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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효창동을 효창원동으로 개칭하고 효창원(孝昌園) 원형 복원,사적 지정해야
등록일: 2018-08-18 08:39:10 , 등록자: 김민수 용산 효창동을 효창원동으로 개칭하고 효창원(孝昌園) 원형 복원,사적 지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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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2년 9월 7일 왕자(王子)가 탄강하였다. 정조가 승지와 각신(閣臣)들을 불러 보고 하교하기를 “궁인(宮人) 성씨(成氏)가 태중(胎中)이더니 오늘 새벽에 분만하였다. 종실이 이제부터 번창하게 되었다. 내 한 사람의 다행일 뿐만 아니라 머지 않아 이 나라의 경사가 계속 이어지리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으므로 더욱더 기대가 커진다. ‘후궁은 임신을 한 뒤에 관작을 봉하는 봉작(封爵)하라.’는 수교(受敎)가 이미 있었으니 성씨를 소용(昭容)으로 삼는다.”하니 신하들이 경사를 기뻐하는 마음을 아뢰었다. 정조가 이르기를 “비로소 아비라는 호칭을 듣게 되었으니 이 것이 다행스럽다.”하였다.
또 시임 대신과 원임 대신을 불러 보았는데, 모두가 말하기를 “하늘에 계신 조종께서 우리나라를 돌보시어서 남아가 태어난 경사가 있었습니다. 더구나 이 달은 우리 선대왕께서 탄생하신 달이고 우리 전하께서 탄생하신 달인데다가 왕자께서 또 이 달에 탄생하셨으니 경사에 대한 기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대신이 뜨락에서 문안을 올리려고 합니다.”하니 하교하기를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인데, 명호(名號)를 정하기 전에 뜨락에서 문안을 드리는 것은 근거할 만한 전례가 없다. 더구나 을묘년에도 이러한 예가 없었으니 하지 말도록 하라.”하였다.
1786년 6월 20일 문효세자의 묘호(廟號)를 문희(文禧)로, 묘호(墓號)를 효창(孝昌)이라고 정하였다. 윤7월 19일 문효세자(文孝世子)를 효창묘(孝昌墓)에다 장사지냈다. 이 날 새벽에 발인을 하였는데, 정조가 홍화문(弘化門) 밖에 나와서 곡하고 전별하였다. 다시 홍화문 안의 악차(幄次)로 돌아와서 영여가 도성 밖에서 떠나기를 기다렸다. 정조가 흑입(黑笠)과 백포(白布) 철릭 첩리(帖裡)를 다시 입고 묘소에 나가 최복(衰服)으로 바꾸어 입고서 일을 지켜보았다. 장사가 끝나자 정조가 친히 신주(神主)를 쓰고 초우제(初虞祭)를 지내고 그대로 하룻밤을 지냈다.
1870년 12월 13일 영의정(領議政) 김병학(金炳學)이 고조에게 아뢰기를 “열성조(列聖朝)의 세자나 세손을 공경히 받들 곳을 원(園)으로 이름을 승격시킨 것은 예법의 뜻에 어울리고 사체(事體)에도 타당합니다. 그러나 원을 지키는 관리의 이름을 고쳐 부를 때에 조금 개혁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선조의 후궁인 인빈 김씨의 순강원(順康園)의 수봉관(守奉官) 한 자리는 옛 규례를 회복하여 문신(文臣) 중에 참하(參下)로 차출(差出)하고, 한 자리는 충훈부(忠勳府)에서 30세 이상 되는 학생(學生)으로 자벽(自辟)할 것입니다. 원을 봉한 다음에 문관(文官)과 음관(蔭官)이 하는 수봉관 두 자리는 규정된 법이지만 근자에 음관의 전도가 매우 곤란합니다.
순회세자와 공회빈 윤씨의 순창원(順昌園)·소현세자의 소경원(昭慶園)·의소세손의 의녕원(懿寧園)·문효세자의 효창원(孝昌園) 4개 원(園)의 수위관(守衛官)은 각 두 자리가 있습니다. 거기서 각 한 자리는 임시로 직장(直長)을 만들고, 15삭(朔)이 찬 다음에 6품직으로 천전(遷轉)시키며, 각 한 자리는 승격시켜 수봉관으로 만들고, 30세 이상 되는 선파인(璿派人)으로 종친부(宗親府)에서 자벽하여 15삭이 찬 다음에 순차에 따라 다른 벼슬로 옮아가게 할 것입니다. 민회빈(愍懷嬪) 강씨(姜氏)의 영회원(永懷園) 수위관 두 자리는 승격시켜 수봉관으로 만들고, 한 자리는 문신 중에 참하로 차출하여 30삭이 차면 6품직으로 올리며, 한 자리는 30세 이상 되는 선파인으로 종친부에서 자벽하고 순차에 따라서 다른 벼슬에 승급시킬 것입니다. 정조의 후궁 수빈 박씨의 휘경원(徽慶園)의 영(令)과 참봉(參奉)은 각 한 자리를 모두 수봉관으로 만들고, 한 자리는 문신 중에 참하로 차출하여 30삭이 차면 6품직으로 올리며, 한 자리는 30세 이상 되는 선파인으로 종친부에서 자벽하고 순차에 따라 다른 벼슬에 승급시킬 것입니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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