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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좌우 보통국 ...



연재)언론인최초 공양미3백석에팔려간 유윤석국장 노역독방체험수기
미생언론수호 정치사법적폐청산투쟁,동부구치소 단식10일 3008배 고행이야기

등록일: 2017-12-14 , 작성자: 광진의소리

▲단식투쟁 10일 + 3000배 고행 옥중투쟁기/광진의소리

연재)언론인최초 공양미3백석에팔려간 유윤석국장 노역독방체험수기
미생언론수호 정치사법적폐청산투쟁,동부구치소 단식10일 3008배 고행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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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사용한 노역수 독방 내역 등-

구치소 건물구조:5개동, 지하1층~지상12층으로 준공 되었으며, 지열, 태양광을 이용한 친환경 에너지 이용(태양열이용). 최첨단시설!!

서울동부구치소는 법원과 검찰청과 함께 나란히 배치. 각 건물은 지하터널로 연결되어 TV에서 보던 포승에 묶인 모습을 볼 수 없어 인권보호 차원에서도 진일보(?)


*내방 위치:서울동부구치소(송파구 문정동) 4동 건물 10층(협소한 공간4방이 온통 흰색도색이라 우울증 빠지기 십상임. 내방건물과 중간에 넓은 공간사이에 앞동건물이 절벽상태.

다행히 왼쪽 모서리 정동편 오후 2시방향 틈새 약 30도 각도로 아침햇살이 들어와 오전엔 동남방향으로 무지개 여행. 반대쪽의 출입문은 복도편에 있음. 그러나 10층위치라서 비교적 채광이 밝고 신선한 공기교환도 창문개폐로 자유로워 건강상 좋은편이었음

또한 독방수용자들에겐 매일 1시간(일반 혼거수용자들은 30분)운동시간이 제공되는데 나는 11층 별도의 운동실에서 신선한 공기호흡과 전신운동을 통해 건강유지함.


1.면적 : 5.15㎡(1.56평)
2.집기비품 등 시설물 :
▶책상겸용 밥상 1개(편지쓰기,항소 또는 상고이유서 쓰기 및 식사겸용으로 과일박스위에 약간 단단한 보드 1장 얹혀놓음)
*일반 혼거방은 최대 8인이 동석가능한 목제밥상(편지쓰기,항소장 쓰기용 겸용) 1개 제공

※쭈그리고 앉아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장시간 사용시(항소장,상고장 쓰기 등) 무릎관절 등 불편 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점을 강하게 어필하여(소송서류가 워낰 분량이 방대하여) 기여히 별도의 의자제공한 것으로 보도됨.

필자역시 특히 3000배중에는 무릎관절통증이 심하여 주로 화장실 좌변기에 앉아서 외국어공부,시낭송,신문읽기 등에 대응함.

▶수납장 1개:붙박이식 담요2장,베개 1개 등 수납장(대형의자만 있으면 사무용 책상가능) ※필자는 도서진열대,화장지 등 생필품 비치대,단식종료후엔 여러 간식거리 비치대로 활용함.

▶오픈식 좌변기 화장실(내부엔 수도시설별도. 쓰레기 수거용 대형봉투2개,쓰레받기1개,빗자루1개)
▶붙박이식 tv세트1
▶24시간 감시용 cctv 1
▶라디오 스피커 1
▶빨래걸이1세트

3.구치소 제공 생활품(무료):담요 2장, 베개 1개 ,세탁비누 1개(관복,관제펜티,내의 등은 입소시 1회 별도제공)
※기타 내의,팬티,타올,고무장갑,화장지,세탁비누,세면비누,치약,칫솔,설겆이용 세제,사제 수의복 등 대부분의 생활용품(없는 품목이 없음)은 자비구매

4.단식투쟁중 나의 식단:
▶(주식):1끼 생수(1000㎖) 1병(자비부담)
▶(부식):하루 두유 190㎖ 115k㎉ 1개(장기단식시 위와 창자유착 예방용) +
쵸코바 50gr 240㎉ 1개의 10분의 1분량(콩알 2~3알크기- 최소한의 당분유지용) +
염분성 국물 1끼 3~5스푼(최소한의 염분유지용)

※염분성 국물(묽은 된장 시래기국물,자극성 김칫국물은 물에 희석해서 마심) 은 관식제공금지요청에도 불구하고 줄기차게 하루 3식을 식구통(밥통 넣어주는 구멍)으로 밀어넣어줄 때 일부 염분성 국물을 챙긴 것임.

※단식기간중엔 일체의 간식도 금지!


5.하루일과표- 장기간 독방사용시(1달이상) 엄청난 우울증에 빠질수 있어 일부러 하루 일과표를 빵빵(주로 외국어 회화 기초-중국어 베트남어 태국어 아랍어 스페인어 불어 독일어 이탤리어 러시아어 일어 영어)하게 작성하여 벽에 붙이고 일과표대로 강행군하려 노력함(입소전 사전에 준비함

※오전 새벽 4시기상(구치소 공식기상시간은 오전 6시)-실제는 새벽 2시 기상-타이트하게 일과표를 작성함-위 기록참조)

※필자 유치시 서울동부구치소에는 최순실씨,김기춘씨가 수용되어 있었음.

※바깥소식 통로
(1)아침 라디오방송시 아나운서의 약간의 멘트(하루전날 소식)
(2)저녁TV뉴스(1회)
(3)조선일보,한겨레신문,법률신문(한달치 구독신청함)
(4)아내의 주1회 면회시 바깥소식 접함(노역수는 주1회로 면회제한)
(5)기타 사회단체 대표단 등 면회시

◆충격! 총 합계 36년 징역살이한 분과 함께!

정말 가슴이 뜨거운 사람 ---

수용자1 :야! 씨팔~...난 징역살이 36년한놈이야!

내말 들어!

수용자2: 지금 봉사자(옛날 감빵장)라고 이렇게 해도 되는거야?

같이 징역살이하면서 왜 하라마라해?

둘이서 험악한 언사가 오가며 금방 격투기라도 벌어질듯 험악한 분위기였다.

거의 30분정도 격렬한 언쟁이 벌어지며 화닥닥 몸싸움 일보직전이 여러차례 반복되었다.

물론 징벌방전방때문에 극도로 액션은 자제하면서 말싸움이 계속되었다.
건설회사 현장 소장출신이라는 수용자2도 만만찮은 터프가이였다.


◆빵장, 유윤석 한달간 설거지담당 즉결처분!

수용자1:(유윤석씨,)당신은 맨 꼴찌로 왔으니까 앞으로 1달간 설겆이해! 알았어?

유윤석: 알겠습니다.
어차피 나는 맨 밑바닥에서 봉사하러 온 사람입니다.
걱정마십시요!

처음 배방된 내 방은 소위 범털방인 경제사범 기결수방이었다. 대충 들어보니 대부분 벌써 1심에서 징역 1~3년씩 선고받고 항소중인 사람들이었다.

벌써 작게는 1년 길게는 2년이상 구속재판중인 사람들이라 징역살이에 진저리난 상태에서 극도로 예민한 사람들이었다. 징역형이 아닌 나는 벌금노역 30일이라 명함도 내밀수 없었다.

나보다 조금 먼저 입방한 2사람중 한 사람과 빵장간에 험악한 기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원5명 방에 5명이 먼저 와 있었고 나를 포함 3명이 추가되어 총8명이 수용되니 빵장이 군기잡으려 닥달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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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자1(빵장):“씨팔,여기서 8명이 살아야해!
내말대로 해! 질서가 있어야 하잖아?

나는 14살때부터 감옥살이해서 내나이 66살인데 인생의 절반인 36년을 들락날락 징역살이 한놈이야! 내 말대로 해!
8명이 질서가 있어야 돼야잖아? 씨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용자2가 계속 항명(?)하자 그는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웃옷을 훌러덩 벗었다.

으악!
온몸에 문신은 기본이고 끔찍한 것은 앞가슴 전체가 ‘칼도마‘였다.
가로 세로 좌우 사선 빗금의 칼자욱이 어지러웠다.

얼마나 성질을 못이겼으면 자기 가슴에 저렇게 난도질을 했을까?
정말 끔찍했다.
온 가슴에 칼자욱이었다.

그 악명높은 청송감호소 생활도 거친 사람이었다. 이걸 본 수용자2도 약간 수그러들었다.
그러자 ‘칼도마‘는 일사천리로 명령했다.
8명에 대한 각자 임무부여다.

“(유윤석씨,)당신은 한달간 설겆이 담당이야(하루 3끼 8명분)!
여기 다 1년 2년씩 (설겆이를 한)장기수들이거든?“

유윤석: 나는 맨 밑바닥에서 봉사하러 온 사람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요.
설겆이 제가 다 하겠습니다.

*이때까지도 앞전사람들의 대판 싸움판때문에 나에 대해서는 벌금대신 노역30일짜리 신입 1명왔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사태가 진정되고 저녁 배식시간이 되면서 빵장이 모두 둘러앉은 상태에서 나에 대한 본격적인 심문(?)이 시작되었다.

“저는 광진구 지역신문 기잔데 추미애의원 비판기사때문에 총 7건이 고소되었고 지난 2년 6개월동안 변호사없이 재판을 해왔는데 5건이 무혐의처분되고 1건은 벌금 150만원나와 작년에 성동구치소에서 ‘황제노역철폐하라‘며 몸으로 떼웠고, 1년만에 나머지 1건이 항소심에서 벌금300만원(1심은 징역4월 집유2년 사회봉사40시간)으로 나와 청와대앞에서 어제 기자회견하고 오늘 자진해서 노역수로 왔습니다.

기자회견에서 나는 오늘부터 바로 단식투쟁에 돌입하겠다고 발표하고 들어왔습니다. 지금부터 저는 단식투쟁에 들어갑니다.
여러분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그러나 나는 올때부터 맨밑바닥에서 자원봉사하겠다고 왔으니 설겆이는 걱정하지 마십시요. 제가 한달간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미 1980년 5*18때 학생운동주동자로 군사재판을 받고 빵잽이를 했던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정말 대단하십니다. 장기간 어떻게 견디십니까?

저는 여러분들처럼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특히 황제노역철폐! 고질적인 전관예우 등 사법적폐철폐투쟁을 하기위해 왔습니다“

아주 낮은 음성으로 차분하게 나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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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장,유윤석 설겆이 전면 면제 처분!


“당신...오늘부터 설겆이 안해도 돼요.
우리들이 다 할테니까 꿈쩍도 하지 말아요“

(수용자 전원 합창)말도 안돼요!
단식투쟁한다는데 어떻게 우리가 설겆이를 시켜요.

(내 옆 수용자3) 말도 안됩니다. 단식한다는데...오늘부터 설겆이는 내가 대신해서 한 달간 하겠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73세)

(유윤석) 아닙니다. 제가 어차피 봉사하러 왔으니까 제가 하겠습니다.

(빵장)됐어요. 설겆이는 수용자3이 하기로하고 짠반처리는 수용자 4,식기 물닦기는 수용자2,방바닥 걸레청소는 내가 할게요.
그리고....

8명의 역할이 일사천리로 정해졌다.

그러나 나에겐 아무일도 주어지지 않았다. 바닥걸레청소라도 하겠다고 우겼으나 방장은 자기가 하겠다고 빡시게 나왔다. 정말 화끈한 사나이였다. 내가 80년 5*18 운동권학생 빵잽이였다는데서 많이 공감했던 모양이다. 자기도 그때 옛 서대문형무소에서 삼청교육대 대기중이었다고 했다. 특히 청송감호소에서 겪은 이야기를 나에게 장광설로 자랑했다. 분노도 치끓었다.

빢시게 다투었던 수용자2도 가벼운 식기 물닦기로 임무가 배정되어서인지 더 이상 대항하지 않았다.

방분위기는 완전히 180도 전환되어 화기애애하며 봄날의 훈풍이 가득넘쳐났다.

내 소개가 끝나자 빵장은 180도 언사가 달라졌다. 금새 반말이 사라지고 존칭을 썼다.

-.(감빵장)그래요? 난 당신이 노숙자인줄 알았어요!
머리가 허옇게 더부룩하고 수염도 하얗게 많이 나고 ...

그런데 당신은 이렇게 멋있게 수염이...
정말 수염이 멋있게 났어요.
내가 관상을 볼줄아는데 당신은 눈빛과 수염으로봐서 도사님같아!

아뭏든 틀려....우리들하고....??“하고는 갑자기 천수경,반야심경을 줄줄줄 외웠다.
다시 화려한 깜방경력소개가 쏟아졌다.

역시 범털방답게 감빵은 먹거리로 가득가득 넘쳐났고,각종 일간지 등 바깥소식 신문도 구독하고 있었다.

경제사범방답게(사회에서 중상류급 경제인들-회사경영자들) 일간 경제지도 다 들어오고 있었다.(각자 분담해서 중복되지 않게 구독신청한듯)

칼도마 빵장은 신바람이 났는지(자기 생각대로 질서가 장악됨) 과거 청송감호소 등 호화찬란한 빵잽이 일대기를 끝없이 늘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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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속측에 전달한 동일한 쪽지메모(당시 모든 기록물은 증거용으로 모두 2부씩 작성함)

유윤석은 이날 구치소 환경개선 요구투쟁과 동시에 장기간 단식예정중이므로 신경이 예민하다며 독방전방조치를 정식건의함.

구치소측은 별도의 감시카메라 cctv설치시간이 걸린다며 2일후 점심무렵 전방조치해줌/광진의소리

◆“엄청난 국민혈세로 호텔급 구치소 지어주었는데 콩나물시루징역살이 웬말이냐!“

수용자1과 수용자2 다시 격렬한 언쟁 --



◆유윤석 불합리한 구치소운영관련 문제 제기 구치소 소장 면담요청

“엄청난 국민혈세로 호텔급 구치소 지어주었는데 콩나물시루징역살이 웬말이냐!“

-수용자1과 수용자2 다시 격렬한 언쟁벌어져-

수용자2는 소송관련서류가 엄청많았다. 구치소가 판매하는 소송서류보관용 천가방만 4~5개인데 보관할곳이 없어 절절맸다. 더군다나 피가 마르는 항소이유서(초안)를 변호사 없이 직접 작성해야 한다면서 방바닥에 엎어져서 서류를 뒤적거리며 전전긍긍했다.

붙박이 수납장은 5개뿐이었다.(정원 5명의미) 이미 먼저온 사람들이 점령했다. 나를 비롯한 나머지 3명은 여기저기 사물을 쑤셔박아 보관해야 했다.

빵장:“그거(서류가방) 안쪽으로 안보이게 하란말이야! 지저분하게 널려놓지말구말야! 아,씨발 말좀 들어!

수용자2:“어디 놀데가 없잖아! 아...씨발 정말....“
(나중에 구치소측은 임시용으로 투명 프라스틱통을 제공하였다)

첫날 저녁 식사후 다시 둘이서 ‘소송서류 보관문제‘로 격렬한 언쟁이 벌어졌다. 금새 육박전이 벌어질것 같았다.

나중에 수용자2의 말을 들어보니 건설관련 소송서류(한때 매출 1000억대까지 기록했다고 했다)가 복잡하고 항소심에서는 변호사도 변호사지만
자기가 건설관련 현장 등 실무는 더 잘 알기 때문에 1차로 자기 스스로 철저히 소송서류를 챙기지않으면 안된다 했다.

그는 8명이 도떼기 시장이 돼버린 좁은 공간 출입국쪽 방바닥에 엎드린채 서류를 살피고 항소장을 쓰느라 엄청 낑낑댔다.
정말 안쓰러워보였다

나 자신부터 분통이 터졌다.
세계최고 자랑할만한 호텔급 시설이라고 극찬보도까지 했던 나였다(물론 서울동부지방법원 취재보도 기사에서)

고소고발 경험자들은 다 안다.
항소이유서나 상고이유서를 스스로 작성하기가 얼마나 예민한 신경이 작동하는지를...

또한 정원 5명방에 3명이 추가로 밀쳐들어왔으니 그야말로 콩나물시루짝이었다.
잠자리부터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8명이 칼자리를 하지않으면 한뼘의 공간도 나오지 않았다. 참혹한 인권유린현장이었다.

더군다나 나는 엄염히 ‘벌금방 노역수‘인데 일반 형사사건의 기결수방에 맨 꼴지로 쳐박은 걸로 보아 뭔가 의도적인 방구성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기시작했다

특히 징역살이 총 36년의 사람이 빵장으로 있지 않은가!
앞가슴에 온갖 칼자욱이 난무한 칼도마 사나이가 감빵장으로 있는...

나는 밤새 고민하면서 결국은 ‘스트라이크‘를 결심했다.
물론 합법적인 단계적 투쟁을 계산했다.

문제점을 메모하여 수용자들에게 설명하고 일일히 동의를 구했다.100% 찬성이었다. 다들 격분했다.

5명 정원방 호텔지어놓고 콩나물시루 징역살이 웬말이냐 하는 나의 메모지에 모두들 분통을 터트리며 내가 구호라도 외치면 일제히 합창을 할 분위기였다(기초적인 1단계 스트라이크)

드디어 교도관(담당 주임)에게 ‘쪽지메모‘를 전달하고 구치소 소장 면담을 신청했다

‘지휘감독소홀에 의한 직무유기내지 직무태만죄 대검 우편고발조치 예고 쪽지 및 진정서 전달.

유윤석은 다음날 밤 8시 30분경 교도관 담담주임을 불러 쪽지를 내밀었다.
“서울동부구치소 소장 (지휘감독 소홀에 의한) 직무유기 또는 직무해태로 대검 우편고발조치 예고!“가 적힌 쪽지메모였다.

즉시 구치소 소장에게 전달하라 했다.

당연히 나는 쪽지내용을 공개하고(요구사항) 전원 회람하며 동의를 구했다.
전폭 지지한다였다.

집단행동까지도 가능할 정도로 불만이 팽배한 상태에서 전원 공감했다.

그런데 나는 다음 다음날 ‘독방‘으로 전방되었다. 자살위험 등 심야감시가 어렵다며 감시카메라 CCTV설치에 시간이 걸렸다 했다.
물론 CCTV설치에 대해 그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간접적으로 수용자의 동의를 얻어가기는 했다.(감방 수용자는 동의절차 없이 설치가능)

◆변화된 호텔급 기결수방

오랫동안 열악한 시설의 대명사로 명성을 쌓았던 오금동 전설시대의 성동구치소가 폐쇄되고 웅장한 대지의 문정동으로 이전되면서 ‘서울동부구치소’로 개명되고 시설도 화려하게 개선변화되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화려한 변신을 했다.

전국 곳곳을 섭렵한 ‘별들(전과자들)’의 입소문이 확-번졌다 한다.
“서울동부구치소는 호텔이다”라고.

현재 다른 구치소에 수용되어있는 수용자들은 물론,심지어 다른 구치소 근무 공무원(교도관 등)들조차 “서울동부구치소로 가고싶어 하고 부러워한다”고 한다.

나는 1980,5*18때 ‘전두환계엄포고령위반‘으로 일제식민제국주의 감빵의 연장선이었던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 옛‘서대문형무소’의 일제시설의 감방을 겪었고,지난해 성동구치소의 열악한 시설에서 30일을 혼거수용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광진구에 있던 서울동부지방법원 및 검찰청이 송파구 문정동으로 이전하면서 동시에 성동구치소도 함께 ‘웅장한 문정동 법조단지의 패밀리’로 묶여 들여왔다.

서울동부지방법원 준공식때는 필자도 중앙언론들과 함께 뜨거운 취재경쟁에 임했다. 사전에 주요 시설을 취재한 본지는 준공식기사에서 ‘5성급 호텔수준의 세계최고시설’이라고 극찬하고 그대신 “국민의 엄청난 혈세를 들여 지어준 선물이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세계적인 인권선도의 법원으로 거듭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옆동에 있는 서울동부지검과 서울동부구치소 역시 같은 개념으로 지어진 시설로 간주하고 한국사법인권문화의 새로운 지평선이 열리길 기대했다.

동부구치소 역시 화려한 시설로 개벽되었다. 입소절차에서 입방까지 행정절차는 전과 똑같았다. 그러나 눈앞에 전개되는 시설과 공간은 눈이 휘둥그래질정도로 화려하고 공간이 널찍널찍하고 최첨단 전자시설로 개선되어 수용자들은 물론 교도관들조차 ‘대만족감’을 감추지 않았다.

나는 우연인지 구치소측의 기획인지는 알수 없으나 첫 배방이 여러명이 수용된 기결수방으로 배방되었다. 새로운 시설을 한눈에 볼수 있었다.

1)가장 눈에 띄는 것이 ‘독립된 좌변기시설의 널찍한 화장실’이었다. 여늬 원룸또는 ‘서민용 영구임대아파트 수준의 화장실’이었다. 당연히 출입문이 시설되었다. 예전엔 오픈식 화장실로 쪼그리고 앉아서 대소변을 처리하였다.

2)세면시설의 분리다. 세면시설은 간이시설이기하나 엄연히 현대식 시설이었다.

3)붙박이식 개인별 독립사물함이 설치되었다. 예전엔 두루뭉술하여 개인별사물이 분리되지 않아 적당히 각각의 사물을 관리했다.

4)실내 전등의 자동감지시설의 소프트화다. 예전엔 일방적인 전등불이 밤새켜져있었다. 그런데 새시설은 최신센서장치로 설계되어 취침시 심야시간엔 3단계정도로 빛의 강도가 자동으로 조절되었다.

물론 완전소등의 먹방은 아니나 백열등 식보다는 개선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 문제의 불편(서울구치소)을 호소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기도 하다.

물론,구치소에서는 수면용 검은 안대를 판매하고 있다. 나는 장기수가 아닌 30일짜리라 그냥 세면수건으로 눈을 덮고 수면을 취했다.

5)독방시설의 다른 점은 좌변기시설의 화장실이 개방시설인 점이다. 주위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자살 등 위험행동감시상 개방되고 cctv도 설치했다.

6)기자가 기결방 또는 운동시,접견왕래시 만난 여러 ‘별들’(전과자)은 한결같이 ‘서울동부구치소는 호텔이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나는 느닷없이 “엄청난 국민혈세로 수용자들의 인권개선차원에서 호텔급 구치소를 지어주었는데 콩나물시루 징역살이 웬말인가!”는 쪽지메모와 진정서를 내밀고 구치소 소장면담요청과 구치소소장 ‘직무유기 내지 직무태만’의 대검고발조치예고장을 접수시켰다.

◆단식 10일보다 더 어려웠던 죽음의 언덕길 3000배 고행 강행

◆교도관 “성동구치소시설보다 엄청나게 큰 규모의 시설인데 우리 교도관들의 통제범위는 엄청 커졌는데 인원은 그대로다”며 콩나물시루징역방의 문제점 토로

내가 문제를 제기하며 강경한 입장을 취하자 즉시 고충처리반 반장과 면담이 이뤄졌다. 담당 교도관도 사전에 변화된 환경을 충분히 설명해주었다.

공통점은 “시설은 초현대식이고 통제구역(대상)은 엄청 넓고 광범위한데 구치소 근무자들은 인원보충이 안되고 그대로다. 더군다나 이곳 시설이 좋다보니 신규 수용자들도 계속 이곳으로 밀려오고 있어 벌써 이곳 정원을 초과하여 벌써 2000명을 넘어섰다.

내일이면 또 여자기결수들이 한꺼번에 200명이 이곳으로 온다. 어쩔수 없다. 사실 우리 교도관들은 2배,3배로 업무가 가중되고 있다. 기자니까 우리들의 입장도 생각해달라”며 오히려 업무과다를 호소하기도 했다.

“이는 구치소 소장의 잘못이 아니네요. 엄청난 업무폭주로 인한 교도관증원의 필요성을 사전에 충분히 예측하고 시설을 설계했을텐데 그렇다면 법무부 당국은 사전에 최소한의 보충인원증원대책을 세웠어야 맞다. 그런데 아무런 대책없이 이전부터 했다면 법무부 당국이 문제군요”했다.

나는 구치소 소장에게 보낸 감사서신에서 “저에 대한 신속한 독방조치는 감사하다”하고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콩나물시루 징역살이문제가 개선되어 세계적인 선도인권국이 돼달라”고 했다.

◆죽음의 계곡을 헤메는 단식투쟁 10일 이야기- 참절처절한 ‘자신과의 싸움’

그런데 나는 ‘장기간 단식투쟁상 독방을 요청’했는데 막상 독방은 ‘엄청난 우울증에 빠지기 십상’이다.

혼자서 사방이 온통 하얀도색방(너무 삭막한 방이라서 나중에 운동방에서 본 개울건너 마을의 아름다운 가을풍경을 볼펜데생 스케치하여 벽에 붙여놓음)인데 누우면 머리와 발끝이 닿을 정도의 좁은 공간에서 24시간 먹고 자고 생활을 한다고 상상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하루 이틀 열흘도 아니고 ...

특히 나같은 경우는 현직 기자로서 여러유형의 일반사범들의 천차만별의 억울한(?) 사연들을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한데 이번엔 ‘장기단식’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빠른 독방제공선처’에 구치소측에 사의를 표했다.

그러나 더 이상 다른 일반사범들의 다양한 억울한(?) 사연들을 들을 수 없어 아쉽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2박 3일의 짧은 기간이지만 내용면에서는 ‘8인의 범털방 경제사범 기결수 방 동숙 특히 36년의 칼도마 사나이와 경제인들의 경우바른 마음씨(나에 대한 설거지면제) 체험은 커다란 감동의 인간드라마체험이었고,

기자로서는 다양한 경제사범들의 억울한 사연청취 특히 ‘공의(公義)의 투쟁자인 나에 대한 따뜻한 배려 등‘ ’대박횡재‘까지 한 결과가 되었다.

전방때 모두들 내손을 부여잡고 아쉬움을 표하며 나에게 필요한 주식인 생수(1000㎖) 와 부식인 두유(190㎖),쵸코바 등을 바라바리 챙겨주고 독방은 추울거라며 담요도 1장 더 챙겨주는 등 인정이 철철 넘쳤다.

(담요의 경우,새로 전방된 독방의 교도관이 규정위반(공식적으로 1인당 2장만 공급)이라며 추가 담요를 강력히 회수하려했다. 나는 감방동료들이 준 따뜻한 인간애의 상징선물이기 때문에 거칠게 항의하며 뺏기지 않고 퇴소일까지 따뜻한 인간사랑의 정표인 담요3장으로 지낼수 있었다)

물론,‘칼도마 빵장‘이 주도하며 야단법석이었다.

나 역시 하루전날 수용자들에게 이별의 인사를 했다.

“내일 나는 독방으로 전방될 것 같다.(교도관이 미리 귀뜸해줌) 여러분들의 호의를 잊을 수 없다. 나 한 명만 빠져도 여러분들의 공간이 훨씬 넓어진다.(8명에서 7명으로)

여러분들은 장기간 고생하시기 때문에 여러분들을 위해 반찬류 등 먹거리를 최대한 구매신청(빵장에게 1일 구매한도선까지 미리주문케함)을 했다.

여러분,크리스마스와 신년,3*1절 등 감형과 특사혜택을 많이 받기를 빌겠다“며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2박 3일의 <짧은 악몽,그러나 위대한 인간사랑의 꽃이 피는 감동의 순간들>이었다.

인생살이 참으로 ‘새옹지마’다.
오늘의 ‘화’(禍)가 내일의 ‘복’(福)으로 인생유전에 대반전이 일어나는 이변인 것인가.

다시 한번 서울동부구치소측과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신 ‘2박3일의 동숙의 경제인감빵동지’들게 감사를 드린다.

◆죽음의 계곡을 헤메는 단식투쟁 10일 이야기- 참절처절한 ‘자신과의 싸움’

■단식(금식)투쟁 초보자를 위한 기본가이드(나의 경험을 중심으로)

-기독교방식과 일반 수련방식의 차이-

현대사회가 복잡다단해지면서 정치적 시위목적 또는 건강상목적이나 가정사문제 등의 해결을 위해 자신의 육체를 달구는 단식 또는 금식투쟁이 많이 이용된다.

나는 과거 재야시절(전두환-노태우-김영삼까지) 매년 정초엔 금식기도원에 가서 3일정도의 금식기도를 했고, 전두환시절 최장 13일(정치적 목젹금식.아웅산 참사발생으로 중단),그리고 이명박 시절 두 번째 긴 11일 금식기도(건강상 목적 금식. 노무현 대통령의 자결뉴스 접하고 바로 하산)의 기록을 내기도 했다.

이번 서울동부구치소 단식투쟁(정치적 목적 + 약간의 가정사문제)은 최소 15일 최대 20일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11일차 아침 1끼까지 버티다가 결국 점심부터 손을 들었다. 체력과 정신력이 완전히 고갈되어 익스트림 라인(extreme line)을 넘나들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모진 목숨 살기위해 단식카드를 내던졌다.

-.사실 이번에는 (과거 11일,13일 경험이 있기 때문에) 최소 15일 최대20일을 목표로 했는데...

내가 밖에서 평소 늘상 40대 정신으로 활동을 해왔는데 이번에 올때 나이를 순간 착각한 것 같습니다. 하하하...

(구치소 이동기 고충처리반장,장기덕 담당 계장) “그럼요. 지금 그 나이면 고령이죠. 중단결정을 잘하셨습니다. 아직도 밖에서 할 일이 많지 않습니까?
여기서 죽으면 뭐합니까? 정말 중단 잘 하셨습니다.“

두 분은 말 한마디 비웃거나 조롱거림이 없이(30일 단식한다고 큰 소리치더니 겨우 10일이냐고 비아냥거리거나 조롱거릴수 있는 상황이었음) 따뜻한 마음으로 나의 단식중단을 크게 환영하고 즉시 피검사.혈압측정 등 의료조치를 해주었다.

의료진 담당 선생도 “나도 3일까지는 해봤다. 그 나이에 10일은 대단한 거다. 그러나 당신때문에 구치소의 여러 사람들이 엄청 신경쓰고 고생을 했다. 단식중단 정말 잘했다“며 피검사,혈압검사후 즉석에서 ‘죽식제공 7일‘(나는 5일정도 요청)을 판정했다.

3분께 다시한번 감사드린다.

한편 사실을 말하면,
나의 이번 단식투쟁은 엄격한 의미에서의 단식은 아니었다. 기독교 금식기도방식도 아니고 전통적 수련원의 단식방식도 아니었다.

이번엔 사전에 나만의 단식투쟁 위한 식단을 짰다.

주식으로 1끼당 생수 1000ml 1개, 여기에 그리고 부식으로 하루기준 두유1개(190ml),손가락 크기의 쵸코바 1개의 10분의 1분량(콩알 2~3알정도 분량),그리고 염분국물 3~5스푼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구치소측 조사과정- 취조형식의 조사가 한 번 있었음-에서 소상하게 공개했다)

최소 15일 최대 20일단식을 목표로 설정했기 때문에 최소한의 당분과 염분을 유지해주려 했다.

엄격한 의미의 금식기도는 물(특히 수돗물이 아닌 살아있는 생수) 만으로 버텨야 한다.

또한 불교 또는 일반 수련원 등의 단식수련방식은 물과 약간의 간장(나트륨 섭취) 또는 소금 등을 취하는 방식이 통례다.

나는 과거 철저한 기독교방식의 금식기도(전두환 노태우 김영삼-3당야합거부의사-까지는 매년 정초 3일짜리 금식기도실행. 단 전두환사망을 위한 금식기도(13일간 단행-효과 전두환 아웅산사태 발생- 전국제적대학생 복교조치)와 위암초기진단후 건강회복목적의 11일 금식이 나의 기독교 방식의 금식투쟁 경험이다.

그러나 이번 단식투쟁은 엄격한 의미에서의 금식기도도 아니고 단식투쟁도 아니었다. 물(한끼 생수 1000ml 1병)을 충분히 마시고 부식으로 하루 두유 1개(190ml) 손가락 크기의 쵸코바(당분)의 10분의 1분량(콩알 2~3알 분량),그리고 최소한의 염분섭취를 위해 염분성 국물(관식으로 제공되는 시래기국물 또는 김칫국물을 물로 희석시킨 염분성 국물)을 섭취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처음부터 투쟁목표수위를 한정했기 때문에 목숨을 건 투쟁이 아닌 비폭력 무저항의 강력한 평화로운 항거정도의 수준으로 수위를 제한하는 방식을 결심했기 때문이다.

이번 단식투쟁의 실질적 대상이 불의의 최고권력자(나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정권이 투쟁대상이었다)가 아닌 집권당 권력서열 7위정도인 당 대표를 투쟁대상(추미애)으로 했기 때문에 목숨까지 걸기는 좀 그렇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외부에 반영되는 효과는 이번에도 위력이 나타났다.(뒤에 설명)
금식이든 단식이든 진정성이 담보되면 그 효력은 일부든 전부든 반드시 나타난다. 목숨을 걸었을때는 그 위력의 크기가 좀 다를 뿐이다.

이번의 경우,나는 처음투쟁대상은 추미애를 대상으로 했다. 그러나 단식일수가 가중되면서 극도로 무기력 무중력상태의 공복통 행진가운데 투쟁대상이 전환되었다. 무의식중에 투쟁대상이 추미애에서 신(神)으로 바뀌었다.

당시 나의 비망록 기록:“I am not fighting against Mrs.CHOO,but against God!“
(뒤에 상세히 공개)

-.인류최초의 금식(단식)투쟁가 예수 40일간 금식기도투쟁
-이하 <출처>https://namu.wiki -

십자가 지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억조창생 인류의 죄를 걸머지고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변할 정도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눅 22:44). 기도의 힘이 인류에게 구원을 가져오는 능력의 원천이었다면, 오늘날 믿는 성도의 삶이란 어떤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자기의 몸과 마음을 괴롭히며 금식함으로 극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믿음의 선진들이 보여 주고 있는 금식기도의 모범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식기도 연혁

가정 또는 국가에 재난이 닥쳤을 때(욘 3:5, 에 4:12-17) 금식기도를 하였습니다.

내가 이번 단식10일후 회복식거쳐 7일만에 다시 3000배 고행을 결행한 것은 같은 의미의 ‘국가에 재난이 닥쳤을 때’(구치소에서 포항지진참사뉴스 듣고 즉시 3000배 고행돌입) 육체적 고행을 결행한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의 음식과 생존의 상관관계

인간은 3일만 음식물을 입에 대지 않아도 건강이 위태위태하다. 즉, 단식투쟁은 ‘나 굶어죽는 꼴 보기 싫으면 내 말 들어라‘라는 무언의 행동이다. 사회에서 존경받거나 인지도가 있는 사람일수록, 단식투쟁을 하면 여파가 크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물없이 3일 밖에 살 수 없고 공기 없이 3분, 음식 없이 3주 밖에 살지 못한다고 한다.

물론 단식투쟁을 하다가 아사한 사람도 있고, 아사하기 직전 투쟁을 철회함으로써 겨우겨우 살아난 사람들도 있다.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극단적인 시위 방법이기 때문에, 웬만큼 중대한 사항이 아닌 이상 잘 실행하지는 않는 투쟁이다.

그러나 강력한 의지를 나타낼 방법이 별로 없는 소외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종교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시위 방식 중 하나이다. 실제로 어떠한 사안으로 분쟁이 일어났을 때, 누구 한명이 단식투쟁에 들어가면 바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단식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 효과는 커진다.

현대적인 의미의 단식투쟁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인권과 평등이라는 권리가 확실하게 자리잡은 이후, 본격적으로 세계 곳곳에서 써먹기 시작한 투쟁 방식이다.

대표적 사례로 인도의 성웅 마하트마 간디는 75세의 나이로 옥중에서 3주간이나 단식을 한 바 있다. 첨언하자면 단식 투쟁은 본래 부당한 권력에 구금된 수감자들이 하는 투쟁방식이다.

우리나라 역사에는 식음을 전폐하는 사례가 있어 적합성이 떨어지지만, 현대에 행하는 물을 마시면서 유지하는 단식은 서구권에서 행하던 재소자들의 유일한 투쟁방식으로서 행해지던 것들이다.

1981년 아일랜드 단식투쟁을 사례로 의학계에서는 단식의 정의를 단식 후 공복통이 사라지는 72시간 부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72일 까지로 정의하고 있다. 단식 후 72시간이 단식으로 계산되는 첫날인 이유는 이 시점이 되어야 체내에 저장된 모든 당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즉, 단식투쟁은 신체의 자유가 부당하게 박탈된 이들이 고안한, 그 끝과 한계가 명확한 투쟁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인권이 유린되고, 그 과정에서도 자신의 인격과 정신력만을 가지고 자신의 인권을 부당하게 억압하는 압제자를 상대로 하는 처절하면서 가장 숭고한 투쟁의 방식인 것이다.

식음(食飮)을 전폐한다는 표현을 자주 쓰지만 실제로는 물은 마시므로 식음에서 음(飮)이 빠진다. 물을 허용하는 이유는 투쟁목적이 이슈화가 되기도 전에 죽어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물이 없으면 인간의 생존시간은 극단적으로 짧아진다. 같은 이유로 소금 역시 허용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단식의 경우 7일을 넘기면 적신호가 오고 10~14일을 넘기면 정말로 아사할 수 있으므로 매우 신중해야 하는 선택이다. 인체의 한계점이 72일, 기적을 바란다고 해도 75일이 한계이기 때문에 그 기간은 명확히 72-72법칙에 의해 정해진다. 그러나 현대에 이루어지는 자발적인 단식투쟁의 경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므로, 스스로 잠정기한을 일주일 정도로 잡고 이후 대안을 모색한다든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사례에서 보자면, 단식 중에 물이 허용되는 것을 이용해 물을 이용해 포도당 섭취를 꾀하며 눈을 속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겉으로 보기에만 단식일 뿐 의학적으로는 단식이 되지 않는다. 의학적인 단식의 기준은 체내 포도당을 모두 사용한 72시간뒤 신체가 기아상태를 인지하고 체내의 케톤기를 분해하려 하는 시점부터가 단식이 되기 때문이다.

72시간 이후 오는 평화로운 죽음으로의 길.

-.단식(금식)후 회복과정 중요

의학적으로 보면 오랜 단식은 특히 칼슘 손실을 가중시켜 뼈와 치아에 치명적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단식투쟁을 ‘제대로‘ 한 사람들 중에는 그냥 넘어져도 쉽게 골절상을 입거나 치아가 우수수 빠지는 등 상당한 후유증을 안고 사는 이들이 많다.

꼭 단식투쟁이 아니더라도, 강제수용소 등 영양 조건이 매우 불량한 곳에서 오랫동안 생활한 사람들 중에는 출소 후에도 골다공증이나 치주질환 등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 황석영의 경우 무허가 방북으로 인해 수감 생활을 하던 중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했다고 하는데, 그 결과 성한 치아가 거의 없다고 한다.

단식의 경우 굶는 것도 문제지만 굶고 나서도 문제다. 소화기관 비롯, 상당수 장기와 내장 전반에 문제가 따라오기 때문에 단식 끝난 후 함부로 밥 단 한그릇이라도 배불리 먹으면 최악의 경우 죽는다. 오랜 단식 후에는 묽은 죽부터 식사를 시작하는 게 정석이다. 원해서 한 단식은 아니긴 하지만, 2차대전 종전 후 수용소를 발견한 군인들 중 일부는 너무 야윈 그들이 안쓰러웠는지 빵이나 고기같은 것들을 마구 제공했고 덕분에 죽은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너무 굶은 사람에게 갑자기 밥을 주면 죽으니 죽부터 천천히 주라는 말이 나온다.

나의 경우는 예전엔 기독교방식으로 금식기간의 1일 X 2~3배정도 미음식을 했다. 이번 단식투쟁의 경우 10일을 했으나 사전에 수련과정을 약간 거쳤기에 5일정도면 회복된다고 했으나 구치소측 의료진은 7일을 허용했다.

7일정도 죽식을 하고 조금씩 몸을 풀고나니 외형상 80%정도는 건강을 되찾았다. 그러나 된밥을 먹기시작하면서 다시 3000배의 고강도 고행에 들어갔다.

간디: 인도의 독립을 영국에 청원하기 위해 단식을 하였으며, 말년에는 힌두교vs이슬람교 갈등으로 인도에서 갈등을 빚던 파키스탄의 분리를 반대하며 이런 대립을 막기 위해 단식을 하다 힌두교 급진 청년에게 살해당하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 전두환에게 저항하고 민주회복, 정치복원 등 민주화를 위한 전제조건을 걸고 단식투쟁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보름달빵을 먹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1981년 IRA 재소자들이 자신들을 정치범으로 대우할 것을 요구하며 60일 이상 벌인 아일랜드 단식투쟁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지율 스님 : 천성산 고속철 관철 반대투쟁수단으로 100일단식했다고 보도됨-천성산 안의 사찰인 내원사·미타암과 천성산에 사는 동식물을 대표한 도롱뇽, 지율 스님 등 ‘도롱뇽의 친구들’이 한국철도시설공단을 상대로 낸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구간 터널(원효터널) 공사 착공금지 가처분 신청 사건‘ 등 엄청난 사회적 파문 일으킴.

-이상 나와 관련된 글외는 <출처>https://namu.wiki -

=====
■나의 무대포 금식기도투쟁 13일,11일치 이야기
-“전두환 사망케 해달라”고 13일간 목숨걸고 금식기도- 결과 아웅산 참사발생,전두환은 살아돌아오고 아까운 국가 인재들만 다수 희생

그러나 전두환은 깊히 반성하고(?) 그해 12월 전국 각 대학 제적대학생 전원 복교조치! 유윤석은 4년만에 다시 그리운 캠퍼스로 돌아와 전두환폭압정권하 최초 대규모 학내시위를 터트려 특히 잠시 소강상태이던 서울시내 주요 메이져대학에 파급효과를 가져온다(뒤에 상세 기록) -

◆단식 6일차 아침 식사중 핑크빛 딸기쨈 한톨 몰래 먹고 쓰러져(10분정도 의식잃어)

단식6일차 새벽녘(2017.10.29.)

체력 급속히 다운됨. 아마 내 위벽 주름살은 할일이 없어(고체성 음식물 반입이 일주일째 안들어오고 계속 멀건 물만들어오니까 위벽 주름살들의 수축활동이 별로 필요하지 않아서 아마 지금쯤은 축 늘어진 휴면상태일 듯한 시점)

이날 아침 아침식사공급시(구치소측은 나의 강력한 관식공급중단요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침,점심,저녁식반을 줄기차게 식구통에 올려놓아 내방에 향그러운 음식냄새를 가득 풍기게 했다) 식반에 공급된 엄지손톱만한 핑크빛 딸기쨈 한 톨이 그렇게 먹음직스럽고 상큼해보였다.

그런데 슬며시 한톨을 훔쳐먹고 즉시 복통을 일으켜 약 10분간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깊은 수면에 빠졌다가 다시 께어났다.

그러나 아직도 의식이 몽롱하여 바닥에 그대로 누워있었는데 마침 아침조회시간이었다. 당연히 반듯하게 일어나 정좌한 자세로 교도관들(보통 왕초1명에 양측 보조 2명)의 눈점검(밤새 이상이 없는지 매일 점검) 시간이다.

“당신 뭐야? 왜 누워있어?”
담당 교도관의 칼소리였다.

“그래서 어제부터 창문에 표식을 부쳤지 않느냐? 3일차부터 체력이 많이 다운되기 때문에 앞으로 자주 눞는 시간이 빈번해질테니까 양해를 바랍니다”라고 (A4용지에)써서 붙혀놓았지 않느냐?“며 조회후 거세게 항의했다.

그래도 교도관은 “법대로 하는거야! 왜 말이 많느냐?”는 식으로 꽥! 소리를 지르며 날카로운 신경질반응이었다.

즉시 국가인권위원회에 대면인권상담 요청 청원서를 작성했다.
점심후 담담계장의 면담요청이 있었다.
“나이도 있고 하니 이쯤 해서 단식을 중단하면 어떻겠느냐?
유윤석씨는 물론,여기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걸 잘 알고 있다. 무슨 사적인 범죄를 저질러서 온 것이 아니고 공적인 문제(언론의 자유)로 온 것을 잘 알고 있다.

나가서 할 일도 많은데 여기서 아렇게 죽으면 뭐하느냐?
나는 분명히 단식중단을 정중하게 권했습니다. “
장덕기 계장의 말이다.
위에서 단식중단 종용 등 뭔가 오더가 내려온 모양이다.

그리고 가족사항,영치금액수,지금 어떻게 단식하고 있는지(나는 CCTV감시카메라로 24시간 일 거수 일투족이 체크되고 있었다), 단식투쟁의 목적이 무엇인지? 무엇을 먹고 있는지?...꼬치꼬치 물었다. 물론 컴퓨터 앞에서 기록을 하면서.

-.아니,지금 저를 취조하는 겁니까?
“장 계장) 아닙니다. 그냥 내가 참고적으로 필요해서...다른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하하하...꼭 취조하는 것 같습니다.(나는 이때 정보라인 등 어디선가 ‘오더가 떨어졌구나’ 며 확신했다.

나는 생수 한끼 1000ml 1개,부식으로 두유 하루 1개,쵸코바 1끼 손가락 크기의 10분의 1분량,약간의 염분성 국물 등이 전부인데 최소한의 당분과 염분은 필요해서입니다.(소금판매가 안됨)

-.단식의 목적이 뭡니까?
“언론의 자유 수호 차원입니다.

이미 오기전 청와대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청와대민원실에 나의 요구사항(탄원서)을 접수하고 왔기 때문에 여기서 물리적 폭력적 투쟁을 하지 않고,나는 비폭력 무저항 평화로운 항거의 방식으로 단식투쟁을 할 뿐입니다.
그래서 구호도 안외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누구에게 보여주기식 싸움이 아니고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단식투쟁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죠.

영치금은 29만 7천원 가지고 왔구요.(사전에 단식을 결심했기 때문에 돈이 별로 필요없지만 다른 수용자들과 공동생활을 생각하고 가끔씩 한턱을 내기 위해(감방생활은 수용자들이 돌아가면서 과자,과일,반찬거리 등 구매하여 같이 나눠먹는다) 30만원을 가지고 갔다가 어딘선가 3천원을 쓴 모양) 약간의 돈을 준비해갔다.그런데 막상 나는 초기 2박 3일이후엔 내내 나홀로 독방생활.

“아.예.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알겠습니다”

장계장의 취조(?)가 끝났다.
사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나도 이렇게 보면 젊어보이지만 (50대 중반정도로 보임) ...나이가 61입니다.(정년만땅인 듯)
나는 처벌보다는 계몽위주로 합니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출소자들한테서 감사하다고 편지들이 오기도 합니다.(실제로 서랍속에서 편지 꺼내 보여줌)

엄청 힘든 교도관 생활하면서 이런 즐거움,보람도 있습니다.
물론,이곳은 규율이 엄격하지 않으면 도무지 통제가 안되는 곳입니다.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하하하...

-.그렇찮아도 아침에 000교도관하고 한바탕했는데 즉각 국가인권위원회에 (대면요청)청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막 제목을 쓰던중인데 계장님의 면담요청이 왔습니다.

분명히 단식일수가 늘어나면서 체력이 급저하되므로 앞으로 방바닥에 눕는 빈도수가 좀 많아질테니 양해를 바란다고 종이에 써서 창문에 부쳐놓았는데도 법대로 한다며 꽥소리지르고...이는 도무지 용서가 안됩니다. 목숨을 걸고 단식하는 놈한테 조금 누웠던 걸 가지고 인격을 모욕하고...

“(장계장) 그 사람은 규정대로 해야... 원하시는대로 하십시오. 반대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도관들도 힘듭니다. 별별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물론,이해합니다. 없었던걸로 하겠습니다. 그대신 계장님이 이해를 좀 시켜주십시오. 제가 앞으로 눕는 시간이 많아질 것입니다. 체력이 급속히 따운되기 시작했으니까요,“

“예.알겠습니다.”


(다음에 이어짐)

***(잠깐요! 광진의소리-전신 ‘우리동네뉴스‘투쟁사- 피눈물나는 정도언론투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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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그림자 (역사탐방)
파년생으로 파리년 시합격 후 95년까지 판사로 재직. “군인들이 (1980년) 광주를 짓밟고 민주주의를 유린할 때 어떻게 살았는지...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NewsStand/3/all/20180118/88219967/1#csidx214bd6ee4cce4959539a692b960ec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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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017-08-16 일제강제징용희생자 해방72년만에 고국의 품에서 고이잠들다 4953
8 2017-08-15 8*15광복절 유윤석 공동대회장 ‘통곡의 피맺힌 연설‘ 5058
9 2017-08-07 일제강제징용희생자 유해 해방72년만의 환국 4969
10 2017-05-10 제19대 문재인 대통령 꽃길일까 가시밭길일까 6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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