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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각(鳳凰閣)
등록일: 2012-06-11 11:26:48 , 등록자: 김민수 봉황각(鳳凰閣)
봉황각(鳳凰閣)은 1908년 교주 자리를 박인호(朴寅浩)에게 물려준 천도교(天道敎) 3대 교주 손병희(孫秉熙)가 수도에 힘쓰며 지도자들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었고 3·1 대한광복운동도 구상하였으며 봉황각에서 마주보이는 전면 약 50m 되는 산 언덕에는 손병희의 묘가 있다.건물 이름 ‘봉황각(鳳凰閣)‘은 최제우(崔濟愚)의 시문에 자주 나오는 말인 ‘봉황‘에서 따왔다. 흰 바탕에 푸른색으로 쓴 봉황각 편액은 오세창(吳世昌)의 글씨인데, ‘鳳‘자는 중국 당나라 명필 안진경(安眞卿)의 서체를, ‘凰‘자는 당나라 명필 회소(懷素)의 서체를, ‘閣‘자는 송나라 명필 미불의 서체를 본뜬 것이다. 봉황각은 ‘弓乙(궁을)‘자형으로 평면이 구성된 한식 목조건물인데, ‘弓乙‘자형의 몸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이고, 왼쪽 머리를 구성하는 부분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인데, 오른쪽 모서리 한 칸은 몸채 왼쪽 모서리와 겹쳐 있다. 건물 평면을 ‘弓乙‘자형은 천도교 교조 최제우(崔濟愚)가 하늘에서 받은 명부의 모양으로 우주 만물의 순환 작용과 활동을 형상화 한 것이다.몸채는 한가운데에 정면 2칸의 대청을 두고 오른쪽에 정면 1칸, 측면 2칸의 누마루가, 왼쪽에 전퇴를 둔 정면 2칸의 방이 배치되어 있으며, 정면 가운데 칸 처마 아래에는 ‘鳳凰閣(봉황각)‘ 편액이 걸려 있다. 두벌대의 장대석 기단을 두었고 그 위에 사각형의 초석을 두어 사각기둥을 세웠으며 처마는 부연을 단 겹처마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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