낸
낯익은 A가 환하게 웃는다
얼마나 반가운지...
A“에이“ (1)Accumulator,Adress line, Ampere 등의 약자.
(2)십육진수에서 십진수 10에 해당하는 숫자.
읔! 신음소리 터진다
반가히 맞아준 A는 그 A가 아니었다
음흉한 미소를 머금은
마법의 컴퓨터城 마귀할매였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아
얼른 사전을 덮어버렸다.
◆마법의 컴퓨터城(2)
-황금나무 유윤석
돌아서서 생각하니
분노가 치끓는다
컴퓨터마귀할매 킬킬거림 귓가에 윙윙거리고...
이글거리는 복수심으로
다시 사전을 펼쳐본다
A가 절벽이면 배후를 쳐라!
Z를 기습공격하라!
손자병법 나폴레옹전법
아자! 홧팅!
Z“지“ Zero flag의 줄임말.
읔! 뇌졸이야^!
알파(a)와 오메가(W)를 첫 상봉했을때는
황홀한 감격과 설레임도 일었고
참회의 착한 눈물도 흘렸었는데.
(남부지대 겨울여행중 마산에서.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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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므 해 전에
잃어버린
꿈과 사랑의 전설
서랍속의 바다
깊은 곳에서
다시 찾았어요
이젠 울지 안아요
이젠 그늘진 웃음 멀리 날려요
환한 기쁨의 행복웃음꽃만 피어요
아무도 몰라요
우리들의 잃어버린 전설을
80년 5월의 흑암
칠흑같은 어둠이
온 사방을 짓누를때도
우린 마냥 행복했어요
왜냐면
그래도 둥지는 허물어지지 않아
비바람 눈보라쳐도
엄마랑 아빠랑
따뜻한 둥지사랑이 있었으니까요
오히려 환절기에 신체장애가 크듯
84년 학원의 봄
학내외 민주화의 문턱에서
그만 둥지가
부서졌어요
치명적으로요
어디론가 뿔뿔히 흩어졌어요
스므 해동안
남남인채로
이젠
그 옛날의 둥지를 만들지는 않을래요
이 넓은 세상을
둥지삼아온지
이십년이니까요
누가 부시겠어요
이 넓은 세상둥지를
우린 누구도 부실수 없는
이 넓은 세상둥지를
아름답게 꾸며가요
우리들의 선한 이웃들과 함께요
하나님의 선한 이웃 공동체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모두의 둥지로 만들어 나가요
서랍속의 바다 깊은 곳에서
스므 해전에 잃어버린 전설을 찾았고
마침내 서랍속에 써두고 꺼내지도 못한
시를 낭송하게 되었어요
너무 멋져요
너무 아름다워요
서랍속의 바다 깊은 곳에서 들리는
아름다운 시낭송의 운률이요
서랍속의 시낭송이(2004.03)
(#이 딸과는 지금은 영원히 남남이 되었다. 내가 평생을 눈물짓고 사는 이유다. 위 푸념을 시작으로 나는 시인의 길을 걷게되었다. 그래서 다음카페에 ‘서랍속의 시낭송‘,또는 ‘황금나무‘ 필명 (20년만에 만난 딸-6살때 헤어지고-이 마침 국문과 졸업하고 ‘서랍속의 바다‘라는 필명을 쓰고 있어서 참 많이도 울었다. 참으로 우연의 일치였다)으로 울컥한 시들을 토해냈다.(나중에 ‘서랍속의 시낭송회‘로 발전됨)
당시 전두환이 5*18칼을 뽑아들면서 운동권 주동자 학생들 집안의 고위공직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숙청했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전라도출신은 집안의 공직자들을 황폐화시켰다. 당시 우리집안은 광주일고 서울법대출신 000부장검사가 서울동부지검에서 지방으로 좌천되었고(비리를 케려다 검사생활 23년에 오히려 청백리검사로 밝혀지자 지방으로 좌천시켜버림. 내가 건대사태로 다시 방송신문에 폭풍처럼 보도되자 나의 첫 가정을 강제로 이혼시키고 억울함에 항변했지만, 결국은 전라도 광주에서 법복을 벗음),또한 전주고 수석졸업에 서울법대출신 000공군법무관(나중에 전주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후 법복벗음)은 대학선배 부장검사로부터 많은 수모를 당했는데 군인신분이라 겨우 살았는데,대신 그의 아버지같은 형이 내 문제로 숙청대상이 되어 결국 지방 도청 고위공직자로서 뇌물죄(당시 청백리로 유명했는데 외숙모님이 난산으로 제왕절개할 수술비가 없어 한 운수회사 사장에게 수술비를 빌렸는데 이게 뇌물수수죄로 둔갑되어 구속되었다)를 뒤집어 씌워 목을 따고 구속했다.
(나는 노태우 6*29항복선언이 나올때까지 항상 A급 요주의 인물이었고(노태우 항복선언이후 C급으로 사실상 24시간 감시체제로부터 벗어남)집안의 애경사 출입금지였다.집안을 다 말아먹었다는 울분들이 말이 아니었다.누가 감히 내앞에서 ‘전라도‘를 파는가! 나중에 실명 석자를 대면 다 아는 법조계 청백리 인사들이었다.난 평생 죄인이 되어 지금까지도 집안의 법조계 어른들을(광주분은 저의 첫 가정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전혀 남남관계) 단 한번도 이름을 팔지 않았다. 지금 한 분은 전라도 광주에서 한 분은 전주에서 변호사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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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상 력
-시인의 눈은 황홀한 광기로 두리번거리며-
[한 여름밤의 꿈] 5막 1장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
미치광이, 연인, 그리고 시인,
이들은 모두 상상력으로 꽉 차 있습니다.
한 사람은 넓은 지옥에 있는 마귀들보다
더 많은 마귀를 보는데 그게 바로 미치광이입니다.
연인도 마찬가지로 광적이어서 집시의 얼굴을
헬레네처럼 아름답게 봅니다.
시인의 눈은 황홀한 광기로 두리번거리며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하늘로 오갑니다.
그래서 상상력이 미지의 사물에
형상을 부여할 때 시인의 펜도
그것에 형체를 주고 또한 있지도 않은 헛것에
그것이 자리할 장소와 이름을 부여해 줍니다.
출처:poetry4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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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초창기 여러 문학동아리에서 ‘등단시인‘을 권유했다. 철도 모르고 문깐안으로 냉큼 발걸음을 옮기자 ‘최소 300만원‘부터 내란다. 다른 곳도 다 그렇단다. 대부분 동호인지 책값에 +a라고 한다. 신인상은 으례히 500,1000 등 사례비가 따른다 했다.
“나는 시집(허수아비와 구케이원-2004.3.도서출판 두레박)을 이미 낸 사람이고 초판 1,2000부를 비싸게 팔아먹은 놈이다“고 앙버티자 시집을 냈으면 무조건 들어오란다. 시낭송회에도 많이 초대되어 대 선배들의 묵직한 시향에 흠뻑 취하곤 했다.
그런데 자꾸만 내가 소위 ‘건대언더운동의 한복판 중심‘에 있을때‘무서운 비밀번개모임‘에 추천되어 간적이 있었다. 그 유명한 군산제일고등학교 ‘오송회 사건의 주역들의 비밀 시낭송모임‘이었다. 당시 유명했던 을지로 ‘낙지골목‘이었다. 꼭 무슨 ‘간천들 접선방법‘같았다. 여러번 골목골목을 맴돌았다. 뒤에 미행을 막기위해서라 했다.
나는 담배연기 뿌연 무교동 뒷골목 낙지집 구석방에서 한참을 기다렸다.물론 추천자와 함께 단 둘이서...10여분 지났을까.
그들이 나타났다. 들어서자 마자 일체 서로 수인사도 없이 소주잔을 몇잔 돌린후 막바로 한 사람씩 시낭송을 이어갔다. 그리고 온다간단말도 없이 담배연기처럼 사라졌다. 얼마후에사 추천자는 그 사람들이 그 유명한 군산제일고등학교 오송회 사건의 멤버들이라고 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내가 나중에 인터넷에서 자작시를 많이 발표하면서 내 블로그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황금나무 블로그) 여러 문학동호인지들의 초대가 있었다. 그런데 대뜸 ‘등단비 300만원부터‘ 요구했다.
자꾸만 옛날 ‘오송회 선생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뒤로 두번 다시 ‘등단시인의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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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회 사건(출처=위키백과)
오송회 사건은 1982년 전라북도 군산제일고 전·현직 교사 9명을 경찰이 나서 이적단체 조직과 간첩행위 등으로 구속한 사건이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 시절 벌어진 대표적인 용공조작사건이다.
사건 개요
1982년 11월 25일 전북도경은 군산제일고등학교 현직 교사 8명과 전직 교사 1명 등 9명을 ‘오송회(五松會)’라는 반국가단체를 구성한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이들의 모의 내용과 학생들을 교사(敎唆)한 발언을 열거했으며, 증거물로 월북시인 오장환(吳章煥)의 시집 「병든 서울」 필사본과 시인 김지하의 ‘오적’이 게재된 일본 잡지 ‘불귀’ 등을 제시했다.
검찰 공소장의 모의 내용은 “4ㆍ19 정신을 본받아 의로운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이광웅) “일상에 연연하여 사회정의와 양심에 따르지 못하고 우물쭈물 살고 있는 내가 부끄럽다”(박정석) “약하고 용기 없이 살아왔다”(전성원) “한 일도 없고, 하고싶은 일도 못하고 살아온 비겁한 삶이었다”(황윤태) “살아남을 권리도 없는 비겁한놈이었다”(이옥렬)는 말을 하며 반국가단체를 만들었다는 내용이었고
학생 교사(敎唆)발언은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은 그 목적이 미국에 경종을울리기 위한 것일 뿐 공산주의자들의 행동이 아니다”,“농민들이 저곡가에 시달린다”,“북한에도 지하철이 있다”,“빈익빈 부익부야말로 우리나라의 구조적 문제다”,“월남과 자유중국의 패망은 그 정권의 비민주성과 부정부패 때문이었다”,“너희들도 앞으로 현실을 똑바로 볼 줄 아는사람이 돼야 한다”면서 북한을 찬양ㆍ동조했다는 내용이었다.
이광웅은 짐을 정리하다 어렸을 때 시집‘병든 서울’을 베껴두었던 노트를 우연히 찾았고 그것을 동료 교사인 박정석이 복사해 가지고 있었다. 한 제자가 복사본을 박정석에게서 빌려 갖고 다니다 버스에 두고 내렸는데 이것을 입수한 경찰은 전북대 철학과 모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교수는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등의 구절을 지적하며, 지식인 고정간첩이 복사해 뿌린 것 같다고 진단했다.
경찰은 내사를 시작했고 이광웅, 박정석, 전성원, 황윤태, 이옥렬 등 군산제일고 교사 5명이 ‘5ㆍ18 위령제’를 갖고 평소 자주 모여 ‘정부 비판’ 발언을 했음을 알았다. 이들은 평소 뜻이 맞는 교사들끼리 독서모임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걸리를 사들고 학교 뒷산에 올라 4·19 혁명과 5·18 광주사태 희생자의 추모의식을 가지고 시국토론을 한 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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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이러한 일들을 엮어 ‘군산제일고 교사 고정간첩단’으로 몰기 위한 계획을 만들었다. 5명이 소나무 숲에서 모였다며 ‘오송회’란 이름을 지어냈다. 한때 군산제일고 교사로 있으면서 이들과 친분이 있었던 당시 한국방송(KBS) 남원방송총국 부장이던 조성용을 ‘간첩단의 수괴’로 지목했다. 조성용은 이 때 영문도 모르고 끌려와 피고인이 되었다. 북한과의 연결고리로는‘최후의 5ㆍ18 수배자’로 불렸던 윤한봉을 지목했다.
경찰은 ‘김일성-윤한봉-이광웅-오송회’의 계보도를 만들어 놓고 교사들을 영장도 없이 구금했다. 1982년 11월 2일 전주 대공분실 지하실로 끌려가 고문기술자 신갑생으로 부터 40여일간 온몸을 묶고 엄지손가락에 전류를 통과시키는 ‘써니텐 고문’, 몸을 철봉에 매다는 ‘통닭구이 고문’, 얼굴에 먹다 남은 짬뽕국물을 붓는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 밥을 굶기고 잠을 재우지 않은 상태에서 수차례 폭행하며 경찰이 제시한 ‘계보도’와 ‘역할분담표’대로 허위자백을 하도록 강요하고 협박했다.
채규구 등 다른 동료 교사들은 동조 혹은 불고지 죄목으로 구속되었다. 검찰 조사 때도 고문한 경찰들이 바로 뒤에 앉아 시인을 강요했고 진술 내용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다시 지하실로 끌려갔다. 이들 교사들은 “처음에는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나중에는 차라리 죽여 달라고 매달렸다”고 말했다.
경찰은 윤한봉과의 관계를 끝까지 캐물었다. 학생운동 배후자로 지목되 수배중이던 윤한봉은 광주민주화운동 직전인 5월 17일 광주를 벗어나 서울에서 도피생활을 하던 중 이광웅의 매제 집에 숨어 지냈던 적이 있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여동생 집에 들렀던 이광웅이 윤한봉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경찰은 이것을 가지고 오송회가 윤한봉의 지시를 받았다는 자백을 하도록 강요했다.
윤한봉은 이미 1981년 4월 29일 경남 마산에서 화물선으로 밀항해 6월 4일 미국 워싱턴주에 도착했으며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등의 도움을 얻어정치적 망명 허가를 받은 상황이었다. 사건 진행 중에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군산의 교사들이 미국에 망명해 있는 윤한봉의 지휘를 받게 되었다는 식으로 내용이 맞지 않게 되자 경찰은 스스로 ‘계보도’의 아귀가 맞지 않는 부분을 수정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법정에서 고문당했다고 밝혔으나 1심에서 9명의 피고인 중 이광웅(징역4년), 박정석(징역3년), 전성원(징역1년) 3명이 실형을 선고받고 6명은 선고유예로 석방되었다. 석방된 교사들은 선고유예도 인정할 수 없다며 항소했다. 광주고법의 2심은 “대학 교육을 마치고 교사로 재직하는 이들이 공산주의 사회를 동경하며 잘못을 뉘우치는 기색 없이 변명만 한다”며 이광웅(징역7년) 등 3명의 형량을 대폭 늘리고 선고유예로 석방되었던 6명도 징역 2년6개월~1년씩 선고하여 모두 법정구속했다. 1983년 12월 대법원도 고법의 형을 그대로 확정했다.
피해자[편집]이광웅(李光雄) - 1992년, 53세로 사망.
박정석(朴正石)
전성원(田成源)
황윤태(黃潤泰)
이옥렬(李鈺烈)
채규구(蔡奎求)
엄택수(嚴澤洙)
강상기(姜庠基)
조성용(趙成湧)
명예 회복사건 발생후 16년이 지난 2008년 11월 25일 광주고등법원은 오송회 사건에 대한 재심에서 관련자들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1] 사건 피해자 및 가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150억여원의 배상액을 확정했다.[2]
◆김남조 시인의 ‘일갈‘에 용기를 내 겁도 없이 첫 시집 찍어...
동촌 유윤석 시집
‘허수아비와 구케이원들‘
---제1집---
글머리글
“....시인이란 만인의 애환을 노래할진대
오늘의 현실은 이른 바 만인 스스로가 시인의 어법을
앞질러 여러 심각한 가락들을 울려댄다“
김남조 시인의 일갈에 용기를 얻었다.
몸뚱아리로 겪은 고난의 삶을 밖으로 드러내 슬픔과
환희의 물결을 그려내며
스스로 웃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서랍속의 시낭송 필명으로 다음카페에
첫 글을 올릴때 무척이나 망설였다.
감히 ‘시‘라고 단어를 쓰고나서...
이제 일부를 off-line으로 끌어내
아날로그 세대들인 여러분들과도
함께 그 즐거움과 절망 또는 분노,희망을
나누고 싶다.
갑신년 이월에
저자 유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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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다음카페 ‘서랍속의 시낭송‘은 블로그 ‘황금나무‘(현재는 워낰 시간을 잡아먹는 블랙홀이라 5~6년째 거의 방치상태-3월 18일 오전 8시 43분 현재 방문객 수 총 259,994명)로 옮긴후 주야장창 불야성을 이루었다. 이무렵 200여편 이상의 자작시를 발표했다.많은 문우들을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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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시를 쓰겠다고 용기를 얻은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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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영혼에 바치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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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조 시인
김남조 시인 인터뷰-이경철 기자
bacchus@joongang.co.kr
“시인이란 만인의 애환을 노래하는 사람일진대
오늘의 현실은 이른바 만인 스스로
시인의 어법을 앞질러
여러 심각한 가락들을 울려낸다.
시대의 불행이 너무나도 부풀어 올라
시인들이 더 무슨 말을 줄 수 있을지 자문하게 된다.
그러나 시인이 침묵하는동안엔
누구도 희망을 노래하지 않는다.
이럴때 시인이 더 근면하게 감당해야 할일은
희망의 수사학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위 기사,특히‘
“오늘의 현실은 이른바 만인 스스로
시인의 어법을 앞질러
여러 심각한 가락들을 울려낸다“에
용기를 내어 시쓰기에 덤벼들었다.
그런데,지금은 두고두고 후회를 한다.
내가 시를 쓰겠다고 덤빈 것은 용기가 아니고
만용이었고 자기 무식의 적나라한 노출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희망“을 노래하고 싶은 충동뿐이었지
“수사학“은 나에게 “절망학“이었다.
절망의 늪에서 빠져 나올려구 몸부림치다보니
몸둥아리는 더욱 수렁속에
깊히 미끄러져 들어가 자맥질 뿐이고..
제2집 출간 문턱에서
차라리 “포기학“을 연구하고 싶어진다.
온 누리에 우수경칩 다지나
이제 곧,개구리가 한창일텐데
벌써부터 개굴개굴 개골게골
개구리 소리가 합창으로 들려온다.
야! 그걸 시집이라고 냈니/
개골~개골~ 개굴~개굴~!!
헐,황금나무 원래 그래 ~
태생이 무대포야!
동키호테하구 전생에 쌍동이였대잖아!!
ㅎㅎㅎ....(2005/04/14)
-황금나무 유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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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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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보고
-황금나무 유윤석-
언제부터인가
시간의 천국을 꿈꾸어 왔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멀리 달아나
시간이 정지된 나만의 적막강산
무한정보의 홍수시대와 절연된
고요의 정적속에 머물다 오고 싶었지요.
큰 맘 먹고 나흘간
컴無,TV無,신문無,핸폰無,전화無 등
無정보의 무한정적속에서 자연을 벗하며
시간의 천국에 머물다 왔습니다.
살그르락 살그르락
흙의 새벽잠 깨는 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알람해주었고
졸졸졸 쪼르르 쪼르르
계곡의 물소리에
목마른 자연의 기도소리가 들리고
농염했던 개나리,벚꽃들은
인간세계의 후끈한 꽃구경 열기에 몸살이 났는지
하나 둘씩 지친 걸음으로
깊은 산속에 모여들더니
쿨한 숲향에 기운을 차린듯
금새 금보라 은보라빛으로
화사한 수채화를 그려 놓았습니다
산촌에서 내려와
한적한 농촌 들녘에 들어오니
봄바람에 신들린 듯
무공해 산소들만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깔깔거리며 원시적 유희에 시간을 잊고
있었는데
붉은 태양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 멀리 지평선 넘어로
나와 함께 조용히 귀가해버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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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의 소리야! 미생이민생리어카 동네골목골목 민생도 외쳐라! (무명씨) 미생이민생리어카 동네골목골목 민생도 외쳐라!미생이민생리어카 동네골목골목 민생도 외쳐라!미생이민생리어카 동네골목골목 민생도 외쳐라! | 비록 눈물의 골짜기이고, 피하고 싶은 길...일지라도 (한나의 눈물) 우리가 걷는 그 길이 비록 눈물의 골짜기이고, 피하고 싶은 길이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일지라도 순종하며 가면 하나님께서 그 길목에 수많은 생명의 열매들을 불러 모아 주실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보람이 되게 해 주실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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