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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좌우 보통국 ...



★무학의 전라도영암소년 박찬범 풀피리명인에 국제의학학술지에까지
어린이대공원 숲속의 음악회 자연의 소재악기 풀피리 공연

등록일: 2018-07-01 , 작성자: 광진의소리

▲초등학교 3년이 학력의 전부인 사실상 무학인 전라도 영암소년 박찬범은 아버지가 물려주신 풀피리연주 재능하나로 무작정 상경 서울시무형문화재제24호 초적으로 오르고,왕성한 국악작사 및 작곡활동에 마침내 국제의학학회지(TANG-Humanitas Medicine)에까지 소개되어 세계적인 명사로 등재되었다/광진의소리

<광진의소리 6월gallery= 한 우물 인생 박찬범 풀피리 명인>

글:편집국장 유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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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풀피리소리가 세계의학학술지에 소개되었습니다!”

박찬범 풀피리 명인이 국제의학학술지(2018.TANG-Humanitas Medicine)에까지 소개되었다. 풀피리의 소리가 인체에 미치는 의학적 효과에 관한 학계의 연구논문이 게재된 것이다. 경이로운 일이다.

지난 5월 중순무렵 자양4동 소재 옥탑에 있는 그의 ‘풀피리연구소‘에서 자리를 같이했다. 6월 30일 어린이대공원 숲속의 음악회 야외무대에서 ‘광진국악관현악단 정기연주회‘에서 ‘박찬범 풀피리협연‘이 개최된다했다.

본지는 ‘광진구의 보배‘인 ‘풀피리명인 박찬범(서울시무형문화재24호 초적.72.)‘심층취재를 결정했다.

그는 엄청난 자부심으로 격한 흥분이 온 몸에서 경련을 일으키는 듯했다.
“국장님께 솔직하게 말합니다. 나는 사실 초등학교 3학년이 학력의 전부입니다.”

서울시무형문화재 초적(24호) 박찬범(71.자양4동) 명인의 실토였다.

하잘것없는 버들피리정도로 여기던 풀피리를 명실상부한 민족전통악기로 화려하게 ‘부활’시킨 장본인이다.

그의 끈질긴 집념과 무서운 탐구력의 결실이다.

그는 스스로 ‘지게대학’출신(예전 우리농민 절대다수가 사용하던 등에 짐을 메는 운반도구)이라며 호탕하게 웃어제꼈다. 그래도 늘상 창피해서 ‘초등학교 졸업’이라고 둘러댔다고 실토했다. 정규학력교육을 받지않은 그러한 그가 풀피리 하나로 ‘입신양명’하고 국악 작사작곡도 척척 해내고 있다.

“중국 구당서(권29,樂志)에도 ‘고구려와 백제의 관악기’로서 ‘도피필률‘로 기록된 사실도 제가 처음 발견했습니다”
(중학교 역사부도교재,두산백과사전,한국민족대백과사전,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등 등재)

그는 무학에 가까우면서도 ‘풀피리연구’에 몰입하면서부터 국립도서관을 1년간 출입하다가 우리나라 풀피리의 역사기록을 악학궤범,삼국사기의 기록을 넘어 중국문헌에서까지 찾아낸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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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의학학회지(TANG-Humanitas Medicine)에 소개된 박찬범의 풀피리소리의 음악치료효과에 관한 경희대 고경자 김지연 오지윤팀의 연구논문/광진의소리

-.맨 처음에 풀피리를 불게된 것은 언제인가요?
“예.8살때부터입니다”

-.(박 명인의 어린시절)그 시절에는 시골에서 봄날이 되면 누구나 버들피리를 많이 불었지요?
“풀피리는 버들피리와는 다릅니다. 저는 고향이 전남 영암입니다. 아버님이 풀피리 시나위를 잘하셨습니다. 아버님은 당시 무속인이이셨지요”

-.아,그러셨군요. 우리나라 명창들,유명한 소리꾼들도 보면 어릴적 아버님의 영향이 결정적인 분들이 많지요?“
“그런데 아버님은 당시 제가 풀피리를 따라 부르는 것을 무척 혼냈습니다. 특히 저희 아버님은 ‘풀피리 시나위’를 주로 했는데 시나위는 죽은 사람의 혼백을 달래주는 곡이 아닙니까?

당시는 저희 아버님같은 무속인 풀피리시나위직업을 천한 직업으로 여겼지요? 그러니 아들이 뒤를 이을까 풀피리를 못배우게 혼내친거죠.“

그러나 어린 박찬범은 아버님의 풀피리 시나위가 가슴에 깊이 들어와 여울지고 있었다. 아들이 끈질기게 달라붙자 부친도 마음이 변하여 적극적으로 지도를 하고 나섰다. 입술이 부르터지는게 일이었다. 피가 나도록 불구 불고 또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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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양4동 그의 자택건물에 ‘풀피리연구소’를 통해 후진들을 양성하고 있다/광진의소리

그러던 그가 고향을 등진다. 18살때 무작장 상경,새벽에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구경 생전 처음이다. 그런데 서울역에서 바로 구두닦기 일당에 의해 붙잡히고 그들의 수하로 들어갔다. 구두닦기 인생이 시작되었다.

서울역주변의 거친 생존경쟁풍경을 온몸에 익혀야 했다. 3년이 가도록 월급은 없었다. 죽자살자 선배들의 구두닦기 심부름만 했다. 그러나 밥과 잠자리가 걱정없으니 만사 행복했다고 한다.

그러나 더 이상 꿈이 안보여 어느날 조용히 ‘목공소’를 찾아가 목수일을 배우기시작했다. 목수 조수로서 전국을 누비며 짬짬히 옛날 고향생각 향수에 젖으면서 ‘풀피리’를 다시 불기시작했다.

외롭고 고달픈 객지생활의 애환도 아버님이 일러주신 ‘풀피리 시나위 한 곡’을 찐하게 불고나면 그렇게도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주변에서도 신기한 듯 잔잔한 유명세를 탔다. 박찬범 목수=풀피리 사나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다시 직업을 바꾸었다. 청량리 길바닥에서 채소장사를 했다. 당시 청량리 바닥은 ‘적자생존의 무자비한 생존경쟁장’이었다, 주변엔 거친 사내들이 득시글거렸다. 생존경쟁의 치열한 ‘영토전쟁‘(영역싸움)이 늘상 사투였다. 지금의 부인을 그곳 채소장사 시절 만났다.

“어느날 부인이 이제 아이들도 학교에 가야하니 좀 조용한 동네로 이사를 가자”해서 찾아온 곳이 화양리였다. 아이들 교육목적상 찾아온 곳인데 막상 와보니 이곳 화양리도 조용한 동네만은 아니었다.

여기서 건축주와 동네 불량배들간의 싸움판을 목격하고 한방에 중재에 성공하면서(서울역,청량리역 깡패들 섭렵한 덕분) 건축업자와 손을 잡게되고 박찬범은 ‘건축업’으로 직업이 전환되고 먹고 살만큼 돈을 벌게된다. 그래서 지금도 공연수입은 모두 불우이웃돕기로 구청이나 시설에 기부한다고 한다.(목수기술도 가졌으니 금상첨화다)

이때부터 “목구멍에 여유가 생기자“(그의 표현) ‘여기 저기 동네 노인잔치에서 풀피리 시나위 무료공연(?)’을 하게된다. 구청에도 소문이 나서 구청의 경로행사에도 ‘무료봉사 출연’을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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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렵이었던 것 같다. 그가 지역 노인잔치 등 무료봉사공연을 본격화할때인것 같다.

“유윤석 본부장님,제가 풀피리로 서울시무형문화재로 등재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합니까?”

지금 생각하니 박찬범 명인은 이렇게 매사 ‘도전적인 사람‘인 것 같다.

“이 문제는 제가 문외한입니다. 음악전문가를 찾아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까마득하게 잊었다.

그후 박찬범은 무서운 집념과 도전으로 1997년 9월 국립국악원 주최 ‘세계피리축제 한국대표’로 떠오르고,그다음해인 1998년엔 정동극장에서 최초 ‘초적연주회’협연이 이루어져 한국사회에 풀피리음악을 부활시키는 계기를 마련한다.

드디어 2000년 4월엔 꿈에도 그렇게 집착했던 ‘서울시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제24호(초적)로 지정되어 하루아침에 제도권에서 공인된 ’유명인사‘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무형문화재지정과정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한 것은 ‘역시 한국사회의 학력풍토사회’와 무관하지 않다. 무학이나 다름없는 그에겐 전라도 남녘끝 영암의 돌아가신 선친이 ‘스승’일뿐 아무도 그의 음악세계를 검증해줄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감점기때 잠깐 반짝,그리고 해방후 강춘섭 선생의 현대적 풀피리연주이후 맥이 희미해진 시대였다.(박찬범은 스스로 강춘섭선생의 후계자가 되려고 연주회개최)

그러나 한번 날개가 돋히자 박찬범은 타고난 풀피리재능에 내장되었던 음악성의 끼가 물안개처럼 피어올랐다. 풀피리 연주에 머물지 않고 풀피리역사에 대한 문헌적 연구와 국악 작사작곡에 맹렬한 열정이 불길처럼 일어났다.

봄맞이,설장구와 풀피리나그네, 풀피리 시나위,천둥소리에 놀란 새들,영암땅 월출봉,아! 아차산아 등 300여곡의 작사작곡으로 독주와 관현악과의 협주가 이뤄지고,국립극장 국악대향연 초적연주회,KBS TV 국악한마당,MBC TV,SBS TV,수많은 라디오 방송출연으로 ‘풀피리의 대중화’에 선구자가 되었다.

이후 미국 U.C.L.A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뉴질랜드 공연 등 해외에도 한국 전통 풀피리악기를 홍보하는데 단초를 열기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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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고향 전라남도 영암군엔 군비로 세워진 ‘무형문화재 박찬범 풀피리(초적) 기념비’가 세워져 영암군을 ‘예향의 도시’로 알리는데도 한 몫을 하고 있는 자랑스런 ‘영암인’이다.

그러나 박찬범의 풀피리 세계는 ‘역시 풀피리 시나위’인 것 같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이후에도 민중의 가혹한 삶의 현장,6.25한국전쟁...특히 척박한 역사의 전라도땅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의 삶의 애환이 죽은 혼백의 영혼을 통해 통렬하게 울어나는 ‘전라도 풀피리 시나위’의 재현...

시나위는 무속음악에 그 뿌리를 박고 있다. 전라도 무속인이었던 박찬범의 부친이 남도지역의 시나위의 정수를 그의 아들 찬범을 통해 온세상에 화려한 부활의 날을 개창(改創)한 것일까?

본지 기자는 박찬범 명인에게 조심스럽게 그러나 강력하게 권고했다.

“이제 남도의 귀신혼백을 달래는 백제 풀피리를 만주벌판을 누비던 광활한 대륙을 지배한 고구려악기 풀피리로 승화시켜 ‘만주벌판과 평양에서 울리는 통일풀피리’로 나아가자고 강력히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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